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5개월만에 신속수사 지시
공수처도 특검 전에 성과 못내면 부담
[헤럴드경제=윤호 기자]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각각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와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 의혹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국회의 특검을 의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간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을 받은 사건에 대해 성과를 내 특검 추진을 방어하거나, 최소한 부실수사 논란을 불식시키고 수사기관으로서 명분을 지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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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5개월만에 ‘신속수사’ 지시7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이원석 검찰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의혹을 수사하는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전담수사팀을 꾸려 신속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1부(김승호 부장검사)에 검사 3명을 추가 투입해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장면을 몰래 카메라로 촬영해 폭로한 ‘서울의소리’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검찰에 고발한 것은 작년 12월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됐지만 5개월간 별다른 수사 움직임이 없었던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총선 승리 이후 김 여사 의혹에 대한 특검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검찰이 이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낸 모양새가 됐다.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은 지난해 11월 인터넷 언론 서울의소리 보도로 불거졌다. 당시 이 매체는 “김 여사가 윤 대통령 취임 후인 지난해 9월 13일 재미교포인 최재영 목사로부터 300만원 상당의 명품 가방을 선물 받았다”며 이 장면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은 최 목사가 ‘손목시계 몰래카메라’로 촬영했고, 선물은 서울의소리 측이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총장의 지시에 대해 “총선이 끝나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위험이 줄어든 만큼 필요한 수사를 철저히 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지난달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의 ‘특검 드라이브’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기존에 추진하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에 명품 가방 수수 의혹까지 더해 김 여사 관련 의혹 전반을 확인하는 특검법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에 검찰이 더는 수사를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으리라는 것이다. 야권에서는 검찰과 대통령실이 특검을 막기 위한 ‘약속 대련’을 벌이고 있다는 의심과 함께, 검찰이 대통령에 대한 거리 두기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수사가 진행되더라도 김 여사에 대한 기소까지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배우자가 공적인 직무와 관련해 1회에 100만원, 또는 1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지만, 이를 어길 경우 처벌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이상 김 여사에 대한 조사에 있어 서면, 방문, 소환 등의 방법 중 어떤 방식을 택할지도 관심이다.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으로 김 여사를 한 차례 서면 조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수처, 열흘새 관련자 세명 소환공수처는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어린이날 연휴 첫날인 4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중장)을 소환해 15시간 가까이 조사했다. 해병대 최고 지휘관인 김 사령관은 지난해 7∼8월 채상병 순직 사건을 초동 조사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게 윗선의 외압이 가해지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수처 수사4부(이대환 부장검사)는 최근 열흘 사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참모인 유재은 법무관리관과 박경훈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 김 사령관을 연이어 불러 조사했다.
김 사령관에 대한 추가 조사 가능성이 있지만, 이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채상병 사건 수사기록 이첩 보류를 지시했거나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지목된 주요 하급자들은 어느 정도 조사가 이뤄진 셈이다.
이에 공수처는 진술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신범철 전 차관과 이 전 장관 등 ‘윗선’에 대한 소환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은 지난해 7월 해병대 채모 상병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작업 중 숨지자 해병대 수사단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과 박상현 여단장 등 8명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초동 조사 보고서를 작성해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에 조직적인 외압이 있었다는 것이 골자다.
공수처는 지난해 8∼9월 박 전 단장 측과 민주당 등의 고발 여러 건을 접수했으나, 초반 수사는 더뎠다. 올해 1월에야 유 관리관과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 김 사령관 사무실, 국방부 검찰단·조사본부 등을 압수수색한 뒤 오랜 기간 동안 자료 분석을 진행했다. 총선을 앞두고는 이 전 장관의 주호주 대사 발령과 출국금지 해제 논란 속에서 수사가 더디다는 정치권의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공수처 수사는 총선 이후 야권의 특검 논의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비로소 속도가 붙었으며, 향후 수사의 향방 역시 정치권의 특검 논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 및 재표결 결과 등에 따라 특검이 출범할지, 출범하면 언제가 될지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특검이 도입되더라도 인력 등을 꾸리는 데 시일이 소요되는 만큼 공수처는 사건을 넘겨주기 직전까지 이 전 장관 등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무용론’이 제기돼 존폐 여부에 대한 논란에 휩싸인 공수처가 이목이 집중된 사건을 성과도 내지 못하고 특검에 내주는 것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youkno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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