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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법원 손에 달린 의대 증원 여부… 결정 어떻든 혼란은 불가피 [의·정갈등 주중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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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땐 증원 무산·정부 로드맵에 영향

기각 땐 일정 촉박·거부 움직임도 여전

항고심 판단 사실상 본 판결 같은 효과

증원 확정시 교수들 ‘집단 휴진’ 가능성

‘외국의사 도입’ 법 개정안도 반발 거세

원고 측 “정부 자료엔 2000명 근거없어”

2025년 의대 증원 여부가 이번 주 서울고등법원 결정으로 판가름나게 됐다. 수험생과 의대생, 전공의와 의대교수 등이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배분 결정의 효력을 중단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항고심에서 받아들여지면, 당장 내년 의대 증원이 멈춰 서는 것은 물론, ‘매년 2000명씩 5년간 1만명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의대 증원 로드맵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서울고법이 다른 1심 법원처럼 정부 손을 들어주더라도 내년 증원 일정이 촉박하고, 전공의·의대생 반발과 대학의 ‘학칙 변경’ 거부 움직임이 여전해 혼란 속에 2025학년 의대 증원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일보

12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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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법 결정에 ‘2025년 의대 증원’ 기로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대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을 심리 중인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구회근)는 지난 10일 정부가 제출한 의대 증원 근거자료 47건과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심리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제출 자료 중 ‘2000명’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문서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록이 전부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부분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월 회의에서 정부의 증원 계획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원고(의료계) 대리인 이병철 변호사는 “(제출 자료에) 2000명에 대한 근거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며 “대부분은 이미 공개된 보도자료나 언론 기사”라고 주장했다.

이번 주 내려질 법원 결정은 사실상 본안 판결과 같은 효과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촉박한 일정을 고려하면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백지화될 가능성이 크다.

집행정지는 행정처분에 대한 취소소송 등이 진행되는 동안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 때 처분의 효력이나 집행을 잠정적으로 정지하는 것이다.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 서울행정법원이 심리 중인 본안 소송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부의 의대 증원 절차는 중단된다. 앞서 1심 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이들이 원고로서 자격이 없다고 각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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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시내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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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는 2심에서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 1심과 달리 항고심 재판부가 정부의 증원 결정 과정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있고, 원고적격을 인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정원이 늘면 대학 총장이 법적 다툼을 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며 “국가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경우 다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고 그런 결정은 사법적으로 심사·통제할 수 없다는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번 주 결정에 양측 모두 재항고할 수 있다. 다만 각 대학이 이달까지 수시모집 요강에 의대 모집인원을 반영해 증원을 확정해야 하는 일정을 고려하면, 이번 결정이 사실상 결정적 판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심리하는 재항고심 역시 수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항고심 재판부가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지 않으면 본안에서 이를 뒤집기는 더욱 어렵다. 이정민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집행정지 사건에서는 ‘소명’ 정도만 하면 되는 것에 비해 본안 사건에서는 보다 엄격한 ‘증명’을 해야 한다”며 “소명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본안에서 승소할 가능성은 더욱 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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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원 확정이냐 무산이냐… 운명의 한 주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3달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12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앞을 시민이 지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의대 교수와 전공의, 수험생 등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결정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고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의 항고심 결론을 이번 주 낼 예정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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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법 결정에 따른 후폭풍은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부가 2025년 정원을 확정할 경우 의대 교수들이 ‘일주일 집단 휴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앞서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전공의 공백을 메우며 피로가 누적됐다는 등의 이유로 일주일 집단 휴진을 예고했다. 이미 ‘주 1회 휴진’ 방침을 세우고 지난달 30일, 지난 3일에 이어 10일까지 세 차례 휴진했다. 다만 세 차례 모두 대부분의 교수가 평소처럼 진료를 이어가 큰 의료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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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시내 대형병원에서 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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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공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외국 의사를 도입하겠다며 정부가 입법 예고한 관련법 개정안에 대한 의료계 반발은 거세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생각함’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까지 외국 의사에 대한 내용을 담은 보건복지부의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 입법예고 공지에 1116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중 개정을 반대하는 의견이 91%(1019개)였고, 찬성 의견은 19개, 기타 의견이 77개였다. 반대 측 댓글은 “실효성이 없다”거나 “환자와 의료인, 의료인과 의료인 간에도 의사소통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보건의료 재난 위기 상황에서 의료인 부족으로 인한 의료 공백 대응을 위해 외국 의료인 면허를 가진 사람이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했다.

한편, 복지부는 17일까지 전공의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에 참여할 의료기관을 모집하고 있다. 시범사업 참여를 신청하는 전공의 수련병원·기관은 사업시작일로부터 1년간 기존 36시간에 달했던 연속근무를 24∼30시간으로 단축해 운영할 예정이다. 필수의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와 근무시간이 많은 신경외과·흉부외과 중 2개 과목 이상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며, 근무 형태와 일정을 조정하고 추가 인력을 투입하는 등 각 병원이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도입하면 된다.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은 올해나 내년 수련환경평가 현지조사에서 제외하고, 내년 전공의 배정 시 2∼5명을 추가 배정할 방침이다.

정재영·이종민·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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