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韓 경제성장 모델 지적
제조 대기업 수출에만 의존
원천기술 개발 경쟁 뒤처져
첨단 반도체 빼면 中에 잠식
가계부채·고령화·저출생…
2030년 성장률 0.6% 전망
제조 대기업 수출에만 의존
원천기술 개발 경쟁 뒤처져
첨단 반도체 빼면 中에 잠식
가계부채·고령화·저출생…
2030년 성장률 0.6% 전망
[사진=픽사베이]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전세계를 놀라게 한 ‘한강의 기적’이 끝나가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왔다. 6·25 전쟁 이후 70년 만에, 가난했던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만든 성장 엔진이 꺼져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22일 파이낸셜타임즈(FT)는 아시아판에 ‘한국의 경제기적은 끝났는가’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를 게재했다. FT는 국가 주도 자본주의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첨단 제조 대기업을 육성한 한강의 기적이 이제는 낡은 모델이 됐고 수명을 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한국은행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에 대해 과거 성공 방식에 얽매여 낡은 경제성장 모델을 답습하는 동안 저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작년 말 한국은행이 발간한 ‘한국경제 80년 및 미래 성장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70~2022년 연평균 6.4%였다. 특히 1970년대 연평균 8.7%, 1980년대 9.5%로 기적같은 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한국경제는 인구 감소, 근로시간 축소, 자본 투입증가율 하락 등으로 정체 국면으로 진입했다. 총요소생산성(TFP)을 기준으로 보면 최악의 경우 2020년대 2.1%, 2030년대 0.6%, 2040년대에는 -0.1% 성장률을 기록하며 초저성장 시대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2029년 한국의 실질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연간 2% 초반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맥킨지앤컴퍼니 한국사무소의 송승헌 대표는 FT에 경공업에서 석유화학·중공업으로 전환한 1960~1980년대와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을 육성한 1980~2000년대를 한국경제의 2가지 도약기로 꼽았다. 그러나 저렴한 인건비·전기료를 바탕으로 한 제조업은 이제 성장 한계에 도달했다고 FT는 전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3년 대한민국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한국 산업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9.4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평균(64.7달러)의 약 4분의 3 수준에 그쳤다.
FT는 작년 말 기준 202조4000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전력에 대해 “한국 제조업에 막대한 산업 보조금을 제공하던 한국전력은 1500억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쌓았다”고 꼬집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FT는 삼성전자가 300조원,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각각 투자해 용인에 조성 중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이 신문은 “업계 전문가들은 대부분 첨단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인공지능(AI) 반도체에 대한 미래 수요 충족을 위해 용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경제학자들은 한국 정부가 과거처럼 제조 대기업 중심 경제 모델을 계속하면서, 기존 성장 방식을 개혁하거나 신성장 모델을 찾으려는 데는 무능함을 드러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상주 선임위원으로 영입된 여한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FT에 “한국 산업은 기존 모델에서 벗어나려고 해쓰고 있지만,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선 아직도 해결된 게 없다”고 말했다.
맥킨지에 따르면 2005~2022년 한국 10대 수출 제품 목록에 새로 추가된 건 디스플레이 단 1개 뿐이었다. 2012년 당시 한국 정부가 선정한 120개 국가전략기술 가운데 36개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 1위를 차지했지만, 2020년 들어선 단 4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FT는 “이젠 중국 기업들이 첨단 반도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 경쟁사를 따라잡았고, 과거 고객 또는 하청업체던 중국 기업들이 이젠 한국 기업의 경쟁자가 됐다”고 덧붙였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FT에 “모방으로 선진국을 따라잡는 한국의 경제 구조는 1970년대 이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며 삼성과 LG가 대규모 디스플레이 투자로 일본 기업으로부터 디스플레이 산업의 패권을 장악했던 2011년경에 이미 정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전체 근로자의 80% 이상을 고용한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납품가격 압박으로 직원·설비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해 생산성 악화의 악순환에 빠졌고, 전체 근로자의 6%를 고용한 대기업이 2021년 한국 GDP의 거의 절반이나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저출산·고령화에 인구구조가 붕괴하고 있는 점도 ‘한강의 기적’이 끝났다는 의견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5월 한국경제연구원은 오는 2050년경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398만4000여명으로 2022년 대비 34.75% 줄면서 GDP는 28.38%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FT는 사회 구조개혁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FT는 “사교육비 지출은 늘고,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연금, 주택, 의료 개혁은 정체된 반면 대기업에 대한 국가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서울을 아시아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는 오랜 캠페인은 거의 진전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낡은 성장 모델은 올해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지면서 더욱 해결이 어려워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FT가 제기한 비관론에 대해 최재경 전 민정수석은 “한국의 DNA에는 역동성이 내재돼 있다. 우리는 경제적 역동성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며 “아직 한강의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