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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아이 넷 키우는데 못 받은 양육비 6400만원…선지급제 통과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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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긴급지원제도’ 이용한 한부모 호소

기관 “이행률 해마다 올라 올해 목표 45%”

“전 남편과 시댁 가족들은 포르쉐, 벤츠를 타고 다니면서 너무 잘살고 있는데 아이 넷을 키우는 저는 전기가 끊긴다는 고지서를 받아야 했어요. 오죽하면 올해 1월에는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있는 가게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했겠어요.”

중학교 2학년 쌍둥이와 고등학교 2학년, 대학교 1학년 자녀를 홀로 양육 중인 신수연씨는 22일 서울 중구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제도’를 찾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신 씨는 2019년 5월, 15년간의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혼 당시 전 남편으로부터 양육비 200만원을 매월 받기로 했는데 실제 이 돈을 받은 기간은 2년에 불과했다. 지난해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12개월간 2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긴급지원제도를 이용했지만 이마저도 이달이면 기한이 끝난다. 누적 양육비 6400만원을 받지 못한 신 씨는 자신과 같은 한부모들을 지원하는 ‘양육비 선지급제’가 하루빨리 법제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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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소송을 맡고 있는 양세희 변호사가 22일 서울 중구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소송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양육비이행관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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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급제로 빠져나갈 구멍 없어야”

양육비이행관리원은 2015년 설립된 기관이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건강가정진흥원 내 조직으로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 청구 및 이행확보를 지원한다. 한부모가족이 양육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 또는 모로부터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소송 및 추심을 전담한다. 올해 2월에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9월27부터는 독립기관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양육비 이행률은 2015년 21.2%에서 지난해 42.8%로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양육비 이행률은 채권 확보 등으로 양육비 이행의무가 확정된 건수 대비 실제 이행 건수를 의미한다. 올해 목표는 45%이며 2027년까지 55%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한부모 가정을 위해 아동 1인당 20만원에 최장 12개월까지 지원하는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규모도 2017년 이후 매해 늘어 지난해에만 15억4700만원이 투입됐다.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제도는 중위소득 75% 이하 한부모만을 대상으로 한다. 최대 12개월에 월 20만원이라는 지원 기간과 규모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관련 법 개정안이 이달 1일 국회에 발의됐다. 개정안은 기존 긴급지원 제도를 폐지하고, 정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뒤 추후 비양육 부모에게 받아내는 ‘양육비 선지급제’ 신설을 골자로 한다. 지원 금액 및 대상은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게 했는데 여가부는 대상을 중위소득 100% 이하의 한부모 가구로 넓힐 계획이다. 12개월에 월 20만원 규모도 ‘자녀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1명당 월 20만원’으로 개편한다.

현재는 양육비 채무자의 동의 없이는 금융정보를 조회할 수 없다. 개정안은 관리원에서 금융정보를 포함한 소득·재산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산·금융 정보 조회가 쉬워지면 양육비 회수율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이달 안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소위 개최가 불투명해지면서 통과가 어려워졌다. 이날 신영숙 여가부 차관은 “얼마 안 남은 21대 국회에서 통과되면 좋겠지만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며 “22대 국회 첫 본회의에서 통과되는 것을 목표로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신수연씨도 법 통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전 남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벤츠 사진을 올리는데, 재산을 모두 전 시아버지 명의로 돌려놓은 채 양육비를 안 주고 버티고 있다”며 “관련 제도가 더 강력해져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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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제도를 이용해 온 신수연씨가 22일 서울 중구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취재진과 만나 ‘양육비 선지급제’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양육비이행관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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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당 소송 250건…인력 충원 필요성 커

관리원은 9월27일 독립을 앞두고 긍정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전주원 양육비이행관리원장은 “진흥원 내부 조직에 있으면서 서로 사업을 이해하지 못해 벌어지는 갈등이 많았다”며 “기획재정부에 예산 증원을 요청할 때 내부 절차에 막히는 문제 등이 있었다”고 했다. 이 같은 문제가 독립 기관화하면서 해결될 전망이다.

관리원 내 현재 변호사는 11명이며, 이중 감사실 등 인력을 뺀 직접 소송 변호사는 7명이다. 이조차 최근 한명이 충원된 인력으로 지난달까지는 6명이 소송을 맡아 왔다. 관리원 내 이행확보부에서 직접 소송을 맡은 양세희 변호사는 “지난해 기준 변호사당 소송 건수가 250건 정도였다”고 했다. 본안 사건 경우 인당 50∼60건, 추심 사건은 70∼80건을 소화하는 게 이상적인 탓에 그는 “변호사 인력이 20명은 돼야 업무가 원활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양 변호사는 수많은 소송 중 기억에 남았던 사건으로 지난해 차량을 강제 경매한 일을 언급했다. 양육비 채무자 재산을 조회해 고가의 차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채무자의 주소지로 찾아가 실제 차량을 확인했다. 재빨리 강제 경매를 했고, 지난달 해당 차량을 1430만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양 변호사는 “청구한 양육비는 1700만원이기 때문에 전액 확보는 어렵지만 다음 달 배당 기일이 되면 어느 정도 양육비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 역시 선지급제가 도입되면 압류가 더 원활히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현재는 채무자가 주거래하는 은행을 알기 어려운데 법이 통과하면 당사자 동의 없이도 주거래 은행을 알 수 있게 돼 양육비를 이행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여가부는 양육비 지원 필요성이 높아지는 만큼 올해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서 한부모 가구의 자녀 연령별(영유아, 초등, 중등) 양육비용도 조사할 계획이다. 해당 실태조사에서 이 항목을 넣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신 차관은 “한부모 가구 지원은 넓게 보면 저출생 대책에 포함되는 것”이라며 “실태조사가 한부모 지원 기준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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