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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사설] 또 발생한 교제살인··· 신상 관심보다 공적 대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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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살인)를 받는 20대 남성이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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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발생한 교제살인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신상털기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해자가 서울 유명 대학 의대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범죄자 신상에 대한 호기심이 높아진 것인데, 본질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교제범죄의 심각성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 6일 서울 강남 고층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범행 전 미리 흉기를 구입할 정도로 계획적이었다. 교제범죄로 여성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 3월에도 경기 화성에서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그의 어머니까지 전치 10주의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교제폭력 피의자는 지난해 1만3,939명에 이르러, 2020년(8,951명)보다 55.7% 급증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피의자가 수능 만점자 출신의 의대생이라는 점 때문에 신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주로 소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피해자 신상 정보도 함께 유포되고 있다니, 유족들이 당할 2차 피해도 우려된다. 물론 중대 범죄자에게 인권을 들이대어 마냥 신원을 보호만 할 것은 아니다. 3월 발생한 교제살인 피의자 김레아에 대해선 검찰이 사건의 중대성 등을 감안해서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신상과 사진을 공개했다. 그렇다고 해도 사적 영역에서 가해자, 피해자를 가리지 않고 신상을 공유하는 현상은 중범죄를 선정적으로만 바라보게 하는 폐해가 따른다.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교제범죄에 대한 공적 대책 마련이다.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나 가정폭력 피해자는 즉시 분리 등 응급조치가 규정돼 있지만, 교제폭력은 명확한 정의조차 없다. 여러 차례 데이트(교제)폭력특례법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교제폭력은 주로 폭행·협박죄로 입건하는데 반의사불벌죄여서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내면 처벌받지 않는다. 가해자의 회유로 피해자는 처벌불원을 거듭하다 결국 살해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반의사불벌 조항을 폐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교제폭력 대책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아울러 수능 만점자의 살인 사건에서, 우리 사회는 입시에 ‘올인’하다 인권·인성 교육을 놓친 한국 교육의 실패 또한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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