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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무대에 오른 로봇 배우, 인간의 의미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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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연극 '천 개의 파랑'의 한 장면.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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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말이 어른에게 깨달음을 주듯,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이 아닌 존재의 시선을 빌려야 할 때가 있다. 인간이 비인간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예술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창조하는 방식을 취한다.

16일부터 공연 중인 국립극단 연극 '천개의 파랑'은 로봇을 등장시켜 인간성을 천착한다.

경주마를 모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는 자신의 파트너인 말 투데이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스스로 낙마해 하반신이 부서진다. 경마장은 상반신만 남은 콜리를 폐기하려 하고, 관절이 망가진 투데이 역시 안락사 대상이 된다.

인간에 의해 버려진 이들을 구하는 것은 또 다른 인간들이다. 로봇을 잘 다루는 연재는 콜리를 집에 데려오고, 휠체어 생활을 하는 언니 은혜와, 엄마 보경도 그를 가족으로 맞이한다. 연재와 은혜는 투데이의 안락사를 미루기 위해 그를 다시 경주에 출전시키는 계획을 세운다.

'천개의 파랑'은 콜리의 시선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메모리에 1000개의 어휘만 저장돼 있고, 호흡의 떨림으로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 콜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간을 이해한다. 가령 소방관이던 남편이 순직한 뒤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사는 보경에 대해 콜리는 "기억을 잔뜩 지니고도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폐기하지 않고 연재에게 준 민주에 대해서는 "차갑고 무심한 말투에 깊은 고민과 고단함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에게 잘 살아 보라고 말해준 사람"이라고 한다.

콜리를 연기하는 신장 145㎝의 로봇 배우는 브로콜리색 몸통과 LED 얼굴, 스스로 움직이는 팔, 손목, 목 관절, 스피커 등을 갖고 움직임과 대사를 소화한다. 국립극단 사상 최초의 로봇 배우다. 인물 간 대화는 로봇 배우가, 독백과 방백은 로봇 배우와 함께 움직이는 인간 배우 김예은이 소화한다. 김예은은 로봇 배우가 구사할 수 없는 역동적 표정과 동작을 표현한다.

경주마 투데이는 천장에서 무대 바닥에 비추는 빛으로 표현된다. 사람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허공의 빛줄기에 다가가 소통하는 모습은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허무는 것처럼 느껴진다. 휠체어를 타는 은혜와 관절이 망가진 투데이, 하반신이 부서진 콜리의 유사한 상황 또한 인간과 동물, 로봇 간의 연대를 강화한다.

공연은 4월 28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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