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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아침을 열며]25만원씩 다 준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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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3고’에 휘청이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씩 긴급 민생회복지원금을 나눠주겠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29일 회동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4인 가구면 가구당 100만원씩 추가 소득이 생기는 것으로, 약 13조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민주당은 보고 있다.

민주당이 전 국민 민생지원금을 지급하자며 내세우는 근거는 내수 경기 침체다. 물가는 고공행진인데 소득은 그만큼 오르지 않아 가계가 소비를 줄이고, 내수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민간에서 소비를 줄이면 재정 투입을 늘려 경기를 받쳐줘야 하는데,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에 집착해 경기 위축을 방치하고 있다는 게 민주당 시각이다.

물가, 금리, 기름값, 환율, 분양가까지 월급만 빼고 안 오르는 게 없으니 가계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있는 건 자명하다. 미국 고금리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시중금리도 떨어지지 않고 있다. 기후변화로 비싼 농수산물 가격은 상수가 됐고, 앞으로 유가와 환율 상승분이 본격 반영되면 교통비, 공공요금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지출이 커지면 소득이라도 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소득은 제자리걸음이고 경기도 좋지 않으니 대출받은 사람들은 이자도 제때 내지 못한다. 국내 은행권의 연체율은 4년9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1년 넘게 부진하던 민간소비가 올 1분기 0.8% 성장하며 다소 회복됐다곤 하나 장기간 바닥권에 머물다 반등한 데 따른 착시효과가 적지 않고, 여전히 경제성장률(1.3%)을 밑돌고 있다.

내수 회복이 안 되면 정부가 재정 기조를 유연하게 가져가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1분기 경제성장률 1.3% 중 정부가 기여한 몫은 0%다.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는 “민간 주도의 역동적 성장” “교과서적 성장경로”라고 자평했지만, 이는 뒤집어 말하면 정부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1분기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예산 집행률이 35%가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민간 주도 성장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반도체 등 일부 대기업 중심으로 수출이 호전됐지만 낙수효과가 미약하고 체감경기와의 괴리도 크다. ‘대파 논란’이 정치적으로 과도하게 소비됐다고 보지만, 정부가 재정 보수주의에서 벗어나 민생 지원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이번 총선에서 표출된 민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에게 똑같이, 그것이 지역화폐든 소비쿠폰이든 어떤 형태건 간에, 나눠주자는 민주당의 제안은 동의하기 어렵다. 내수 경기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팬데믹 같은 전례 없는 위기 상황도 아닌 시점에 소득과 자산 수준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나눠주기 위해 13조원을 쓰는 것은 재정 낭비다.

감세 정책과 경기 위축으로 지난해 국세가 예산보다 56조원 넘게 덜 들어오고,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넘겼는데 나랏빚 걱정은 안 하느냐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필요하다면 13조원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민생 지원에 써야겠지만, 재정지출의 정책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정교하게 고민하고 제안하라는 것이다. 2020년 5월 전 국민 대상으로 지급된 1차 코로나19 재난지원금 14조원 중 실제 소비 진작으로 이어진 것은 30% 정도였다는 게 문재인 정부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분석이었다. 사람들이 지원금을 받아 추가 소비를 하기보다는 저축을 한 셈이다.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이 당초 의도한 내수 진작으로 이어지진 않으면서 물가만 더 자극할 수도 있다. 물론 시중에 돈이 풀리면 물가가 올라가는 것은 불가피하고, 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정책적 가치가 있다면 감내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한적인 소비 진작, 인플레이션 우려 등 마이너스 효과를 상쇄할 만큼 민생지원금 지급에 따른 플러스 효과가 크다는 합리적 분석과 근거를 갖고 전 국민 민생지원금 지급을 얘기하는 것인지를 민주당에 묻고 싶은 것이다.

국정운영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 원내 제1당이 명확한 근거도 없이 전 국민 25만원 민생지원금 지급을 주장한다면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계층이 누구인지,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주길 바란다.

경향신문

이주영 경제부문장


이주영 경제부문장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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