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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기업 압박하면서 "경영권 언급 아냐"…책임 회피하는 日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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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라인야후' 행정지도 문제가 한·일 갈등으로 번지자 "경영권 조정을 요구한 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총무성의 행정지도를 받은 기업(라인야후)이 이를 지분 조정 요구로 받아들였고, 관련 논의도 상당히 진척된 상황이어서 '책임 회피'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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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마쓰모토 다케아키 총무상. 총무성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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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 일본 총무상은 10일 기자회견에서 메신저 앱 '라인' 운영사 라인야후에 자본 관계 재검토 요구를 포함한 행정지도를 한 것과 관련, "경영권 관점에서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국에서 반발이 강해지고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는 "자본 지배를 상당 정도 받는 관계와 그룹 전체 보안 거버넌스의 본질적 재검토 가속화를 요구했다"며 "라인야후 측이 향후 제출할 보고서를 확실히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7일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도 "총무성의 행정지도 내용은 안전 관리 강화와 보안 거버넌스 재검토 등의 조치를 요구한 것"이라며 지분 조정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에서 '일본 정부가 나서 라인을 강탈하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연이어 사태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문제는 일본 정부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라인야후가 행정지도 내용에 있는 '자본 관계 재검토'를 모회사의 지분 조정 요구로 받아들였고, 실제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라인야후는 지난 8일 "모회사인 소프트뱅크와 네이버에 자본 변경을 강하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다음날(9일)엔 미야카와 준이치(宮川潤一) 소프트뱅크 최고경영자(CEO)가 결산설명회에서 "네이버가 가진 지분을 1%에서 100%까지 사들이는 것을 모두 논의 선상에 두고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인정했다.

미야카와 CEO가 "지분 매입 규모는 소프트뱅크 사업에의 영향과 캐시플로우(현금 흐름) 등을 고려해 결정될 수 있다"고 발언을 했을 만큼, 이미 양측의 협상은 구체적인 금액을 논의하는 수준까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는 지난 9일 관계자를 인용해 소프트뱅크가 네이버로부터 라인 야후의 지주회사인 에이홀딩스의 주식을 추가로 취득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다만 금액에서 (양측 입장의) 차이가 커 협상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당초 7월 라인야후가 총무성에 제출할 대책보고서에 관련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됐지만, 사안이 이미 양국 갈등 양상으로 번져 이른 시일 내 협상이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은 "총리관저와 외무성은 한국 측 반발이 나올 때까지 총무성의 행정지도가 외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국 정부와 양국 여론의 움직임을 보며 앞으로의 대응 방안을 정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일본 자민당 내 강경파들은 "일본인 대부분이 사용하는 라인을 명실상부한 일본의 인프라로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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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라인야후가 입주해 있는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도쿄가든테라스기오이타워에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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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라인야후 지분 조정 문제가 장기화하다 유야무야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일본 총무성의 해명에 따르면 행정지도의 목적은 네이버의 지분을 줄이라는 뜻이 아닌, '모회사인 네이버에 라인 운영 업무를 위탁하고 있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해소하라는 의미다. 라인야후가 정보 유출 사고를 낸 위탁사를 관리·감독하고 정보관리 강화를 요구해야 하는데 모회사라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으니 이런 구조를 바꾸라는 취지다.

앞서 라인야후는 지난 8일 "네이버와의 위탁 관계를 순차적으로 모두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총무성의 요구를 만족시킨만큼 지분 조정은 진행하지 않는 쪽으로 사태가 정리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다. 미야카와 소프트뱅크 CEO도 결산설명회에서 "라인야후가 네이버와의 위탁 관계를 '제로(0)'로 하겠다고 한 만큼, 자본 문제는 건드리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일본 정부의 '진짜 의도'를 살피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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