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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란 보안군이 10대 시위자를 성폭행하고 살해” BBC, 유출 문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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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나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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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는 이란의 엄격한 여성 복장 규정에 반대하는 시위 도중 실종·사망했으며 당시 16세였다. / 사진=아타시 샤카라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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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10대 소녀가 이란 보안군 3명에게 성폭행·살해당했다는 내용의 유출 문서가 공개됐다.

영국 BBC 방송은 29일(현지시간)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작성한 해당 보고서를 통해 2022년 9월20일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히잡 반대 시위에서 실종, 열흘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니카 샤카라미(16)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극비’라고 표기된 이 문서는 IRGC가 니카 사건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연 징계 위원회 심문 내용을 요약한다. 여기에는 니카를 죽게 한 군인들과 진실을 숨기려 한 고위 지휘관들 이름이 있다. 또 이 소녀를 억류·이송하던 화물차에서 다음 같은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써 있다.

● 세 남성 중 한 명이 니카를 깔고 앉아 이 소녀를 성추행했다.

● 니카는 수갑이 채워져 제지를 당했는데도 이 남성을 발로 차고 욕하며 반격했다.

● 이로 인해 남성들은 곤봉으로 이 소녀를 때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BBC의 조사에 따르면 해당 문서에는 니카의 마지막 움직임이 기록됐다. 당시 니카는 시내 중심 공원 근처에서 히잡에 불을 지르는 모습이 찍혔다. 소셜미디어 영상에는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언급하며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시위자들도 담겼다.

니카의 이 같은 모습은 당시 감시당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호세인 살라 IRGC 총사령관에게 보고된 해당 문서의 내용은 시위를 감시하던 보안군과의 광범위한 심문에 기초한다.

이 문서는 시위를 감시하던 여러 비밀 보안 부대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중 ‘팀 12’는 니카가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행동과 요구를 반복해서 보인다는 점에서 이 소녀를 주동자 중 한 명이라고 의심하고 팀원을 잠입시켰다. 이 팀원은 이후 니카를 체포하려고 팀을 불렀으나, 소녀는 도주했다. 니카는 그날 밤 친구에게 전화 걸어 보안군에 쫓기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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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는 팀 12의 아무런 표식이 없는 냉동탑차에 실렸다. 이 소녀는 아라시 칼호르, 사데흐 몬자지, 베흐루즈 사데히라는 팀원 3명과 함께 화물칸에 있었고 모르테자 자릴 팀장은 운전자와 앞쪽 칸에 있었다. / 사진=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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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니카는 거의 한 시간 만에 발각, 구금돼 팀 12의 아무런 표식이 없는 냉동탑차에 실렸다. 이 소녀는 아라시 칼호르, 사데흐 몬자지, 베흐루즈 사데히라는 팀원 3명과 함께 화물칸에 있었고 모르테자 자릴 팀장은 운전자와 앞쪽 칸에 있었다.

그후 이들은 니카를 인계할 곳을 찾으려고 했다. 이 소녀를 인근 건물에 임시 구금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차로 35분 거리에 있는 구금 시설로 이동했다. 이 시설의 지휘관은 처음에 니카를 받아주기로 했으나 생각을 바꿨다. 그는 “피고(니카)가 끊임없이 욕하고 구호를 외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여성 수감자 14명이 있었다. 내 생각에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선동할 것 같았다”며 “폭동을 일으킬까봐 걱정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잘릴 팀장은 IRGC 본부에 재차 연락했고 악명 높은 에빈 교도소로 향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도움에 화물칸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화물칸 쪽 세 명 중 한 명인 사데흐는 니카가 구금 시설에서 거부당한 뒤 다시 차량에 실리자마자 욕설과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아라시가 양말로 재갈을 물렸는데 그녀가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가 그녀를 깔고 앉았다”며 “상황은 진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어두워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몇 분 후 그녀가 욕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싸우고 때리는 소리만 들렸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아라시는 더 소름 끼치는 상황을 묘사했다. 그는 잠시 휴대전화 손전등을 켰더니 사데흐가 그녀의 바지 안에 손을 집어넣은 것을 봤다며 그후 우리는 자제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사데흐)는… 누가 그랬는지 알지 못하지만 피고(니카)를 때리는 곤봉 소리를 들었다”며 “나는 발로 차고 때리기 시작했는데 내가 우리 사람들을 때렸는지 아니면 피고를 때렸는지 몰랐다”고 덧붙였다.

