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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제발 그만 좀 당하세요"…용인 그대가크레던스 '신탁사기'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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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보다 싼 가격+법무법인 안내에 솔깃

입주·등기 미뤄지고 졸지에 범죄자 신세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기망으로 거래 유인

한 채에 여러 번 계약해 피해 '눈덩이'

구제책조차 없어…경찰 수사만 바라봐

전문가 "전형적 수법, 신탁제도 손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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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사기 피해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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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집 장만 하려다 날벼락 맞은 거죠. 우리 집인 줄 알았는데 저처럼 계약한 사람들이 더 있더라고요. 그러고는 불법점유자가 된 겁니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50대 주부 A씨는 5년 전쯤 분양 홍보 전화를 받았다. 58평 짜리 신축 아파트 용인 지석마을 그대가크레던스였다.

주변 시세보다 1억 원 이상 저렴한데다, 직장과 가깝고 무엇보다 석 달 안에 소유권을 이전(등기)해 대출도 80%까지 받게 해주겠다는 제안에 덜컥 계약금 5천만 원을 걸었다. 공인중개사가 아닌 법무법인 직원이 직접 매물을 보여준 것도 의심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내집 마련의 꿈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계약한 집은 세입자가 버티고 나가지 않았다. 차일피일 입주일이 미뤄지더니 집을 소개해 준 분양팀은 공실인 다른 세대로의 입주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임대차 관계를 정리하고 문을 개방하는 비용 등으로 1억 원을 더 요구했다.

A씨는 '이권 다툼이 있으니 비밀리에 이사하라'는 분양팀 직원의 귀띔에 무언가 꺼림직 했지만 가까스로 입주에 성공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입주 후 몸에 문신을 한 남성들이 자신들이 계약한 집이라며 집에 몰려와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결국 그는 계약 취소와 돈을 돌려줄 것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에 A씨는 주저앉고 말았다. 집 소유자가 분양팀이 아니라 따로 있다는 것. 이후 A씨는 실질적 소유주인 신탁사로부터 명도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하는 등 졸지에 '무단침입자'가 됐다.

A씨는 "처음 계약한 호실은 비슷한 방식으로 계약을 맺은 사람들이 3명 더 있었는데, 나중에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보니 많게는 7번이나 중복 거래된 집도 있다고 들었다"며 "사기꾼들 때문에 길거리에 나앉고 가정도 파탄나게 생겼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등기 약속 믿었는데…진짜 집주인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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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아파트 외벽 곳곳에는 '전세·분양사기 철저수사', '명도소송 결사저지', '○○○·△△△ 구속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박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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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지석마을 그대가크레던스 아파트에서 불거진 이른바 '신탁사기' 의혹 사건 피해가 현재까지도 속출하면서 피해자들의 원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나고도 유사한 불법적인 부동산 거래가 지속되면서, 관계 당국이 조속히 실태 조사를 통한 방지책과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부업자로 알려진 B씨 등은 이 단지 내 미분양 호실에 대한 소유권이 없는 상태에서, 분양·개발업체(이른바 분양팀)와 법무법인 등을 앞세워 불법적인 부동산 계약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어떻게 소유권도 없는 아파트를 미끼로 분양사업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사건의 발단은 B씨 등이 일부 미분양 물건의 채권을 매입하면서부터다.

상하동에 위치한 그대가크레던스는 구성상하지역주택조합에서 시행한 아파트다. 분양 초기(2011년) 경기침체 등으로 수분양자들이 대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잔금을 치르지 못해 부실채권(미분양 물건 159채)이 쏟아졌다.

B씨 등은 이들 부실 채권을 매입하기로 하고, 매입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해당 물건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소유권은 신탁사인 대한토지신탁으로 넘어갔다.

부동산 신탁은 미분양된 물건을 이용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소유권을 신뢰할만한 제 3자인 신탁사에 맡기는 제도를 의미한다. 통상 이런 물건을 신탁 등기 매물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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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지석마을 그대가크레던스 단지 모습. 박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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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B씨 등은 소유주인 신탁사의 동의 없이는 해당 물건들을 매매 혹은 임대할 수 없는 지위에 있다.

이같은 구조에서 B씨 등은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으로 채권을 매입한 159세대에 대해 신탁사 동의 없이 매매 또는 임대 계약을 무단으로 맺어왔던 것이다. 분양팀을 투입해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수익채권 매입) 희망자와 임차인을 모집하고, 법무법인을 앞세워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소유권도 없는 상태에서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불법 거래를 유도해 온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피해자들은 분양업체나 법무법인 측이 '소유권은 1순위 수익권자인 분양업체에 있다', '등기상 소유주는 신탁사이지만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등의 취지로 안내해 안심하고 계약을 체결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면 입주일이 지연되기 일쑤고, 이사를 마치고도 동일 세대에 계약을 맺은 또 다른 피해자들이 나타나 분쟁을 겪어야 했다.

