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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기자수첩] SSG닷컴 풋옵션 논쟁, 첫 단추 잘 끼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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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당신이 어느 백화점에서 발행한 5만원짜리 상품권을 구매했다. 그 상품권으로 해당 백화점에서 5만원짜리 옷을 한 벌 샀다. 이 백화점의 총 거래액(GMV)은 얼마가 맞을까? 얼핏 생각하면 5만원이 두 번 오갔으니 GMV는 10만원이다. 하지만 백화점이 번 돈은 5만원뿐이다. 그렇다면 GMV는 5만원일까? 아리송하다.

앞의 사례에서 GMV가 5만원이라고 생각한 독자라면, 이 경우도 생각해보자. A쇼핑몰에서 B사 상품권을 팔았다. B사 상품권은 A쇼핑몰에서는 쓸 수 없다. 남의 상품권을 가져다가 판 것뿐이다. 그렇다면 A쇼핑몰은 상품권 판매액 5만원을 당당하게 GMV에 올릴 수 있을까.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신세계그룹 얘기를 해보자. 유통 공룡인 신세계그룹은 지난 2019년 온라인 시장 진출을 위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인 SSG닷컴을 출범시켰다. SSG닷컴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대주주인 신세계와 이마트는 2019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너티)와 BRV캐피탈로부터 1조원을 수혈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풋옵션(주식 매도 청구권) 조항을 삽입했다. SSG닷컴의 5년 내 GMV가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거나, 기업공개(IPO) 관련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신세계그룹이 자신들의 보유 지분을 웃돈을 주고 되사도록 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같은 조항을 두고 양측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신세계그룹은 SSG닷컴의 GMV가 5조1600억원을 넘겨, 투자자들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투자자들은 SSG닷컴이 상품권 거래 등을 통해 거래액을 과대 계상한 만큼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IPO 관련 조건을 두고도 대립하고 있다. 신세계는 상장 주관사까지 선정한 만큼 조건을 충족했다는 입장이지만, FI들은 증권사가 상장 업무 수임을 위해 제출한 ‘제안서’는 ‘의견서’로 볼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 신세계는 상품권 판매액도 GMV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어피너티는 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사실 지난해 말 SSG닷컴에서 판매한 상품권은 신세계상품권이 아니었다(일부 있을 수는 있지만). 쓱상품권이라는 것을 새로 만들어 팔았는데, 이 상품권의 특징은 매수 가격과 같은 가격으로 환불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100만원짜리 쓱상품권을 5% 할인해 팔았는데, 이 쓱상품권을 쓱머니 어플에 등록하면 고스란히 출금할 수 있었다. 카드 혜택만 빼먹기 위해 수많은 이용자가 상품권 구입과 환불을 반복했다.

이는 티몬, 위메프 등이 많이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티몬, 위메프가 주로 파는 해피머니, 북앤라이프, 문화상품권 등은 책을 사려고 구입하는 상품권이 아니다. 죄다 현금 환불이 목적이다.

상품권 판매는 매출일까 아닐까. 위 문제에 대한 정답을 미리 내려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GMV는 이커머스나 플랫폼 업계에선 기업가치 산정을 위해 흔히 쓰이지만, 공식 회계 기준은 아니다.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지표란 의미다. 주주 간 계약을 할 때 상품권 매출은 어떻게 인식할지 명확히 해뒀다면 지저분한 분쟁은 시작도 안 했을지 모른다.

잦은 분쟁이 가뜩이나 금융 후진국으로 치부되는 한국 자본시장에 악영향을 줄까 우려스럽다. 최근 PEF 운용사와 대기업 간 분쟁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자꾸만 뒤탈이 나는 한국에 글로벌 자본이 쉬이 유입될 리 만무하다. 금융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한국에는 높은 금융 장벽이 세워질지 모를 일이다. ‘분쟁’보다 ‘상생’이란 단어가 익숙해지길 기대한다.

오귀환 기자(ogi@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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