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1 (화)

탐정 자칭 민간인이 이주자 불심검문·체포…불법 행위 방관하는 정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충북 지역 자국민보호연대 활동가들이 이주민 단속에 활용한 불법 장비들. 충북경찰청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북 성주군에서 중앙아시아 식당을 운영하는 고려인 따냐(44·가명)는 2024년 3월3일 손님을 받고 요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요일이었다. 오후 2시께 대구 북구의 한 상가 건물에서 일하고 있던 여동생에게서 “언니, 형부가 잡혀갔어”라고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동생이 알려준 소셜미디어 ‘틱톡’에서 남편이 체포되는 영상을 본 따냐는 손이 덜덜 떨렸다. 영상 속에선 비자가 만료돼 미등록 체류 중이었던 따냐의 남편이 땅바닥에 엎드린 채 경찰에 체포당하고 있었다. 이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사람은 ‘자국민보호연대’ 박진재(50) 대표다. ‘한국국민당’이라고 적힌 주황색 점퍼를 입고 태극기가 새겨진 빨간 모자를 쓴 박진재는 남편을 체포하는 경찰을 향해 “내가 분명히 도주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거친 숨을 고르며), 거기 (미란다 원칙) 고지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박진재의 말에 따라 현장 경찰들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뒤 남편 ㄱ씨를 끌고 경찰서로 향했다. 한국어를 모르는 남편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터였다. 여동생은 “상가 건물에서 폐기물 처리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박진재가 들어와 ‘나 아느냐? 너는 무슬림이지? 나가야 한다’고 다짜고짜 소리쳤다”고 했다.





이주민 체포 영상 소셜미디어에 올려





한겨레

박진재 유튜브 화면 갈무리


따냐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경찰서로 향했지만 남편은 이미 출입국·외국인사무소(출입국사무소)로 넘겨진 뒤였다. 남편의 미등록 체류에 대한 범칙금 1천만원을 납부하고 카자흐스탄 정부에서 발급받은 부부관계 증명서를 제출했지만, 출입국사무소는 ㄱ씨를 출국시켰다. 따냐는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남편은 2022년 10월 행정사가 비자를 연장할 수 있는 시기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서 뜻하지 않게 미등록 체류가 됐는데, 카자흐스탄에 따로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불법이긴 하지만) 나와 우리 식구들과 한국에 머무를 결심을 했던 것”이라며 “박진재는 경찰도, 출입국사무소 직원도 아니면서 어떤 근거로 동생과 남편이 일하는 건물에 들어가 인간의 기본권인 종교를 모욕하고 남편을 경찰에 넘겼는지 너무 화난다”고 말했다.



방문취업 동포(H-2) 비자로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따냐는 아기를 갖기 위해 난임 치료도 받고 있었지만, 남편이 추방되면서 치료도 중단됐다. 따냐는 “범칙금을 내고 출국했기 때문에 출입국사무소는 6개월 뒤 카자흐스탄에서 다시 비자를 신청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이주민 혐오 성향을 보이는 극우단체가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미등록 이주민을 직접 체포하는 등 자경단 활동을 펼치고 있어 이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주민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표현되는 수준을 넘어 불법적인 직접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이런 행동이 중대한 범죄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정작 정부는 이러한 활동을 두고 명백한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아 사실상 혐오 범죄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겨레

22대 총선 대구 북구 자유통일당 박진재 후보의 선거 홍보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혐오 동력 삼아 ‘정치세력화’ 도모





박진재가 자국민호보연대를 처음 구성한 건 2018년 12월이었다. 그해 5월엔 예멘 내전을 피해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로 들어오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예멘 난민들은 자국에서 징집과 전쟁을 피해 말레이시아를 거쳐 무사증(사증면제협정에 따라)으로 입국해 난민 지위를 신청했지만, 한국 정부는 예멘 난민 가운데 3명을 법적 난민으로 인정했고, 나머지는 예멘의 내전 상황을 고려해 인도적 체류 지위(G-1-6 비자)를 부여했다.



국내에선 난민을 비롯한 이주민에 대한 혐오 여론이 조성되는 계기가 됐는데, 예멘 난민 가운데 이슬람교를 믿는 젊은 남성이 많다는 이유로 반무슬림 여론도 함께 고개를 들었다. 박진재는 당시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인천 지역에서 반무슬림 활동을 하며 창당 등 정치세력화를 시도했다.



이후 박진재는 활동 영역을 미등록 이주민 사적 체포로 확장하고, 인천을 벗어나 대전과 충청 지역으로 무대를 넓혀나갔다. 2022년 3월엔 충북 청주 상당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1.8%의 득표로 낙선했고,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인천시 시의원 선거 미추홀구 2선거구에 한국국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0.8%의 미미한 득표로 낙선했다. 박진재는 일관되게 ‘무분별한 외국인 유입, 퍼주기 정책을 폐지하자’와 ‘자국민보호, 국민이 먼저다’ 등 반이주민 구호와 ‘난민법 폐지’ ‘반동성애’ ‘반페미니즘’ ‘이민청 반대’ 등 소수자 혐오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수차례 선거에서 극히 미미한 지지를 받았지만 박진재는 좌절하지 않고 사적인 미등록 이주민 체포와 기부금 모금 활동을 계속하며 몸집을 불려나갔다.



