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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여자와 남자를 옷과 놀이로 구별하지 말아주세요" 어린이를 해방하라[젠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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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어린이라는 사상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어린이해방선언문(1923) 중에서
한국일보

성미어린이집의 '어린이보육권리선언문'. 성미어린이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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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어린이집 첫 등원 날. 설렘 49%, 걱정 51% '떨림'을 안고 도착한 어린이집 현관. 신발을 벗기고, 떨어지지 않는 아이의 손을 놓고,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하고, 돌아서 현관을 나서려 할 때. 어딜 봐도 눈길이 닿을 수밖에 없는 곳에 '어린이보육권리선언문'이 놓여 있었다. 신발을 신으며 무심히 첫 번째 선언을 스치듯 읽었다.

어린이보육권리선언문


"1. 날마다 햇빛과 바람, 물, 흙 속에서 놀 수 있게 해주세요” 첫 문장부터 시선을 끌었다. '권리선언문'이라는 묵직한 낱말 아래 놓인 문장 중에 가장 생기로웠다. 이 노래 같은 문장이 '권리'로 이야기된다는 것에 놀랐다. "2. 매일 나를 안아주고 나와 눈 맞추며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친구(선생님)들을 충분히 주세요." 오오···. 탄성이 입 밖으로 끌려 나왔다. 어른친구가 되고자 애써본 적이 내겐 단 한순간도 없었다. 어린이는 보호받고, 귀염 받으며 '길러져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을 뿐,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여겨본 적 없었다. "3. 따뜻한 간식과 건강한 먹거리를 주세요." 건강하게 잘 먹는 것도 권리로 발음될 수 있는 거구나···문장 하나하나에 이끌렸다. "4. 장애를 가진 친구들, 조금 다른 얼굴, 다른 말, 다른 나이의 친구들과도 함께 놀 수 있게 해주세요." 나는 자세를 바르게 끌어올렸다. 이 권리선언문 바탕에는 두꺼운 철학이 깔려 있음을 느꼈다. 장애, 인종, 지역, 나이와 같은 서로 다른 특성들이 손쉽게 포섭되고 마는 '차별의 논리'를 '함께 놀 권리'로 맞서고자 하는 문장은 아름다웠다. 그중에서도 여섯 번째 선언문은 온 마음을 단숨에 끌어안았다.

"6. 여자와 남자를 옷과 놀이와 말로 구별하지 말아 주세요."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구별되고, 총 놀이와 인형 놀이로 구별되고, 왕자와 공주로 구별되고, 짧은 머리카락과 긴 머리카락으로 구별되는 성별 이분법체제를 정면으로 겨루고 있는 문장이었다. 차별의 근거로 종종 동원되는 구별받지 않을 권리라니···어린이집에 대한 신뢰가 증폭됐다. '어린이보육권리선언문'은 한 편의 튼튼한 시 같았다.

권리중심주의

한국일보

아동권리에 대한 제네바 선언문(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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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어린이보육권리선언문'을 정성껏 옮겨 적었다. 냉장고 문 앞에 한 장, 책방 책상 앞에 한 장, 현관에 한 장 붙여놓고 보고 또 봤다. 이 아름다운 권리선언문을 몸에 새겨두고자 했다. 그즈음부터 참고하던 육아서적과 육아방송 대신 ‘어린이권리’를 중심으로 육아의 기조가 조금씩 변화해 갔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봐 주시오”를 제안한 '어린이해방선언문'(1923)부터, '아동의 권리에 대한 제네바 선언'(1924), '유엔 아동권리선언'(1959),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1989), '새천년어린이선언'(1999), "아동은 생명을 존중받아야 하며 부모와 가족의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아동권리헌장'(2016)까지, 읽고 또 읽었다.

권리를 중심으로 한 문장들은 일상 곳곳에서 '감각적 혁명'(발터 베냐민)을 이끌었다. 어른-보호자에서 어른-친구로. 아이와 놀아주는 게 아니라, 어린이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나만의 아이에서 세계 속 한 명의 어린이로. 딸·아들로 구별하여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특성으로 여기고자 하는 것으로. 나와 상관없는 다른 집 어린이가 아니라, 느슨한 사회적 돌봄 속에서 생활하는 사회적 어린이로. 권리를 중심으로 조망된 어린이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그저 보호받아야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온전한 어린-존재자로 '오롯이' 세계 속에서 함께 있었다. 공식적 자리에서 아이를 '어린이 반려자'로 소개하기 시작한 것도 그쯤부터다.

