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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119개 중 99개 적자, 초라함 넘어선 특례상장기업 '성적표' [視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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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린 기자]

특례상장기업의 주가 흐름이 지지부진하다. 가장 큰 문제는 실적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례상장기업이니 실적보단 성장성이 더 중요하다지만, 지난 4년간 특례로 상장한 기업 119개 중 영업적자를 낸 곳이 99개라는 건 심각함을 넘어선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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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특례상장기업의 주가 흐름은 코스닥지수보다 부진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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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년간(2020~2023년) '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기업의 숫자는 119개다. 이들 기업의 올해 주가 평균 등락률(4월 말 기준)은 -9.05%.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가 0.27%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통치 않은 성적표다.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아쉬운 점이 더 많다. 119개 중 올 들어 주가가 하락한 곳은 89개였다. 두자릿수 넘게 주가가 하락한 기업의 숫자는 71개였다. 30% 넘게 하락한 기업도 31개나 됐다. 특례상장주에 베팅한 투자자 입장에선 씁쓸할 수밖에 없는 숫자들이다.

특례상장은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의 상장 요건을 완화하거나 일부를 면제하는 제도다. 통상적인 상장 절차와 달리 시가총액과 같은 '양적 조건'을 채우지 않아도 된다. 기술력과 성장성만 갖추고 있다면 끝이다.

이른바 '싹수 있는 기업'이 자금난에 시달리는 일이 없도록, 증시 문을 맘껏 두드릴 기회를 주자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그런데 정작 이들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해야 할 투자자들이 투자를 외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특례상장기업의 주가가 부진한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공통점도 있다. 다름 아닌 부진한 실적이다. 특례상장기업 119개 중 지난해 손실을 낸 회사는 99개(83.19%)였다. 나머지 20개 기업만 흑자를 냈다는 거다.

물론 실적이 변변찮더라도 증시에 입성할 수 있도록 돕자는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면 적자 경영 자체를 문제로 삼긴 어렵다. 기술력이나 미래 성장성을 인정받았을 뿐, 당장 재무적 성과는 부족한 기업이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관건은 앞으로의 성장성과 실적 개선 여부인데, 대부분의 특례상장기업이 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영업손실 폭이 전년보다 커졌거나 적자로 전환하는 등 이익 지표가 악화한 기업의 숫자는 전체의 70%가 넘는 85개에 달했다. 이중 2022년엔 흑자였다가 지난해 적자로 돌아선 회사도 24개였다. 2023년 매출이 전년보다 줄어든 회사는 61개나 됐다. 증시에서 자금을 수혈하고도 몸집을 키우지 못한 기업이 절반이 넘었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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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로봇주 대장주였던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지난해 적자로 전환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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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이 악화한 기업 중에선 지난해 '뻥튀기 상장' 논란에 휩싸인 파두가 가장 눈에 띈다. 2022년 564억원을 기록한 이 회사의 매출은 지난해 224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5억원에서 -585억원으로 급전직하했다.

파두는 국내 반도체 업계 최초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기업으로 주목받던 스타기업이었다. 그런데 특례상장 이후 충격적인 분기 매출(2분기ㆍ5900만원)을 발표하면서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파두는 상장 절차를 밟으면서 지난해 예상 매출을 1202억원으로 추정했는데, 실제 매출(224억원)은 추정치 6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디스플레이 부품 기업 풍원정밀 역시 2022년엔 흑자였다가 지난해엔 적자(-219억원)로 전환했다. 일본기업이 석권한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파인메탈마스크(FMM)의 국산화를 추진하면서 상장 당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FMM 양산에 이르지 못한 탓이 크다.

한때 로봇주의 대장주로 꼽히던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실적 악화도 두드러진다. 2022년 13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445억원으로 고꾸라졌다. 파생상품 회계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적자여서 현금 유출은 없었지만, 어찌 됐든 흑자기업에서 적자기업이 됐다.

그나마 2022~2023년 사이 특례상장한 기업은 이제 막 증시에 입성했다는 점에서 변명거리라도 있다. 그런데 2020년에 특례로 상장한 회사 25개 중 지난해 영업적자를 기록한 곳이 21개였다는 점은 심각하다. 이중 프리시젼바이오, 엔젠바이오, 클리노믹스, 압타머사이언스, 이오플로우, 셀레믹스, 제놀루션, 소마젠, 레몬 등 9개 기업은 매출이 전년보다 줄어든 데다 적자 규모도 커졌다. 증시에 상장한 지 3년이나 흘렀는데도 실적이 궤도에 올라서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2021년에 증시에 입성한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31개 특례상장기업 중 영업이익을 낸 곳은 6개뿐이었다. 나머지(25개)는 적자였고, 이중 16개 기업은 전년보다 적자 폭이 더 커졌다.

이처럼 특례상장기업이 미래 성장성을 입증하지 못하자 정부도 대책을 마련했다. 한국거래소는 올 1월부터 3년 내 상장을 주선한 특례상장기업이 상장 후 2년 이내에 부실화할 경우, 주관사가 추후 특례상장을 주선할 때 일반투자자에게 공모가 90% 가격으로 주식매도선택권(풋백옵션)을 부과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풋백옵션은 일반투자자가 공모주 청약으로 배정받은 주식의 가격이 상장 후 일정 기간 공모가의 90% 이하로 하락하면 상장주관사에 이를 되팔 수 있는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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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특례상장기업이 조기에 무너질 것에 대비해 투자자들에게 주관사에 주식을 매도할 권리를 부여한 거다. 최근엔 금융감독원이 '기업공개(IPO) 주관업무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기업 실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주관사를 엄정 제재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부실기업이 특례제도를 악용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인데,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다. 특례상장기업의 부실이 발생해야 땜질하고 메우는 '사후 조치'여서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상당수 특례상장기업의 재무성과가 상장 전보다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현재의 주가 등락은 기술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면서 "특례상장기업의 기술 공시 위반이나 불공정거래의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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