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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데스크 칼럼] 정치에 짓눌린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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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중소기업 사장의 가장 큰 고민은 제대로 일할 사람을 찾는 것이다. 한국 사람을 고용하고 싶은데, 지원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외국인 근로자는 의사소통과 숙련도가 문제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중소기업은 한두 곳이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 중인 중소 제조업체 12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외국인력 관련 고용 관련 종합 애로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의 생산성은 같은 조건의 한국 사람과 비교할 때 고용 초기(3개월 미만) 59%에 불과했다.

그러나 3년 이상이 되면 생산성이 99.2%로 한국 사람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 된다. 일이 손에 익을 만하면 이번엔 비자가 문제가 된다. 비전문 취업비자(E9)로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는 최대 4년 10개월만 국내에 체류할 수 있다. 기간을 연장하려면 본국으로 돌아간 뒤 6개월 후에 재입국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2년 12월 외국인 근로자의 체류 기간을 최대 10년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듬해 9월 관련 법안도 발의됐다. 하지만 여야 갈등으로 개정안은 21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될 전망이다.

전 세계 각국은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는데, 한국의 거대 야당은 ‘부자 감세’란 틀을 씌워 반대한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자국에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는 기업에 527억달러(약 72조원)를 지원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보조금을 받고 미국에 첨단 공장을 짓는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미국 정부의 전략이 작동하면 10㎚(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첨단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의 점유율이 현재 0%에서 8년 뒤 28%로 늘고 같은 기간 한국의 비율은 31%에서 9%로 줄어들 것으로 봤다. 이런 전망이 현실이 되면 재앙 수준이다.

재계는 민간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임시투자세액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도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올해 말까지 1년 연장하겠다고 밝혔으나 연장을 위해선 조세특례제한법을 고쳐야 한다. 야당은 벌써 임시투자세액공제의 효과가 불투명하고 세수 감소가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속·증여세 개편 논의도 야당의 반대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한미그룹은 5400억원 규모인 상속세를 내기 위해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외국계 투자회사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미그룹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의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는 “한미그룹은 팔지도 않을 상속 주식에 부과된 세금 때문에 가업이 망가진 경우”라고 했다.

공들여 키운 기업을 세금 내려고 파는 게 국가에 도움이 되느냐는 지적이 많다. 상속·증여세는 기업을 계속 영위하면서 나눠서 납부해도 되고, 나중에 주식을 팔 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있다. 그럼에도 거대 야당은 부자 감세라며 상속·증여세 개편을 반대한다.

기업의 목표가 이윤 추구이듯, 정치인의 목표는 당선이고 야당의 목표는 집권이다. 야당이 차기 대선에서 집권하려면 현 정부에서 경제가 망가져야 한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협치를 얘기하지만, 실제로 협치가 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오히려 야당은 남은 기간 내내 몽니를 부릴 가능성이 크다.

세계 시장에서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국내 기업들은 한국의 정치권에서도 외면받아 외롭고도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전재호 산업부장(je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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