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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노력해야만 지키는 행복한 노후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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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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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인 2018년 해외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한 적이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문화, 힐링 명소를 둘러보는 6박 8일 일정이었다. 숲을 걷고 모스크바 근교의 톨스토이 생가에 가고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 간 대륙횡단열차를 타는 등 나름 차별화된 여행 일정을 짰다.

각각 80대, 70대 후반이었던 한 부부의 여유 넘치는 삶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늘 쾌활하고 적극적이었던 남편은 어디로 가든 맨 앞에서 걷고 짐을 버스에 싣거나 내릴 때도 뒤로 물러나 있지 않았다. 호기심도 많아서 관광 명소마다 사진을 찍고 메모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계속 질문을 했다.

귀국 후 연락이 와서 한 번 만났는데, 꽤 두툼한 노트를 한 권 내밀었다. 우리가 다녀온 여정을 기록한 것이었다. "선생님, 정말 멋지세요. 저도 선생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두 분이 적지 않은 여행 경비를 선뜻 낼 수 있는 경제력과 건강, 다른 사람들에 대한 넉넉한 마음 씀씀이까지. 나도 이분처럼 여든 살, 아흔 살까지 멋지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은 연락이 안 되지만 여전히 멋진 삶을 즐기실 것으로 믿는다. 그 뒤 건강 강의를 할 때마다 두 분 이야기를 100세 시대의 가장 이상적인 삶의 사례로 들려주곤 한다. 얼마 전 천안시 평생학습관의 '인생 설계 강좌' 프로그램 강의에서도 '100세 시대' 행복한 삶의 조건으로 경제력(돈)과 건강, 삶의 목표, 적절한 커뮤니티 활동이니 계획을 잘 세워 실천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런데 그런 삶이 누구에게나 다 가능하지 않다는 걸 지난 연휴에 고향 어머니를 뵈러 갔을 때 깨달았다. 작년 말 척추관협착증 수술을 받으신 어머니는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는 아들의 성화에 유일한 낙이었던 텃밭 채소 가꾸기도 포기하고 기죽어 지내신다. 어머니 연세가 러시아 여행을 함께 했던 당시의 부부와 비슷한 80대 중반인데, 건강 상태와 생활 패턴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럼 나는 어떤가? 6년 전의 결심대로 노년기를 멋지게 살 준비를 잘 하고 있나? 자문자답 과정에서 현타가 왔다. 경제적 여유(돈)도 건강도 자신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한 자료에 따르면 노후의 기본 의식주를 해결하는 최소 생활비는 월 251만 원, 여행과 여가활동을 즐기고 손주들에게 용돈을 줄 수 있는 적정 생활비는 월 369만 원이라고 한다. 아흔 살까지 산다고 하면 현금 10억 원이 필요하지만 지금 내 사정은 턱없이 부족하다. 어쩌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상당 시간 계속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친구들보다 건강한 편이라고 자부했지만 요즘 들어 부쩍 몸 이곳저곳에서 고장신호가 켜지고 있다. 뱃살이 나오고 허리가 아프고 눈도 침침해진다. 2008년 대장암 수술 이후 철저하게 몸 관리를 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근거 없는 자신감만 믿고 건강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탓이다.

눈앞에 닥친 일을 쳐내는 데 급급해 정작 중요한 준비는 제대로 못 했으면서 '나는 행복하게 살 준비가 된 사람'이라는 정신 승리에 도취돼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한국일보

홍헌표 캔서앤서(CancerAnswe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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