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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정치적 의도 보이는 R&D예산…국익 위한 결정 맞나?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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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이 지난 4월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연구개발(R&D) 지원 개혁 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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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현 | 포항공대 화학공학과 3학년



지난 10여년간 이공계는 대학 입시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외면받아왔다. 이러한 경향은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공계 인적 자원 문제와 인재 유출에 따른 영향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성장한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될 가까운 미래에 나타날 것이다. 이런 우리나라 상황과 대조적이게도, 세계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기술 경쟁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공계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에 우리나라 이공계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서 국가 경쟁력 유지에 사활을 걸어야 할 지금, 정부는 오히려 고무줄식 예산 조정으로 이공계를 흔들며 위기를 가속하고 있다.



지난해 ‘연구개발(R&D) 카르텔’을 이유로 예산을 삭감했던 정부는 올해 최대 규모로의 증액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낭비나 몰아주기식 연구 과제 등 정부가 지적한 문제들은 그 실체와 해결책이 아직 불분명하며, 오히려 연구의 연속성을 깨뜨리고 연구자들을 이탈시킨 역효과만 가지고 왔다. 연구개발 시스템에 예산 낭비나 특혜를 불러올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연구자들도 공감한다. 하지만 정부가 택한 단순 예산 삭감은 낭비되거나 특혜로 돌아가는 예산이 아닌 연구자들의 기본적인 인건비를 비롯한 필수적인 예산을 감축하는 역효과로 이어졌다.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대학원생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학계를 떠나고, 예산 부족을 이유로 몇년간 지속해야 하는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들이 중단되는 동안 정작 정부가 말했던 제도적 개선은 추상적인 설명 외에 명확한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사용한 약이 정작 암세포는 죽이지 못하고 정상적인 세포만 죽인 셈이다. 이미 죽은 세포는 살아날 수 없듯이, 지난해 예산 삭감이 불러온 혼란은 이후 예산 증액으로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2024년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안을 보면, 증액된 분야에선 차세대 발사체와 혁신형 소형 모듈 원자로 기술개발사업이, 삭감된 분야에선 나노 및 소재 기술개발사업과 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 운영비 등이 눈에 띈다. 지난 정부에서 국가적 과제로 내세웠던 소재·부품·장비 산업이나 신재생 에너지 산업 등을 배제하고, 이번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항공 우주나 원자력 산업 등은 적극 지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정부의 방향성에 따라 예산 분배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회로 설계나 양산 기술만으로 선도하기 힘든 고성능 반도체의 중요성이나 알이100(RE100)에 의한 무역 장벽이 현실화하는 국제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이번 예산 책정이 정치적 의도를 배제한, 국익만을 위한 결정이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만약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결정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주장하는 ‘연구개발다운 연구개발’에서 가장 벗어난 것이 아닐까?



정부가 말하는 ‘퍼스트 무브’ ‘도전적 연구개발’ 등에서 우려하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도전적 연구개발로 세계를 선도하는 것은 좋지만, 그 방향성이 잘못된다면 의미 없는 인적, 물적 자원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적 연구 개발은 정부와 산업, 학계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같은 방향으로 함께 움직일 때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데, 지금껏 이념적 사고에 갇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온 정부가 같은 방식으로 연구개발을 대한다면, 정부가 제시할 방향이 합리적일지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연구개발 예산 삭감은 분명 성급했고 이에 따라 대한민국 이공계는 큰 혼란을 맞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엎질러진 물을 치우지 않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정치적 의도를 배제한, 산업계나 학계와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하루빨리 혼란을 해결하고 앞으로 대한민국 연구개발의 컨트롤타워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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