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위치한 피란민들의 텐트촌. 이스라엘군이 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최후의 피란처’로 불리는 라파 일부 지역에서 민간인 대피 명령을 내리면서 이 지역에 지상전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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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이스라엘군이 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 일부 지역에서 민간인 대피를 명령했다. 이스라엘군이 여러 차례 예고해온 지상 작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과 함께 ‘대재앙’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라파 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피란민들에게 전단을 살포, 라파 북쪽의 칸유니스와 북서쪽 알마와시의 난민 캠프로 대피하라고 명령했다.
이스라엘군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서도 “정부의 승인에 따라 라파 동부의 민간인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역으로 임시 대피를 촉구한다”며 대피 경로를 안내하는 지도를 게시했다. 아울러 군은 대피 명령이 아랍어로 된 전단지, 전화 및 문자 메시지, 방송 등을 통해 전달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자지구에서 활동 중인 구호단체들도 이스라엘군으로부터 대피 명령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명령은 이스라엘군이 라파에 공습을 가해 어린이 8명을 포함해 22명이 사망한 이후 내려졌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전날 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라파 공격을 통보했다고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실이 발표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휴전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휴전과 무관하게 라파에서 지상 작전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대규모 참사를 우려한 국제사회가 거듭 이를 반대하자 공격 개시 전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대피 명령은 지상전 개시의 신호로 해석돼 왔다.
문제는 민간인 대피가 이뤄진다고 해도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칸유니스 인근에 약 5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텐트촌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라파 피란민 140만명을 수용하기에 턱없이 작다. 또 장기간 계속된 폭격으로 칸유니스를 포함해 상당수 도시의 주거지역이 파괴된 상태다. 최근 이스라엘은 라파 민간인 대피 계획을 미국 정부에 통보했는데, 미국 정부는 이 계획이 민간인 피해를 막기에 불충분하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 큰 문제는 이스라엘군이 이제껏 ‘인도주의 구역’과 ‘대피 경로’를 지정해 놓고도 피란민 안전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7개월간 라파를 제외한 가자지구 전역에서 지상전을 벌였는데, 이때마다 대피 명령이 내려졌지만 민간인들이 피란길 와중 공습을 받는 등 피해가 계속돼 왔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알마와시와 칸유니스, 라파 등 지금까지 이스라엘군이 지정한 모든 대피 구역이 피란민들에게 안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영국 가디언도 “이스라엘군이 ‘안전지대’로 지정했음에도 알마와시 역시 공격을 피해갈 수 없었다”며 “지난달 이스라엘군 탱크가 국경없는의사회 직원과 가족이 대피해 있는 알마와시의 주거지에 포격을 가해 2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번 명령이 본격적인 지상전의 서막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이스라엘 육군 대변인인 나다브 쇼다니 중령은 AP통신에 라파 동부지역 주민 약 10만명 정도가 대피 명령을 받았으며, 이스라엘군은 “제한된 범위의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명령이 라파 전역에 대한 광범위한 군사작전의 시작인지에 대해선 답변을 거부했다.
이집트 국경과 접한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는 가자지구 전체 인구(약 230만명)의 절반 이상이 집결해 있어 ‘최후의 피란처’라 불린다. 국제사회가 라파 지상전이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해온 이유다.
최근 이스라엘은 라파 공격을 곧 개시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 왔다. 갈란트 장관은 전날 하마스가 라파 인근에서 이스라엘 남부 케렘 샬롬 검문소를 향해 로켓 10여발을 발사해 군인 3명이 숨지자, 하마스가 휴전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곧 라파 군사작전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하마스의 로켓 발사 이후 이스라엘군은 라파 주거지역에 11차례 공습을 퍼부어 사상자가 속출했다.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의 피란민 캠프에서 어린이들이 반전 시위를 벌이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문구가 쓰인 텐트를 지나고 있다. UPI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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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부터 이집트 카이로에서 재개된 휴전 협상은 또다시 결렬될 위기에 놓였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이 인질·수감자 맞교환 등 상당수 조건에는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때 협상 타결 기대감이 커졌지만, 종전 문제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면서 협상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카이로에 대표단을 파견했던 하마스는 지도부와 의견 조율을 위해 카타르 도하로 떠났고, 오는 7일 협상장에 복귀할 예정이다. 이스라엘은 현재까지도 협상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5일 영상 메시지를 통해 “어떤 경우라도 우리는 군사작전 종료와 가자지구 철군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런 상황에서 라파 지상전이 시작되면 협상은 최종 결렬될 가능성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이스라엘 관리는 최근까지 양측이 휴전 합의에 근접했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협상 타결과 무관하게 라파 공격을 강행하겠다고 말하면서 하마스가 ‘휴전 시 라파 공격 중단’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었고, 협상 분위기도 틀어졌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하마스 고위 관리인 무사 아부 마르주크도 “합의에 매우 근접했지만 네타냐후의 발언으로 합의가 중단됐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열린 홀로코스트 추모식에서도 “이스라엘이 홀로 서야 한다면 홀로 설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에 개의치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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