이에 사데흐는 모함이라며 아라시의 진술에 반박했다. 그는 니카의 바지에 손을 집어넣은 것을 부인했지만, 자신이 그녀를 깔고 앉은 동안 흥분해서 엉덩이를 만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니카를 자극했다며 “그녀는 손이 등 뒤로 묶였는데도 내 얼굴을 발로 차 넘어뜨렸다. 이에 나는 나 자신을 방어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소란이 커지자 잘릴 팀장은 차를 정차시켰다. 그가 화물칸을 열었을 때 니카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며 니카의 얼굴과 머리에서 피를 닦아냈다고 했다. 이는 나중에 니카의 어머니가 영안실에서 본 딸의 시신에 대한 설명과 이 소녀의 사망 증명서에 나온 내용과 일치한다.

잘릴 팀장은 자신이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녀를 어떻게 이송할지만 생각했고 누구에게도 질문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숨쉬고 있나?’라고 물었을 뿐, ‘아니, 그녀는 죽었다’고 답한 사람은 사데흐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IRGC 본부에 세 번째 전화를 걸었고 ‘나임 16’이라는 호출부호를 가진 고위 지휘관과 대화를 나눴다. 이 지휘관은 조사에서 “우리 기지에서는 이미 사망자들이 나왔고 나는 그 수가 20명으로 늘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녀를 데려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길에 버려라”고만 했다고 밝혔다. 이어 잘릴 팀장은 니카의 시신을 한 고속도로 근처 조용한 곳에 방치했다.

보고서는 성폭행으로 인해 화물칸에서 싸움이 발생했으며 해당 팀원들의 공격으로 니카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결론지었다. 여기에는 “곤봉 3개와 테이저건 3개가 모두 사용됐다. 그중 어떤 것이 치명적인 타격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도 적혀 있다.

이 문서는 니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란 정부의 공식 설명과도 모순된다. 니카의 장례식이 끝난지 거의 한 달 만에 이란 국영 TV는 니카가 건물에서 투신해 숨졌다는 조사 결과를 방송했다.

니카라고 알려진 여성이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폐쇄회로(CC)TV 기록이 공개됐지만, 니카의 어머니 아타시 샤카라미는 BBC 페르시안에 “어떤 상황에서도 그 사람이 니카라는 점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가족은 나중에 BBC 다큐멘터리에서 자국 시위자들의 사망에 대한 정부의 주장에 대해 “우리 모두는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안다”고 했다.

BBC 조사는 이번 보고서의 내용 뿐 아니라 이 문서가 진짜인지 여부에 관심을 가졌다. 가끔 인터넷에 떠도는 이란 공문서 등 자료가 가짜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BBC는 전직 이란 정보관 등 여러 출처를 통해 모든 세부 내용을 확인하느라 수개월이 걸렸다면서 자신들이 확인한 문서는 진짜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IRGC와 정부에 사실 여부 확인을 요청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또 니카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BBC는 해당 사건에 연루된 팀 12는 모두 헤즈볼라 소속이라고 했다. 이는 이란의 준군사조직을 지칭하는 말로, 레바논의 동명 조직과는 무관하다. 이에 따라 처벌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에게 니카의 시신을 버리라고 명령한 나임 16이라는 지휘관은 서면으로 문책 조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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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체포된 언니 아이다(오른쪽)와 함께 있는 니카의 모습. / 사진=소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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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진상 조사단에 따르면 이란의 ‘여성, 생명, 자유’라는 당시 시위 과정에서 551명의 시위자가 보안군에 의해 숨졌으며 이들 대부분은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 시위는 보안군의 유혈 진압으로 몇 달 만에 가라앉았다. 이후 이란 도덕 경찰의 활동이 잠잠해졌으나, 이달 초 히잡 위반에 대한 새로운 단속이 시작됐다. 체포된 사람들 중에는 니카의 친언니 아이다(22)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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