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과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 등은 올해 필리핀 경제가 약 6~7%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주요 선진국은 물론 필리핀이 속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비교해도 최고 수준으로, 필리핀 국민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일 고층빌딩이 밀집해 있는 마닐라 도심 전경. 마닐라 한주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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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필리핀 수교 75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다.
필리핀은 아세안 국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우리와 외교관계를 맺은 '전통의 우방'이다.
1949년 3월 3일 필리핀이 한국의 주권을 인정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단순한 수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바로 이듬해 6·25전쟁이 발발했고 필리핀은 즉각 군인 7420명을 파병했다. 당시 한국을 지키다가 희생된 필리핀 사상자는 400명을 훌쩍 넘었다.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은 당시 소대장으로 참전했고, 베니그노 아키노 3세 전 대통령의 부친인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 전 상원의원은 마닐라 타임스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필리핀이 수교를 맺기 훨씬 전부터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지지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필리핀 외교 명문가 로물로 가문이 대표적이다. 한국 독립을 놓고 미국과 소련이 대립한 시절 필리핀 대표였던 카를로스 P 로물로 전 외무장관(1899~1985)은 한국 편에서 목소리를 냈다. 그의 노력은 1947년 10월 30일 유엔총회 정치위원회가 한국에 유엔감시위원회를 파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49년과 1950년 유엔총회 의장으로 선출된 로물로는 6·25전쟁 소식이 전해지자 소련의 반대를 무릅쓰고 즉시 총회를 열어 유엔군 참전안을 통과시켰다. 필리핀이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파병 결정을 내린 것도 그가 한반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덕분이었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에 따르면 로물로 전 장관은 훗날 한국과의 인연에 대해 "1950년 한국이 역경을 겪고 있을 때 나는 필리핀군의 한국 파병을 결정하는 데 힘썼다"면서 "또 한국이 유엔에서 승인을 받았을 때 기뻤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로물로 전 장관은 아시아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 출신으로 국제정치 거목으로 활약하면서 종종 미국과 소련을 날카롭게 비판했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비서구권과 약소국의 처지를 대변했다. 탁월한 통찰력으로 대한민국의 역사적 순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준 멘토이기도 하다.
마리아 테레사 디존데베가 주한 필리핀 대사는 "필리핀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 싸웠던 한국전쟁부터 지금까지 줄곧 한국을 항상 가까운 친구이자 파트너로 생각해왔다"면서 "지금이야말로 75년간 이어온 굳건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양국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관계를 격상시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주요 부문에서 외국인 투자에 대해 추가 개방을 준비하고 있고 정부 차원에서는 사업 편의성 개선과 투자 인센티브 등도 적극 고려하고 있다"면서 "마르코스 대통령이 강조한 인프라를 비롯해 에너지, 녹색기술, 디지털화, 제약바이오, 중요 광물, 창조산업 등 양국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가 많다. 한·필리핀 자유무역협정(FTA)이 조속히 비준돼 양국 간 무역도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양국 수교 75주년 기념일인 지난 3월 3일 양국 정상은 관계 격상을 추진하자는 의지를 확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5년간 교역·인적교류·개발협력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발전해온 양국 관계가 앞으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돼 한층 더 도약하길 희망했다.
이와 관련해 서정인 전 아세안 대사는 "한국과 필리핀 관계는 주요 아세안 국가에 비해 더 발전시킬 여지가 많다"면서 "양국 수교 75주년이라는 모멘텀을 잘 살려 상호 정상 방문 등 창의적 이니셔티브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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