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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北 못 버틴다는 ‘소망’ 버려야…우크라·중동보다 큰 위협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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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출신 한반도 전문가로 해외 유수의 매체에 북한 관련 기사를 쓰고 있는 가브리엘라 버낼 박사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관련 기사: 버낼 박사 “경색된 남북관계 호전 위해 북·미 외교 독려 필요” [차 한잔 나누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이 공식적으로 임기를 종료(4월30일)한 직후에 그를 인터뷰하며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우리의 대북정책을 분석해봤다.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를 보란듯 비웃으며 건재함을 과시 중인 지금의 북한을 상대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속 시원한 답이 나오긴 힘들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방향성(압박하며 기다리기)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무런 변화 없이 상황만 호전되기를 바라는 건 소망에 불과하다고 버낼 박사는 지적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일문일답.

세계일보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판문점=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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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와 윤석열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교한다면.

“문재인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래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대화와 소통을 원했고, 그러한 외교가 문재인 정부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세계가 알 수 있도록 했다. 윤석열정부와는 큰 차이가 있다. 윤 정부는 한미동맹 및 일본과의 3국 협력에 훨씬 더 집중하고 있다.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

또 다른 차이점은 문재인 대통령 때 미국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있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등 한국 문제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도 도움이 됐다.

지금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북한은 전혀 우선순위가 아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도 이 문제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남북 관계에 진전을 이루기가 매우 어렵다. 북한과의 외교를 위한 기반이 당장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나.

“물론 북한과의 외교 측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때 훨씬 더 많은 외교가 있었지만 인권 문제 같은 것을 무시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2017년에는 남북 관계의 긴장이 매우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에 외교 측면에서 긴장을 잘 완화한 것으로 본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위협하고, 김정은이 미국을 위협하고, 한국을 위협하면서 한반도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몰렸지만 문 전 대통령은 북한을 중재하고 외교를 수행함으로써 한·미 모두에 정말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던 상황을 성공적으로 완화했다.”

-그에 비해 현 정권은 어떤가.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실제로 관여 측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이야기 할 것도 많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한국 정부 탓으로만 돌리지는 않는다. 왜냐면 여기서 큰 부분은 바이든 행정부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북한 탓도 있다. 김정은이 통일이라는 목표를 포기하기로 한 결정이 그렇다. 한국을 북한의 주적이라고 선언한 것은 매우 큰 변수다. 북한 매체에서 통일에 대한 언급을 모두 없애고, 건물과 구조물을 철거하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현재 남북관계가 이렇게 된 것은 한국만의 잘못이 아니라 미국의 정책, 김정은의 정책과도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 가지 요인이 모두 안 좋게 조합된 것이다.”

세계일보

가브리엘라 버낼 박사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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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는 뭘 할 수 있나.

“한국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한국의 위치다. 지정학적 위치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미국이나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는데, 어느 쪽의 정책도 장기적으로 한국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불균형적으로 한미동맹과 일본과의 관계 회복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균형이 맞지 않아서 문제다.

중국과의 관계, 미국과의 관계, 일본과의 관계 사이에 균형이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한국의 국가 안보 이익을 위해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이 모든 중요한 행위자들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국을 소외시키면 북한과의 외교가 더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북한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중국의 협조를 얻기 힘들어진다.”

-미국에는 어떤 것을 요구해야 할까.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 북한과의 협상에 관한 주요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가장 중요한 제3의 행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미국이 북한과의 외교에 나서도록 계속 독려하고 대북 정책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에선 대북제재가 점점 무력화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대체로 대북제재와 억지력, 그리고 그 밖의 방법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아무리 압박을 해도 여전히 생존할 것이다. 생존할 뿐만 아니라 군사 프로그램과 핵무기 프로그램을 계속 성장시킬 것이라는 것을 이미 보여주었다. 압박은 효과가 없었고 지금도 효과가 없다. 특히 지금은 더더욱 효과가 없다.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편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 확률이 훨씬 더 적다. 안보리 5개 이사국 중 2개국이 제재에 반대한다면 이는 매우 비효율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안보리 대북제재 감시망인 전문가 패널이 4월30일로 공식 종료됐다.

“수년 동안 대북제재 시스템이 사망했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이제 정말 확실하게 그렇게 됐다. 제재는 효과가 없었고, 앞으로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미국이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고 군비 통제를 추구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더 건전한 전략이다. 적어도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대화를 재개할 수 있고, 북한이 무기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계속 대화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나.

북한과 외교하지 않고 보내는 하루하루는 북한이 군사, 핵, 미사일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 러시아나 이란 같은 행위자들과 협력할 시간을 벌게 해주는 것과 같다. 북한의 군사 기술을 해외에 판매할 시간을 벌 수 있다. 특히 김정은이 1월에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더 이상 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밝힌 지금은 매우 시급하고 긴박한 상황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에 매우 집중하고 있는데, 물론 이 두 가지도 중요하지만 북한을 계속 무시하면 이 둘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하면 오히려 그런 점에선 나을 수도 있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행보는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바이든이 다시 승리한다면 현재의 정책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트럼프와 함께라면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꿀 기회나 가능성은 좀 더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외교를 재개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 김정은을 다시 만나고 싶어할 수도 있고, 이번에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교훈을 얻은 만큼 미국의 협상 접근법을 좀 더 부드러운 방식으로 바꾸려 할 수 있다. 약간의 제재 완화를 대가로 제공하는 등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외교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계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창건(건군절) 75돌 경축 열병식을 딸 김주애와 함께 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리더십은 얼마나 존속 가능하다고 보나.

“흔들림 없을 것이다. 지금 상태에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한, 그리고 미국이 의지가 없는 한, 무엇이 어떻게 바뀔 수 있겠는가. 현재로서 유일한 방법은 북한을 강제로 무너뜨리는 것인데 이는 역내에서 한국의 이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도 결코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지도부의 정권 붕괴를 바라며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략이었다. 가만히 그들이 변화하기를 바라기보다는 그들과 협력하는 편이 더 낫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 김정일이 죽었을 때 북한의 붕괴를 바랐지만 결과가 어땠나. 지금은 김정은이 아직 살아 있는데도 이미 그의 딸이 계속 등장한다. 여동생 김여정도 항상 나타난다. 김정은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정권이 무너진다고 보기 힘들다.“

-북한이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는 확신을 가진 보수주의자들이 꽤 있는데.

“그것은 매우 잘못된 정보이고, 매우 희망적인 사고(wishful thinking)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와 같은 극한의 기근도 이겨냈다. 수백만명이 사망한 그때도 지도부는 파괴되지 않았다. 그 시기는 북한이 가장 취약했던 시기다. 압박은 그럴 때 먹히는 것이다. 당시 소련이 무너졌고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있었다. 중국은 독자적으로 남한과 관계를 수립하고 있었다. 그런 최악의 패에서도 북한은 살아남았다. 최근에는 팬데믹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살아남았다. 북한 정권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얘기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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