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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라인 매각’ 압박하더니 시침떼는 일본…정부는 눈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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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년 12월 채용공고 알림글에 실린 라인 사무실의 모습. 사진 출처 일본어판 라인-에이치알(HR)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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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계기로 일본 사업과 관련해 네이버 쪽 지분 정리를 사실상 요구해온 일본 정부가 한국에도 조사를 요청했다. 국내 업계에선 이례적 수준의 일본의 압박에도, 정부가 한-일 관계를 고려해 자국 기업의 부당한 피해를 묵인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일본 당국은 지분 매각을 특정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뒤늦게 내놨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의 한 당국자는 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달 중순께 일본 개인정보보호 당국으로부터 라인야후(네이버가 50% 지분을 갖고 있는 A홀딩스의 자회사로, 일본 메신저 시장 70%를 차지하는 메신저 ‘라인’ 운영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네이버를 조사해달라는 이메일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외교 문서에 준하는 이메일은 아니었다. 회신은 아직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일본 총무성은 라인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지난 3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라인야후에 대한 행정지도에 나섰다. 일본에선 행정지도는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영향력은 상당하다. 행정지도에는 라인야후 지배구조 개편이 포함돼 있다. 네이버의 A홀딩스 지분을, 이 회사에 공동 출자한 일본 기업 소프트뱅크에 넘기라는 뜻으로 업계는 받아들였다.



국내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분 정리 요구와 함께 한국에 조사를 요청한 일본 정부의 행위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전직 규제당국 간부는 “외국 기업이 낸 보안 사고라 해도 해당 국가에서 직접 조사를 하고 필요할 경우 조사관을 (외국 기업의 당사국에) 파견한다”며 “일본 당국의 한국 당국 조사 요청은 무례한 요구이고 월권”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일본 총무성의 나카무라 도모히로 종합통신기반국 이용환경과장은 이날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행정지도의 목적은 적절한 위탁 관리를 위한 보안 거버넌스의 재검토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행정지도 내용 가운데 ‘위탁처(네이버)로부터 자본적 지배를 상당 수준 받는 관계의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체제 재검토’라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지분을 매각하라거나 정리하라거나 하는 그런 표현은 전혀 담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떤 방책을 취할지는 근본적으로 민간이 생각해내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위탁처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네이버를 거론하며 자본적 지배를 상당 수준 받는 관계라고까지 규정한 상황에서는 네이버가 경영 주도권을 넘기는 쪽의 정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 쪽 반발이 거세자 한발 물러서는 듯한 외교적 수사를 내놓았을 수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우리 외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가 줄곧 ‘네이버 쪽 입장을 존중해 일본과 소통하고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거듭 내놓은 점은 이번 논란에 불을 지폈다. 현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 문제에 대해 한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제3자 변제로 봉합하고, 한-일 관계 개선, 한·미·일 협력을 성과로 강조해온 상황에서, ‘한-일 관계 개선했더니 기업 빼앗긴다’ ‘일본이 한국을 적대국으로 대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높아지는 데 부담을 느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한편 네이버의 A홀딩스 지분 처리 윤곽은 오는 9일 소프트뱅크 실적설명회(IR) 이전에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지분 조정과 그에 수반되는 비용은 소프트뱅크 투자자(주주)들의 이해와 맞닿아 있는 터라 소프트뱅크 쪽이 네이버에 협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총무성의 2차 행정지도에 따른 개선안 제출 마감 시한은 오는 7월1일이다.



정유경 박지영 전슬기 기자, 박민희 선임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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