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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이한우의 간신열전] [232] 치상(置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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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군주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치상(置相), 즉 재상을 누구로 앉히느냐는 문제이다. 그것은 뛰어난 임금이건 그렇지 못한 임금이건 마찬가지였다. 이때 재상을 고르는 잣대는 단 하나, 뛰어남[賢] 여부였다. 그래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재상을 현상(賢相)이라 불렀던 것이다.

명청 교체기 때 관리이자 학자 황종희(黃宗羲·1610~1695년)는 저서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에 ‘치상(置相)’이라는 항목을 두어 재상을 잘 고르는 것이 좋은 정치를 향한 첫 출발임을 강조했다.

“천자의 아들이 모두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재상 자리는 뛰어난 이에게 전해졌으므로 족히 서로 보충해줄 수 있었다.”

재상의 뛰어남을 잘 보여주는 말이 병길문우천(丙吉問牛喘)이다. 한나라 때 현상으로 꼽히는 병길이 외출을 나갔다가 길거리에서 패싸움이 일어나 무수한 사상자가 생겨난 것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조금 더 가서 소가 헐떡이는 것[喘]을 보고는 소 주인에게 다가가 몇 리를 몰고 왔는지를 물었다.

병길을 수행하던 관리가 이해가 안 되어 물었다. “어찌 사람이 죽고 다친 것은 그냥 지나치시더니 소가 헐떡이는 것은 걱정하십니까?” “길거리에서 싸우고 죽고 다친 것은 경조윤(京兆尹·서울시장 격) 소관이고 날씨가 덥지도 않은데 소가 헐떡인다는 것은 농사철 절기와 관계된 것이니 재상 소관이다.”

현상(賢相)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그대로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다. ‘명종실록’ 15년 10월 27일 기록에서 사관은 이렇게 평한다. “재상의 자리가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 만물의 화육(化育)을 돕고 음양을 조섭(調攝)하는 데 한 가지 일이라도 마땅함을 잃거나 정상에서 벗어나면 모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병길이 소가 헐떡이는 것을 걱정한 것은 실로 이 때문이다.”

다음 총리라도 이런 깊은 식견을 가진 인물이 뽑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선일보

이한우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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