자국민보호연대 누리집을 보면, 이들은 행동강령으로 △불법체류자나 외국인 범죄자 제보를 받으면 신속하게 출동해 상황을 조사 △불법체류자와 범죄자의 동선을 파악해 관련 증거를 확보하고 법 집행 기관에 정보를 제공 △국가의 사법기관, 경찰, 출입국사무소와 협력해 제보된 사례를 처리 △불법체류자와 외국인 범죄에 대한 시민 인식 높이기 위한 교육 활동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미등록 이주민(불법체류자)과 외국인 범죄자를 신고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단체 내의 역할을 현장대응팀(이주민 신병확보, 소재지 파악 후 사법기관에 인계), 조사팀(출입국 사범 및 범죄자를 민간조사원이 조사) 등으로 세분화했다.



이렇게 인천과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박진재는 대구 북구에서 이슬람 사원 건설을 놓고 논란이 일자 활동 무대를 대구로 옮겨 대구·경북 지역의 미등록 이주민 색출에 집중했다. 2024년 4월엔 제22대 국회의원선거 대구 북구갑 선거구에 자유통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탐정 신분증 제시하고 ‘불심검문’





박진재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린 500여 개의 영상을 보면, 거주지역을 침입하거나 임의로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불법성이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다. 실제로 충북경찰청은 2024년 4월22일 박진재와 함께 자국민보호연대에서 활동했던 일행 3명이 충북 음성군 등 이주민 밀집 지역을 돌아다니며 미등록 이주민 12명을 붙잡아 가스총과 삼단봉으로 위협해 폭행하고, 1700만원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길에서 다니는 이주민에게 임의로 제작한 사설탐정 신분증을 제시한 뒤 외국인등록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이주민이 도망가면 붙잡아 “100만∼200만원을 주면 체류 자격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협박했는데,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단체 활동 경비가 나오지 않아 돈을 요구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당국은 이들 외에는 자국민보호연대의 활동을 문제 삼지 않고 있다. 박진재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영상에서 “충북 지역에서 검거된 일당은 과거 함께했지만 삼단봉을 사용하는 등 불법적인 일을 해 지금은 같이(일)하지 않고 있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진재는 자신이 미등록 이주민 관련 제보를 받아 현장에서 체포해 경찰이나 출입국사무소에 넘기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211조(누구냐고 묻자 도망하려고 할 때 현행범인으로 본다)와 제212조(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를 근거로 내세운다.



법조계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미등록 이주민이 출입국관리법을 어긴 것은 맞지만, 행정법규 위반이 현행범으로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일반인에 의한 현행범 체포가 무조건 가능한 것은 아니고, 상황의 긴급성 등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 사적인 체포를 허용하는 것인데 지나가는 외국인을 붙잡아서 불심검문을 하고 주거지에 침입까지 하는 것은 정당한 방법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의 대응은 오락가락이다. 박진재가 게시한 영상들을 보면, 어떤 경찰은 박진재에게 이주민을 인계받아 신원을 확인하고 체포하기도 하지만 일부 다른 경찰은 “이분도 인권이 있는데 왜 경찰도 아닌 당신이 자의적으로 체포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박진재를 꾸짖기도 한다. 이런 대응이 박진재에게 활동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한겨레

자국민보호연대 누리집 화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가 방치하면 유사 범죄 증가할 것”





“혐오범죄를 저지르는 건 박진재이지만 진짜 잘못은 정부와 정치에 있습니다.”



혐오표현과 인권 관련 전문가인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박진재가 수년 동안 사적으로 미등록 이주민을 체포하는 활동을 하면서 세 차례나 선거에 출마해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게 방관한 당국과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홍 교수는 “한국은 2010년께부터 이주민과 다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이 등장했고 2018년 예멘 난민 유입을 계기로 확산했는데, 이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표현을 넘어 (박진재처럼) 물리적 행동으로 발전하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며 “한국은 혐오범죄를 처벌하는 법이 따로 없기 때문에 법무부나 사법 당국이 ‘박진재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명확한 신호를 주지 않고 좌시하면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박진재와 같이 사적으로 미등록 이주민과 관련한 제보를 받아 체포하고 검거해 경찰이나 출입국사무소에 인계하는 것이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한겨레21>의 질의에 “출입국관리법 위반 관련 내용이어서 법무부 쪽에 문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답했고, 법무부는 같은 질의에 답변을 해오지 않았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한겨레 서포터즈 벗 3주년 굿즈이벤트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기획] 누구나 한번은 1인가구가 된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