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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의대생 살인’ 아닌 ‘전형적 교제살인’···여성 대상 폭력 대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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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연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A씨가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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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고층 건물 옥상에서 20대 남성이 결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해 교제살인·폭력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다. 충격적인 범행을 저지른 피의자뿐 아니라 피해자의 신상과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이 온라인에 확산되면서 사건의 본질이 희석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교제살인·폭력 등 빈발하는 범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 6일 오후 6시30분쯤 서울 강남역 근처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A씨(25)를 긴급체포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는 말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피의자는 서울 소재 의대 재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범행 전 흉기를 미리 구입하고 피해자를 불러낸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건 경위를 수사 중이다.

“또 또래 여성이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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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여자친구를 살해한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빌딩의 옥상으로 향하는 길. 옥상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오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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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사건인데다 여성 대상 흉악범죄여서 충격이 더욱 컸다.

8일 기자가 찾은 사건 발생 건물 옥상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검은색 썬팅지가 붙은 옥상 문에는 ‘5월2일부터 공사를 위해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건물 경비원은 “위층 사람들이 흡연을 위해서만 찾던 곳이었는데 살인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부터는 아예 문을 잠궜다”고 말했다.

강남역 인근 회사에 다니는 박모씨(26)는 “하루가 멀다 하고 또래 여성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 같다”며 “참담하다”고 말했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 건물은 2016년 5월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에서 불과 500여m 떨어진 곳이었다. 한 여성이 모르던 남성에게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이 사건은 여성 대상 혐오 범죄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신호탄이 됐다.

여성 대상 교제살인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경기 화성시에서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여자친구의 어머니에게도 중상을 입힌 김레아(26)의 신상이 공개됐다. 지난해 7월에는 B씨(31)가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옛 연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에는 경기 안산시에서 한 남성이 여자친구가 사는 집에 찾아가 24시간 동안 감금한 채 구타·성폭행을 일삼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사건 중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지난해에만 최소 138명이었다.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311명이다.

교제살인이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지 오래지만 여전히 사회의 반응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여성 대상 범죄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가 ‘명문대 의대생’이라는 등 그의 신상에 관심이 쏠렸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비롯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A씨의 과거와 신상이 빠르게 퍼졌다. 급기야 피해자 관련 정보까지 유포되는 일도 벌어졌다. 전형적인 교제살인 범죄가 ‘의대생 살인사건’으로 대중에 의해 소비된 것이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가해자가 의대생이라는 등의 정보가 부각되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으로만 비치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전형적인’ 교제 살인


전문가 사이에선 개별 사건으로만 접근하기엔 심각성이 도를 넘었다면서 정부가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20대 여성들이 연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는데 이를 멈추기 위해서는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며 “공식적으로 (교제 살인에 대한) 처벌과 예방시스템을 빨리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경찰이 정부부처로서 교제폭력에 대해 엄격하게 대응하겠다, 빠르게 출동하고 제지하겠다 등의 메세지를 줘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국회에서 교제폭력과 관련해서 엄격하게 대응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부소장은 “이별 통보가 원인이 됐다거나 익숙한 장소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 등을 보면 우리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교제살인으로 볼 수 있다”며 “친밀한 관계인 파트너와 일상 속에서 이러한 폭력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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