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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쿠팡·배민도 망한 걸 해낸다…일본 뒤집을 '관상'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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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몰리는 ‘스타트업 천국’ 일본 창업 팁



■ 경제+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돈과 사람이 몰립니다. 빅테크, 글로벌 벤처캐피털(VC)부터 한국(K) 스타트업까지 모두 일본행(行) 티켓을 끊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 기술·창업·투자 생태계는 도쿄의 시끌벅적한 이자카야처럼 붐빕니다. 지난해가 일본행의 ‘찍먹’ 수준이었다면, 올해부턴 ‘부먹’ 단계로 올라섰습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앞서 ‘좀 한다’는 배민과 쿠팡도 쓴맛만 본 곳이 일본이지요. 메신저 라인으로 일찌감치 일본에서 성공한 네이버조차 경영에서 손 떼라는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일본은 기회의 땅일까요?

그런데 도대체 왜 지금 일본일까. 빅테크와 한·일 VC들은 어떤 분야에서 기회를 찾고 있나. 일본에 진출한 K스타트업은 어디서 돈을 벌 생각인가. 지난해 8월에 이어 일본 문을 두드리려는 K스타트업의 속내와 이후의 분위기, 알아야 할 팁을 모두 짚었다.

엔저(低)와 저금리, 5년간 스타트업 투자 금액을 10배 이상 늘린다는 정부의 파격적 지원. 최근 스타트업계 일본 붐을 설명할 때 흔히 나오는 말들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 요즘 일본 시장의 진짜 분위기를 들여다봤다.

중앙일보

정근영 디자이너


역대급 호황인 일본 증시 뒤엔 외국 ‘큰손’이 있다.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을 매입한 금액은 약 7조7000억 엔으로, 10년 만에 최고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해외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 매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영국·중국·한국의 투자자, 그리고 영국을 통해 들어온 오일머니가 그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사모펀드(PE) 거래 규모도 아시아·태평양 지역 중 유일하게 성장(베인앤컴퍼니)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앞다퉈 일본행이다. 오픈AI는 최근 도쿄에 아시아 첫 거점 오피스를 열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일본 AI 관련 분야에 29억 달러(약 4조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2027년까지 2조2600억 엔(19조6800억원)을 투자한다. 현재 생성 AI(인공지능) 기반이 되는 전설의 논문 ‘트랜스포머’의 공동 저자인 릴리언 존스 등 구글 출신 연구원들이 세운 ‘사카나 AI’도 지난해 도쿄에 터를 잡았다. 회사 측은 “일본은 수준 높은 기술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며 도쿄를 선택한 이유를 들었다.

스타트업 시장 성격도 바뀌는 중이다. 지금까진 스타트업 시장 규모가 작아 시리즈 B 이상 투자하는 펀드가 드물었다. 그러나 최근엔 시리즈 B 이상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대형 펀드가 늘었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박찬훈 이사는 “일본 스타트업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이미 발행된 주식을 유통하는 세컨더리 마켓도 새로 생겨났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정근영 디자이너


무엇보다 일본이 AI시대를 맞아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AI 관련 법·제도는 기업에 유리한 편이다. 일본은 2018년 저작권법을 개정해 AI에 의한 저작물 학습에는 원칙적으로 저작권자 허가가 불필요하다고 합의했다. 저작권에 대한 각국 규제가 커지는 가운데 일본은 AI 학습 데이터가 필요한 스타트업들엔 천국인 셈이다. 빅테크가 모이니 스타트업도 흥한다.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플러그앤플레이’ 일본 지사 이토 케이타 매니저는 “해외 인재들이 일본에 오고, 빅테크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하는 일본인이 늘면서 스타트업계에 활기가 더해질 것”이고 말했다.

빅테크의 움직임은 일본에 진출하는 한국 스타트업에도 기회다. 글로벌브레인 이경훈 한국 대표는 “일본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시장이 큰 편이라고 하지만, 아직 더 클 여력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잊지 말자. 일본 시장은 쿠팡·배민이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도 정착에 실패한 시장이다. 무턱대고 가선 안 된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살아남을 관상인가. 한·일 VC들이 보는 경쟁력 있는 기업을 분석해봤다.

중앙일보

차준홍 기자


B2C(기업 소비자 거래) 플랫폼이 주로 유니콘 대열에 오른 한국과 달리 일본 유니콘은 거의 B2B(기업 간 거래) SaaS 기업이다. KOTRA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스타트업 투자 금액 상위 10개사 중 6개사가 딥테크, 4개사가 SaaS 기업이다. B2C 플랫폼은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드는데, 일본에서 그 정도 큰 투자를 할 수 있는 펀드가 많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스타트업도 스스로 수익을 창출해야 했는데, 이들 제품을 써줄 곳은 결국 대기업이었고 B2B 스타트업이 컸다. 일본 시장에 투자한 VC들이 눈여겨보고 있는 스타트업도 SaaS 기업이 많다. 일본 대기업들은 SaaS에 대한 지불 의사가 크다.

정부가 AI에 큰 판을 깔아준 만큼 일본에서도 생성 AI 스타트업 창업 붐이 일고 있다. 일본 AI 시장 규모는 연 평균 28.5% 성장해 2030년 365억2000만 달러까지 클 것(스태티스타)으로 예상된다. 국내 AI 기업도 성과를 내는 중이다. 올거나이즈는 노무라증권, 유통사 이온그룹, 이동통신사 KDDI 등 일본 주요 대기업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AI 기반으로 매장 관리 솔루션을 운영하는 ‘딥핑소스’도 지난해부터 매출이 늘고 있다.

일본에 진출한 K스타트업은 어디에서 기회를 봤을까. 렌터카 SaaS 기업 캐플릭스는 2022년 일본에 법인을 설립했다. 지난해 일본에서 캐플릭스 ERP(전사적 자원관리)를 사용한 렌터카는 400대, 연간 거래액은 25억원이었지만 올해는 렌터카가 1만4000대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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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2022년 일본에 현지법인을 설립한 당근은 도쿄·요코하마·가와사키 등 일부 지역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김결 당근 글로벌 프로덕트 리더는 “일본은 오프라인 기반 지역 공동체 문화가 형성됐고, 신뢰를 중시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이 당근 서비스와 잘 맞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심리상담 플랫폼 마인드카페 운영사 아토머스는 일본에서 지난 1년간 익명으로 고민을 나누는 정신건강 커뮤니티를 통해 5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국민 명함 앱 리멤버는 2018년 명함을 주고받는 문화가 가장 강력한 일본에 진출해 현재 약 3000개 유료 기업 회원을 확보했다. 국내 데이팅앱 1위(매출 기준) 위피는 지난 3월 일본에 웹(web)서비스를 출시했고, 7월 앱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로톡 운영사 로앤컴퍼니 관계자는 “AI 법률비서 수퍼로이어를 앞세워 일본 법률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법률AI 솔루션 기업 BHSN은 지난해 9월 일본에 자회사를 설립했고, 판결 검색 서비스 엘박스도 일본 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에서 잘되니 일본에 우리도 한번 가볼까.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선 안 된다. 강철호 원티드재팬 대표는 “한국식 성공모델을 그대로 적용해 빠른 시간에 성공하려는 시도는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수용성이 낮은 일본에선 결과를 만들기 쉽지 않다”며 “최소 3년 이상 지속적으로 투자할 각오와 함께 한국과 일본을 모두 이해하는 ‘브릿지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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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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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국·권유진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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