그날, 인권의 현장

한국일보

어린이날 101주년·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 기념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행사가 열린 2023년 5월 1일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방정환 생가터에서 출발해 광화문 광장을 거쳐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까지 걷는 거리 행진을 하고 다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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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놀고 싶단 말이야. 나랑은 언제 놀아.” 그날, 다섯 살 어린이-반려자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어린이집 앞마당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날, 회의가 3차례 잡혀 있었고, 진행해야 할 수업 하나와 짬을 내어 만나기로 한 미팅도 있고, 마감해야 할 원고를 마무리까지 해야 하는 이상하리만치, 숨 막히는 일정이 있던 그날이었다. 불끈과 울컥을 오가다 초조를 거치고 있을 무렵, 일순간 어린이-반려자가 주저앉은 어린이집 앞마당이 권리요구의 현장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아동권리헌장'(2016) 제1조에 의거해 "부모와 가족의 보살핌을 받을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인권의 현장이었다. 어린이-반려자는 어린이집 앞에서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제13조에 따라 "아동은 표현에 대한 자유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고, 제15조에 따라 “결사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린이-반려자의 주된 사회생활이 이뤄지는 어린이집 앞마당에서 '버럭'하는 것은 제16조 어떠한 아동도 “명예나 신망에 대한 공격을 받지 아니한다"는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었다. 나는 제18조 "부모 쌍방이 아동의 양육과 발전에 공동책임을 진다는 원칙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그들의 기본적 관심이 된다" 협약에 따라 여성-반려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여성-반려자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이미 집을 떠난 뒤였다. 어쩔 수 없었다. "나 오늘 어린이집 안 갈 거야." 울부짖는 어린이-반려자를 달래며 직장동료들에게 긴 메시지를 보냈다.

어린이집 앞마당에서 점거농성 중


‘지금 함께 반려하고 있는 어린이-반려자가 자신의 '돌봄받을 권리'와 '놀 권리'를 요구하며 어린이집 앞마당을 점거하여 농성 중입니다. 간식 협상안, 놀이공원 협상안, 주말 집중 돌봄 협상안까지도 줄줄이 결렬되었습니다. 최근 숨 가쁜 일정으로 발생한 돌봄 공백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어른-반려자'인 저에게 '돌봄받을 권리'와 ‘함께 놀 권리’를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펼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 일정이 무척 많지만, 어린이-반려자와 함께 출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날, 어린이-반려자와 함께 모든 일정을 함께 했다. 걱정이 무색하게 어린이-반려자는 사뭇 사회적 태도로 나와 함께 모든 일정을 수행했다. 회의 자리에서 자신이 요구한 포켓몬 색칠하기에 잠잠히 열중했고, 수업 중에는 퍼즐 맞추기에 열중했다. 직장동료들은 틈틈이 간식과 놀잇감을 제공하며 어린이-반려자의 요구사항에 정중히 응해주었다. 그 뒤로도, 어린이-반려자는 종종 회의를 함께 가거나, 나의 사회활동에 참여하며 어른-반려자와 함께하는 방법을 스스로 익혀나갔다. 사회적-어린이의 면모를 볼 때마다 나는 사뭇 놀랐다.

100년 동안의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1922년 5월 1일 첫 번째 어린이날 "어린이 해방"이라고 쓴 깃발이 솟았다.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는 '어린이해방선언문'이 전국 12만 장 배포되었다. 100년 전 방정환 선생이 외쳤던 완전한 인격을 가진 존재로 오롯이 예우받아야 하는 ‘어린이’의 행방은 오늘날에 묘연하다. 노키즈존이라는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한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차별행위"(국가인권위원회, 2017)를 서슴지 않는 사회 속에서, '잼민이, O린이, 급식충, 초딩' 같은 어린이를 비하하는 차별적 표현은 "한국은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라는 인상"(유엔아동권리위원회, 2019)을 국제적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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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4일 국회 앞에서 열린 '어린이날 100주년,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선포 기자회견'에 참석한 어린이가 노키즈존 반대 문구가 적힌 스케치북을 들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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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어린이날, 여러 시민단체들과 어린이들이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선포 기자회견을 국회 앞에서 열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며 차별을 서슴지 않는 사회를 향해 어린이들은 "어린이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마세요", "차별 대신 함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라고 외쳤다. 부모의 소유물이거나 어른들의 부속물로 취급되는 어린이가 아니라, 동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지구 거주자로. 보호와 육성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법을 익혀나가는 시민으로. 미래의 꿈나무로 현재로부터 끊임없이 유예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동반자로 여겨주기를 100년을 넘게 요구하고 있다. 102번째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는 본책의 별책부록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작은 책이라는 걸, 새롭게 느껴 보았으면 한다.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어린이해방선언문 (1923) 중에서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와 서한영교 작가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서한영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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