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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군주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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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 출생

뉴스1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 (출처: BJohn Jabez Edwin Mayal, 흑백사진(1860),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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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19년 5월 24일 빅토리아 여왕이 출생했다. 64년간 재위하며 영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군주다. 대영제국, 아일랜드 연합왕국, 인도의 군주를 겸한 여왕의 치세는 '빅토리아 시대'라고 불린다.

빅토리아 여왕은 켄트 공작 에드워드와 켄트 공작부인 사이의 딸로 태어났다. 그의 모친은 일찌감치 딸을 군주로 만들어 자신이 섭정을 할 야심을 품고 엄격한 왕실 교육을 시키고 인간관계도 간섭했다. 이러한 훈육은 훗날 여왕의 고집스러운 성격의 형성에 일조했다.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은 삼촌 윌리엄 4세가 사망하면서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원래 왕위 계승 서열로는 한참 뒤였으나, 윌리엄 4세의 두 딸이 요절함에 따라 서열 1위의 왕위 계승자가 됐다. 왕위에 오른 직후엔 모친 켄트 공작부인을 유배 보내 정치에 대한 간섭을 배제했다. 어린 시절 혹독한 교육에 대한 앙갚음인 셈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1840년 외사촌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작 알버트와 결혼했다. 알버트 경이 1861년에 42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여왕은 남은 생애 동안 검은 옷을 입고 남편을 애도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는 영국의 엄청난 발전과 변화를 동반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영국은 세계적인 산업 강국으로 성장했고, 해외 식민지 확장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철도, 통신,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이 이루어졌다. 영국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통도 이때 확립되며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빅토리아 여왕은 1901년 1월 22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통치 후반에는 대영제국의 전성기가 정점을 지나 하향길에 접어들었지만, 왕위를 유지하며 영국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여왕이 남긴 자녀는 9명, 손자녀는 42명, 증손자녀는 85명에 달했다. 이들은 대부분 결혼으로 유럽 왕실과 연결돼 '유럽의 할머니'라고도 불린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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