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장이 지난 2월 네덜란드 헤이그 ICC 본부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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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장이 20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지도부에 대해 체포 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이 전쟁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에서다. 네타냐후 총리와 하마스 모두 강하게 반발한 가운데 서방에선 국가별로 입장이 엇갈렸다.
칸 검사장은 이날 가자지구 전쟁에서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는 교전과 관계가 없는 민간인을 해치는 등 행위로 국제인도법 체계를 심각하게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
칸 검사장은 네타냐후 총리가 기아를 전쟁 수단으로 활용하며 ICC 조약인 로마 규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법 위에 있는 사람은 없다”며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끌려간) 인질을 데려올 권리와 의무가 있는 게 지당하지만 그런 행위는 반드시 국제법을 준수하면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ICC가 자신을 체포하려 하자 자국 안보 사정 등을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칸 검사장은 “(네타냐후 총리는) 몰살을 부르고 인도주의 구호물자 공급을 차단한 것을 비롯해 굶주림을 전쟁 도구로 삼으며 전쟁에서 고의로 민간인들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마스 전투원들에게 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가자지구 민간인 전체에게 가는 물을 차단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네타냐후 총리가 고의적 전범 살인, 민간인에 대한 의도적 공격 지시 등도 벌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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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검사장은 파키스탄계 무슬림…네타냐후 “新반유대주의”
지난 19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난민 아동들이 구호식량을 배급 받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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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검사장은 하마스 군사 지도자인 야히야 신와르, 알카삼 여단 사령관인 무함마드 데이프, 정치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 등 3명에게도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에겐 이스라엘에 침투해 민간인을 학살하고 인질로 납치하며, 감금한 인질을 성폭행·고문한 혐의가 적용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파키스탄계 영국인인 칸 검사장은 파키스탄 이슬람 소수 분파인 아흐마디야 무슬림 공동체 소속이다. 1992년 변호사 자격을 얻은 그는 30여년 동안 국제 형법 및 인권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 지난 2021년 ICC 검사장에 선출됐다.
만일 ICC 재판부가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면 2002년 ICC 출범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동맹국 정상이 ICC의 수배 대상이 된다. 당장 네타냐후 총리나 갈란트 장관이 체포될 확률은 낮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처럼 해외여행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ICC 회원국을 방문할 경우 체포될 수 있어서다. ICC 124개 회원국은 전쟁범죄 수배자를 체포해 네덜란드 헤이그 재판소로 인도할 의무가 있다. 이로 인해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3월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이후 중국,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 ICC 미가입국만 방문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인도 등도 ICC 회원국이 아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해 10월 텔아비브 군사 기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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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총리는 즉각 반발했다. 그는 이날 “이스라엘군과 집단 학살자인 하마스를 비교하는 (칸 검사장의) 역겨운 행위를 거부한다”며 “이는 터무니없고 거짓되며 완전한 현실 왜곡이며, 신(新)반유대주의”라고 맹비난했다. 하마스는 지도부 체포 영장 청구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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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영장에 분열된 서방…美 “반대” vs 佛 “지지”
지난달 30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형사재판소(ICC) 본부 건물의 모습.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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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입장은 엇갈렸다. 미국과 영국, 독일, 이탈리아는 ICC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ICC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전혀 동등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영국 외무부도 “(체포)영장 발부가 인질 구출, 구호, 지속 가능한 휴전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독일 외무부는 “ICC의 독립성과 절차를 존중하지만 이번 조치가 하마스와 이스라엘 정부 사이의 잘못된 동등성을 만들어낸다”고 비판했다. 안토니오 타자니 이탈리아 외무장관도 “국민이 합법적으로 선출한 (이스라엘) 정부가 테러조직과 동일시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프랑스 외무부는 “프랑스는 ICC와 그 독립성을 지지한다”며 “어떤 경우에도 응징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자 라비브 벨기에 외무장관도 “가자지구에서 저지른 범죄는 가해자가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최고위급에서 기소돼야 한다”며 “벨기에는 ICC의 활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조셉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ICC의 임무는 국제법에 따라 가장 심각한 범죄를 기소하는 것”이라며 “ICC 규정을 비준한 모든 국가는 법원의 결정을 집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할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의 아내인 국제인권변호사 아말 클루니는 자신이 참여한 ICC의 전문가 패널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지도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할 것을 만장일치로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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