매매 계약 후 입주가 어려울 경우 전세 전환을 요구하며 보증금 등 추가 자금을 달라거나, 세입자가 거주 중인 상태에서 중복 거래로 피해가 누적된 사례들도 부지기수다.

피해자들은 계약금과 추가 납입금 등으로 1인당 1~2억 원 안팎의 돈을 내고도 집에 대한 소유권을 이전(등기) 받거나, 전세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현재까지 피해 규모는 500억 원 이상(400여 명)으로 추산된다.

매매계약을 했다가 전세로 돌린 피해자 C(60대)씨는 "4억 5천만 원에 분양받기로 했다가 보증금 1억 7천만 원만 내면 나중에 분양으로 바꿔준다고 해서 돈을 보냈는데, 4년 넘게 살면서 소유권을 받기는커녕 보증금마저 떼일 처지"라며 "평생 모은 돈을 잃게 됐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신탁사 '명도+손해배상' 청구에 '범법자'로 몰린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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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소유권을 갖고 있는 신탁사와 대출을 시행한 은행의 책임을 따져묻는 현수막 내용.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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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소유권을 갖고 있는 신탁사가 '불법점유'에 대한 명도 소송과 손해배상청구에 나서면서 피해자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앞서 대한토지신탁은 해당 물건들에 대해 공매를 진행하면서 "공매 물건에 대해 임차권을 주장하는 전입 세대가 존재하나 당사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다"며 "명도 등 모든 책임은 매수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공지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계약금과 보증금 등 손해에 더해 수 백만 원에 달하는 배상금(거주기간 한 달 기준 150만 원)까지 물어야 할 처지가 됐다. 졸지에 피해자에서 불법점유자로 전락했다.

피해자들은 분양업체의 위법한 거래에 신탁사와 은행이 확인조차 하지 않다가, 뒤늦게 분쟁이 발생하고 나서 매수인과 세입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며 신탁사와 은행을 향해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이종인 위원장은 "업체, 기관 모두 나 몰라라하고 있어 경찰 수사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며 "집회도 계속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관심도 갖지 않는다. 분양업체 관계자들 중 일부는 수익 권한 등을 놓고 서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어 그 재판 상황을 보고 종합적으로 집단 고소를 추가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제 사각지대 놓인 '신탁사기' 피해자들…경찰 수사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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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사기 등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아파트 외벽에 붙어 있다. 박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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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피해자들은 철저한 진상 조사와 구제책 마련을 촉구해오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사실상 이들을 도와줄 제도적 장치는 없는 현실이다.

전국적으로 논란이 된 전세사기 피해의 경우 '전세사기 피해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져 세입자 등의 권리 보호를 위한 공매 유예와 우선매수권 청구 등 구제를 받을 수 있으나, 신탁사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소유주인 신탁사 동의 없이 계약을 해 임차인으로서의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피해자들은 향후 법적 절차에 따라 손해를 조금이라도 회복하거나 사기피해에 대한 지원대상 요건을 갖추기 위해 경찰 수사 결과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고소·고발장을 접수한 용인동부경찰서와 서울 서초경찰서(피고발인 거주지 관할서) 등은 정식 입건 후 고소인의 진술을 토대로 분양업체와 법무법인을 비롯한 관계 기관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신탁사기 종합판…관련 제도 전면 개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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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단체가 제작한 신탁사기 규탄 홍보물. 비대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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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는 전형적인 신탁사기 유형으로, 불법적인 매매와 임대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종합판'이라고 지적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신탁제도와 관련한 관리·감독 체계를 강화하고, 신탁 등기 매물에 대한 정보 접근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정흔 토지주택위원장은 "담보로 대출을 받아 놓고 자신에게 소유권이 있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물건을 팔고 임대를 놓아 돈을 챙기는 전형적인 사기"라며 "거래 주체들이 너무 노골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어 신탁사 스스로 제도적 허점을 알고도 방치하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라고 꼬집었다.

이어 "신탁 관계를 확인하려면 신탁원부를 받아 봐야 하고 내용을 해석해야 하는데 일반인들이 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신탁 등기 부동산을 거래할 때 제3자가 반드시 확인하게 한다든지 중개 시 별도 절차를 마련한다든지 제도를 세분화해 신탁 관리를 엄격하게 하고, 신탁사들이 자신의 물건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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