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6 (일)

[기고] 미·중경쟁 시대, 지정학적 위기와 한국 외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국제질서가 다시 분쟁과 갈등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억제되었던 갈등은 전쟁으로 표출됐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그것이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서 군사적 충돌이 가장 우려되는 곳은 미·중 경쟁의 지정학적 최전방 대만해협이다.

대만해협에서 지난 30년간 직접적인 충돌이 없었던 것은 미·중이 갈등보다 협력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고도성장을 이룬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에 정치, 경제, 기술, 군사안보뿐만 아니라 에너지, 식량, 자원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워싱턴의 미·중 관련 회의에서 세계대전을 논의하고 있다'는 풍문이 떠돈다고 하지만 사실상 전쟁은 미·중 모두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 집권 초기부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대만통일'을 추구하며 해군력을 강화해왔다. 성능은 뒤지더라도 중국의 군함 수는 이미 미국의 군함 수를 넘어섰다. 중국은 자연스러운 대만통일이 어렵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고 2027년까지 전쟁 준비를 완수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지역 패권국이 된 이후 다른 대륙에서 미국에 도전할 만한 지역 패권국의 출현을 저지해 왔다. 미국의 목표는 명확하다. 전 세계에서 압도적인 패권국이 되는 것이다. 미국은 오커스(AUKUS)에 일본과 한국 가입을 염두에 두고 있고, 필리핀과 군사 훈련을 확대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기부터 대량의 첨단무기를 대만에 수출하고 대만군은 자위력 향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건은 미국의 태도이다. 작년부터 대만의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TSMC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미국이 반도체 독립을 이루게 되면 미·중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된다. 미국은 셰일가스 생산 이후 에너지 독립국이 되었고 중동 정책이 크게 변했다. 2027년께 미국이 반도체 독립을 이루게 되면 대만을 전쟁 없이 지켜야 될 의미가 작아질 수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기는 한반도가 매우 위험한 전략 환경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경우, 북·중·러 대 한·미·일이 대치하고 동맹국들이 참전하며 최악의 경우 북한이 남침을 감행할 수 있다. 북한은 주한·주일 미군이 대만에 집중한 틈을 기회로 여길 수 있다. 미·중 경쟁의 전개 양상에 따라 대만해협과 한반도 안보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종횡으로 연결하는 십자형 다자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에 무게 중심을 두되 남북, 한중, 한·러 등 양자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미·일과의 협력이 안보를 위한 것이듯 북·중·러와의 관계 개선 역시 안보를 위한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지정학적으로 미·중·일·러의 균형점 역할을 하는 한국이 안보를 위해 좌표를 지나치게 편향되게 움직이면 대척점에 있는 상대국이 한반도에 부정적인 압력을 행사하여, 결국 안보 위험이 발생한다. 한국은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결 구도가 고착화하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우호적인 이웃 국가가 되고 자국의 이익과 발전에 필요한 국가가 될 때 한반도 평화가 유지될 것이다.

[최재덕 원광대 교수·한중정치외교연구소 소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