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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기고] 고금리 고통 장기전을 대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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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연초만 해도 확실해 보였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2022년 초부터 세계적으로 물가가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고, 많은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여러 차례 올렸다. 한국은행도 2021년 말 1%였던 기준금리를 8번에 걸쳐 3.5%까지 올렸다. 2년 넘게 고금리의 고통이 지속되니 다들 금리 내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한국은행이 시중 은행들과 거래하는 7일 만기의 특정한 채권에 적용되는 것이어서, 기업이나 개인이 부담하는 금리는 이보다 높다. 회사채의 대표 격인 AA- 등급 3년 만기 채권 금리가 현재 3.96~3.98% 수준이고,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대부분의 은행에서 5%가 넘는다. 꼬박꼬박 내야 하는 이자가 크게 뛰었으니 기업은 돈 마련하기 어렵고 자영업자는 이자 내기 버거우며 가계는 쓸 돈이 부족해 소비가 쪼그라든다. 우리나라의 물가 상승률이 2022년 7월에 6.3%를 찍고 지난 3월에 3.1%까지 떨어졌으니 금리 인하를 기대할 법도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최소한 두 가지 이유에서 장기전을 대비해야 한다. 첫째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확연히 줄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1일 발표에서 기준금리를 6번 연속 동결했다. 그러나 올해 총 8번의 회의 중 이미 2번이 지나가면서 연내 3번은 인하할 것으로 봤던 종래 예상은 힘을 잃었다. 유수 금융회사들은 인하 시작 예상 시점을 늦춘다든가 인하 횟수를 적게 예상하든가 하는 식으로 기대를 조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끈질기게 이어지는 인플레이션과 소매 시장의 활황, 낮은 실업률 등 때문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상한은 현재 5.5%로, 한국의 기준금리보다 2%포인트 높다. 일반적으로는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높다. 이런 이례적인 상황 때문에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도 더 불안해질 수 있다. 달러화가 귀해질 기미만 보여도 한국에서 달러화가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기준금리를 낮추기 시작해도 한국이 바로 내리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인하가 늦춰지면 한국도 인하를 늦추게 될 것이다.

둘째는 더 장기적인 문제다. 그간 물가가 억눌린 부분이 커서 부작용이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전기나 가스요금이 그렇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을 때 우리나라는 전기·가스 요금을 현실화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미국의 물가가 10% 가까이 오를 때에도 한국은 6% 수준에서 방어가 되었지만, 제때 요금을 올리지 않은 탓에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의 재무 상태는 엉망이다.

이제라도 요금을 올린다면 물가가 다시 자극될 것이고, 만약 올리지 않는다면 결국 정부가 책임지게 될 것이다. 물가가 오르면 기준금리를 낮추기 어렵다. 정부가 책임지면 나랏빚이 늘 수밖에 없으니 시장에서 국채에 더 높은 금리를 매길 것이다. 대중교통 요금, 공무원 급여, 의료수가, 대학 등록금, 심지어 사과 가격까지. 정부의 가격 개입이 감당할 수 있는 지경인지 걱정스럽다.

미국 경제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을 정신 차리고 해야 한다. 이 와중에 전 국민에게 25만원 지원이라니, 할 말을 잊는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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