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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4 (일)

“아무도 몰랐다” 이렇게 귀한 벌레일 줄은…죽이면 절대 안돼 [지구,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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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벌목 맵시벌과의 야생벌 [벌볼일있는사람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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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날이 조금 흐린 걸 감안해도 너무 안 보여요. 꽃이 이렇게 흐드러지게 폈는데…”

4마리. 지난 15일 오전 남산 일대에서 만난 야생벌은 고작 4마리였다. 벌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나 5월은 주로 일벌들이 꽃가루와 꿀을 부지런히 모으는 시기다.

갑자기 사라진 벌은 올해만의 일은 아니지만, 주로 ‘꿀벌’에 집중돼 왔다. 인간이 꿀을 채취하기 위해 벌집을 키우고 관리하는 양봉용 벌이다. 그러나 조용히 모습을 감추고 있는 ‘야생벌’이야말로 생태계 붕괴의 적신호라는 게 야생벌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이들의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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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목 맵시벌과의 야생벌 [벌볼일있는사람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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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을 만나려면 꽃을 봐야 한다고 한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약 두 시간 동안 ‘벌볼일있는사람들’의 조수정 공동대표와 함께 야생벌을 만나기 위해 남산야외식물원과 일대의 남산둘레길을 돌았다. 벌볼사는 벌목 곤충에 관심 있는 전문가들과 시민과학자들이 2018년 결성한 모임이다.

떼죽나무, 산수국, 조팝나무, 찔레 등 5월에 만개하는 꽃들을 들춰보기도 하고 가만히 서서 기다려도 봤지만 야생벌을 쉽사리 마주칠 수 없었다.

이날 집중적으로 관찰하려던 야생벌은 뒤영벌과 중에서도 좀뒤영벌이었다. 벌볼사와 서울환경연합의 야생벌 시민조사단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관찰한 벌 중 꿀벌 다음으로 많았던 것으로 기록된 야생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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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좀뒤영벌 [벌볼일있는사람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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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과 답사를 나온 시민들로 북적이는 야외식물원에서 좀뒤영벌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맵시벌과와 잎벌과의 야생벌을 두 마리 마주쳤다. 남산둘레길의 숲속의 한 떼죽나무에서 꿀을 빨고 있는 뒤영벌 두 마리를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야생벌을 알아보기 어려웠던 게, 이날 야생벌들은 몸길이가 1㎝ 안팎으로 아주 작았다. 여간해서는 움직임을 식별하기도 어려웠고, 고화질의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한 뒤 확대해야 정확히 어떤 벌인지 알 수 있었다.

야생벌을 쉽게 포착하지 못한 데는 낯선 생김새도 한 몫했다. 흔히 벌하면 생각하는 검은색과 노란색의 줄무늬나 보송한 털을 떠올리 쉽다. 그러나 이날 실제 마주친 야생벌 중 잎벌류와 맵시벌류는 검은 색의 머리, 가슴, 배에 얇은 날개를 뒤로 접은 모습이 파리나 개미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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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목 잎벌과의 검정날개잎벌 [벌볼일있는사람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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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야생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내의 꿀벌(bee)은 토종꿀벌과 서양꿀벌, 2종뿐인데 국내의 벌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약 4390종에 이른다. 벌을 십수 년 이상 연구하고 관찰해온 이들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세부 종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벌을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생벌을 본 적도 거의 없고, 설사 마주쳤더라도 모르는 ‘벌레’로 지나쳤을 가능성이 높다.

야생벌을 모르니 야생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기 어렵다. 꿀벌의 경우 개체 증감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겨울 국내에서만 꿀벌 78억 마리가 집단폐사했다. 그러나 야생벌은 얼만큼 사라졌는지조차 알 수 없다. 오랫동안 야생벌을 관찰해온 이흥식 벌볼사 공동대표는 지난 20년 간 서울 시내의 공원에서 야생벌이 9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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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양봉농가의 벌통에서 겨울 새 벌들이 사라지는 집단 붕괴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양봉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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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벌들이 줄어드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서식지 파괴 등의 원인들이 더해져서 나타난 결과다.

먼저 야생벌들의 서식지는 아주 넓게 퍼져있다. 이들의 집은 땅 속, 바위 틈, 심지어 낡은 건물의 균열된 벽에서도 산다. 산책로를 조성하려 땅을 뒤엎고 나무데크를 깔거나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과정에서 야생벌들의 서식지는 사라지는 셈이다.

살충제도 주요 원인이다. 특히 국내에서 아직 많이 쓰이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와 벌 폐사의 상관관계는 약 10년 전부터 여러 연구 결과로 입증됐다. 저농도의 살충제라도 오랜 기간 노출되면 벌의 수분활동 등에 악영향을 미쳐 이미 유럽과 미국 일부 주에서는 이 살충제의 사용이 금지됐다.

여기에 기후변화도 다양한 방식으로 야생벌의 생존을 위협한다. 이른 봄과 꽃샘추위 등 오락가락하는 날씨로 얼어 죽을 수 있다. 꽃이 피는 시기와 야생벌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가 맞지 않으면 굶주림에 시달릴 수 있다. 기후변화로 꽃가루와 꿀을 얻어갈 밀원식물이 줄어든다는 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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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그린피스 활동가의 손에 담긴 벌 사체 [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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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볼사와 환경단체들은 당장 야생벌 개체 감소를 늦추려면 살충제를 줄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수정 공동대표는 “야생벌들이 살충제에 오랜 기간 노출돼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급격한 기온 변화나 먹이 부족 등이 더해지면 견디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벌들로부터 꿀을 얻는 양봉뿐 아니라 벌의 활동 전반을 돌아보는 연구도 뒤따라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수정 공동대표는 “해외에서는 야생벌이 어떤 꽃의 수분활동을 매개하고, 어떤 방식으로 흡밀하는지 등의 ‘네트워크 연구’와 관련 산업이 발달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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