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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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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성금 헌납기’ F-4 팬텀, 퇴역 앞두고 고별 전국순례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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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공군기지 출발해 3시간 순례 비행

4대 중 2대는 과거 사용한 정글무늬·연회색 입혀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

KF-21 합류해 편대 비행…플레어 쏘며 퇴장 ‘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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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팬텀 필승편대가 국토순례 비행 중 가거도 상공을 지나는 모습.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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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늘은 세븐 클리어입니다. 팬텀이 고별 순례를 하기에 딱 좋은 날씨죠.”

지난 9일 경기 수원시 제10전투비행단에서 바라본 상공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하늘을 8등분했을 때 지상으로부터 7단계까지 구름이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 영공을 55년간 지켜온 공군의 F-4 전투기 팬텀은 퇴역식을 약 한 달 앞두고 이날 고별 국토순례비행에 나섰다.

‘하늘의 도깨비’라는 별명을 가진 팬텀은 ‘방위성급 헌납기’로 잘 알려져 있다.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이 십시일반 모은 방위성금 163억원 중 71억원으로 당시 최신 전투기였던 F-4D 팬텀 5대를 구매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5대를 ‘필승편대’로 명명했다. 군은 1977년 F-4D의 개량형인 F-4E를 추가 도입했다. 현재 F-4D는 모두 퇴역했고 F-4E만 10대 남아있다. F-4E가 전부 퇴역하면 F-4 전투기가 영공을 수호한 지 55년 만, 현재 운용 중인 F-4E를 기준으로는 47년 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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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2월12일 방위성금 헌납기 F-4D 팬텀이 수원 공군기지에서 이륙하는 모습.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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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이날 고별 비행에 나선 F-4E 전투기 팬텀 4대에 필승편대라는 이름을 다시 붙였다. 편대 전투기 4대 중 2대에는 각각 공군 팬텀의 과거 도색이었던 정글 무늬와 연회색을 입혔고 나머지 2대는 현재의 진회색으로 비행했다. 동체 측면에는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 문구와 함께 팬텀의 아이콘인 스푸크가 그려졌다. 스푸크는 팬텀의 뒷모습이 서양에서 믿는 ‘유령’의 모습과 비슷한 데서 착안해, 팬텀 최초 개발 당시 기술도면 제작자가 팬텀의 캐릭터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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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F-4E 동체 측면에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 문구와 함께 팬텀의 아이콘인 스푸크가 그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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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 비행에 나선 팬텀 필승편대는 1975년 ‘방위성금 항공기 헌납식’이 열린 수원기지에서 이륙해 평택과 천안·동해안을 지나 포항·부산·거제도와 대구·사천·여수·가거도 상공을 비행해 다시 수원기지로 착륙했다. 총 비행시간은 3시간을 훌쩍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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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필승편대 4대 중 2대에는 각각 팬텀의 과거 도색인 정글무늬, 연회색이 도색됐다.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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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은 팬텀 편대 중 3대의 후방 조종석에 한 명씩 앉았다. 사전교육과 메디컬 체크를 받고 빨간 마후라를 두른 뒤 중력가속도에 의한 의식상실(G-LOC)을 막기 위한 G-슈트, 구명정이 달린 하네스, 산소공급과 통신장비 연결을 위한 헬멧 등 장구를 꼼꼼히 챙겼다. 장구류 무게만 약 15kg다.

김태형 153대대장(중령)이 “탑승이 제일 걱정된다”고 했던 만큼 조종석에 오르기도 만만찮았다. 왼발부터 7계단의 사다리를 오른 뒤 전방 조종석 옆 좁은 공간을 살금살금 옆걸음으로 이동해 조종석에 앉았다. 각종 결속 장비들로 기체와 신체를 하나로 묶어 옴짝달싹하기 힘든 상황에서 헬멧 크기 때문에 머리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전방석 조종사의 지시에 따라 레이더 스위치를 ‘스탠바이’로 옮기자 팬텀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거친 엔진음이 헬멧과 귀마개를 파고들었다. 8초 후 기체는 활주로를 박차고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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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팬텀 필승편대가 국토순례 비행 중 부산 광안대교 상공을 지나는 모습.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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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로에 들어서기 위해 급선회 기동을 하자 원심력에 의해 중력가속도(G)가 발생했다. 약 3G(중력의 3배) 압력이 몸을 짓누르자 G슈트에 공기가 자동으로 주입됐다. 공기압을 이용해 하체에 혈액이 쏠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캐노피(조종석 덮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수원 시내가 정면으로 보였다. 기체가 거의 70도가량 왼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선회 기동 이후엔 지면과 평행하게 비행했지만 기류의 영향으로 기체가 꾸준히 상하로 꿀렁거렸다. 레이더와 계기판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뱃멀미와 같은 이유로 속이 매스꺼워지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 탓에 태양열은 조종석을 뜨겁게 달궜다. 4번기 전방석 조종사인 박종헌 소령은 “여름에 비행하다 보면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뜨겁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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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팬텀 필승편대가 국토순례 비행 중 새만금 상공을 지나는 모습.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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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대가 사천 상공을 지날 때는 아직 개발 단계에서 시험 비행 중인 국산 전투기 KF-21 보라매 2대가 합류했다. 사천은 KF-21을 개발 중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위치한 곳이다. 공군의 과거와 미래 전력은 함께 델타(Δ) 대형을 이뤄 함께 비행했다. 고흥 상공에서 KF-21 2대는 양쪽으로 급선회해 편대에서 이탈했고 팬텀 4대는 플레어를 발사하며 배웅했다. 공군의 ‘막내’가 경의를 표하고 ‘대선배’는 미래 공군 전력으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기원하며 격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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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의 미래 전력인 KF-21 보라매 두 대(가장 왼쪽과 가장 오른쪽)가 지난 9일 팬텀 고별 비행에 합류했다. 사진은 KF-21 두 대가 고흥 상공에서 급선회해 이탈하는 모습.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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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7일 수원 기지에서 열리는 팬텀 퇴역식에는 해외 취재진 100여 명도 함께 팬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예정이다. 제10전투비행단 제153전투비행대대 박종헌 소령은 “국민 성금으로 날아오른 필승편대의 조국수호 의지는 불멸의 도깨비 팬텀이 퇴역한 후에도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말했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국방부 공동취재단|수원·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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