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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기업 자율에 맡긴 밸류업…‘지배구조 개선’ 공시 안 지켜도 제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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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에 앞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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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국내 증시를 들썩이게 해온 범정부 차원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대책인 ‘밸류업 프로그램’이 베일을 벗었다. 강력한 상벌 구조를 갖춘 제도·정책을 바랐던 시장 기대와는 달리 기업 자율성에 바탕을 둔 이번 대책이 국내 자본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일 금융위원회는 고질적 국내 증시 저평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 가이드라인’ 잠정안을 발표했다. 이날 가이드라인에는 2월26일 1차 세미나 당시 발표된 기업가치제고 계획의 공시 방안과 이를 독려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금융당국은 상장사들이 필요에 따라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자율적으로 수립하고, 공시를 통해 이를 시장과 투명하게 소통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공시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해 한국거래소 자율공시 항목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신설한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는 전적으로 기업 자율에 맡긴다. 시장에서 불합리하게 저평가되고 있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장과 소통하라는 취지다. 금융위가 권고하는 공시 주기는 연 1회다.



공시가 필요하다고 결정한 기업은 각 사의 사업현황을 우선 진단한 뒤 업종이나 기업별 상황에 따라 기업가치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핵심지표를 자율 선정해야 한다. 그런 뒤 이를 중심으로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중장기적인 목표와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작성해 공시하게 된다. 계획을 실제로 어떻게 이행했는지, 잘된 점과 보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등도 담아야 한다.



핵심지표는 시장평가·자본효율성·주주환원·성장성 등을 나타내는 PBR(주가순자산비율), PER(주가수익비율), ROE(자기자본이익률), ROIC(투하자본이익률), 배당성향, TSR(총주주수익률),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증가율 등 다양한 재무지표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 다만, 시계열 분석과 산업 평균, 경쟁사와 비교를 통해 핵심지표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재무지표 뿐 아니라 국내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의 개선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를 선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박민우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모자회사 중복상장 이슈가 있는 경우 모회사 주주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계획을 설명하거나, 지배주주 등 비상장 개인회사 보유 이슈가 있으면 이해상충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됐던 기업가치 제고 목표를 지키지 못할 경우 불성실공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박민우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고의로 허위공시를 하는 경우 등이 아니라 목표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이미 거래소 공시규정 등에 면책제도가 구비되어 있다”며 “정정공시를 통해 목표를 수정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정부는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는 기업들 가운데 우수 기업을 선정해 8가지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 우선 모범납세자로 선정해 세무조사 유예 등 혜택을 제공하고, 주기적인 지정감사 면제 심사 때 가점을 부여한다. 또 감리·불성실공시 관련 제재를 감면해주고, 올해 3분기 이전에 개발 예정인 ‘코리아 밸류업 지수’ 편입을 검토할 때 우대해준다.



금융위는 최종 의견 수렴을 거쳐 5월 중으로 가이드라인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안이 확정되면 이후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KIND) 내에 기업 밸류업 통합 페이지를 개설해 지표별·업종별·자산규모별로 기업들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비교 분석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박 국장은 “기업 밸류업은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이며, 공시 여부 자체보다 기업들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공시하고 소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며 “시장에서 이런 기업들에 대해 좋은 평가가 이뤄지고 투자가 많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참여 기업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형식적으로 공시에 참여하는 기업이 많은 것보다 이런 소통하는 문화가 확산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단계적 의무화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시장에 공을 넘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당국이 강제적으로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고 그 대신에 기관투자자 등 시장참여자들이 이번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기업에 압력을 행사해줄 것을 기대하는 듯 하다”고 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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