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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광주 5·18 민주화운동’ 알린 美 테리 앤더슨 기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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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무장 세력에 6년간 납치됐다가 풀려나기도

AP “현장 직접 목격하는 데 매우 전념”

조선일보

테리 앤더슨 전 AP 특파원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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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통신사 AP의 중동 특파원으로 일하다가 이슬람 무장 단체에 납치돼 7년 가까이 구금됐던 테리 앤더슨(77)이 21일 별세했다. AP는 앤더슨 전 특파원이 이날 미 뉴욕주(州) 그린우드 레이크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심장 수술 이후 합병증을 앓아왔다고 AP는 전했다.

줄리 페이스 AP 편집국장은 이날 “테리 앤더슨은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보도하는 데 전념했으며 큰 용기와 결의를 보여줬다”고 했다. 토요일인 1985년 3월 16일 앤더슨 당시 베이루트(레바논 수도) 지국장은 함께 테니스를 친 AP 사진기자를 집에 데려다주던 중 권총으로 무장한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1982년 레바논 전쟁이 터진 뒤 많은 미국인들이 총성과 포성이 난무하는 이곳을 떠났지만 그는 베이루트에 남아 현지 소식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전했다. 납치 당시 그는 결혼을 앞둔 상태였고, 그의 약혼녀는 임신 6개월이었다. CNN은 “극도의 위험 속에서도 (앤더슨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취재를 계속했다”고 했다. 앤더슨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레바논에 있는 몇 안 되는 서방 국적자인 데다 기자라 납치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는 “베이루트는 매우 위험했다”면서도 “(당시 전쟁 취재는) 사실 내 인생에서 가장 매혹적인 업무였다”고 회고했다.

납치범들은 지금도 이스라엘과 교전 중인 레바논의 무장 세력 헤즈볼라 소속이었다. 이들은 앤더슨을 구타하고 눈을 가린 뒤 20여 개 은신처로 옮겨가며 구금했다. 그는 1991년 12월 풀려나기까지 2454일(약 6년 8개월)의 구금 기간 대부분을 쇠사슬에 묶인 채 지내야 했고, 때론 살해 위협도 받았다. 1년쯤은 독방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미국에 돌아오자 그의 딸 술로메 앤더슨은 이미 여섯 살이 됐다.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담아 1995년 출간한 ‘사자굴(Den of Lions)’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는 석방 이후에도 외상후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AP는 전했다. 앤더슨은 미국에 돌아온 뒤 “(당시) 마음을 붙잡을 방법이 딱히 없어 매일 몇 시간 동안 기도했다”며 “그러나 공허함만 가득했다. 신이 아니라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 같을 때가 많았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언론인 단체 내셔널프레스클럽은 성명을 내고 “앤더슨은 자신의 삶과 업적을 통해 저널리즘은 위험한 업무이고, 특히 외신 특파원은 대중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고 했다.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전 세계 현장을 누빈 그의 삶은 AP 입사 이전부터 시작됐다. 앤더슨은 1947년 10월 미국 오하이오주 로레인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 미시간대에 합격했지만, 대학 입학 대신 해병대 입대를 택했다. 6년간 복무하면서 5년은 일본·베트남에서 라디오 방송국 등 소속 대원으로서 전투를 기록하는 임무를 맡았고, 1년은 아이오와주에서 모병 업무를 했다. 제대 후 아이오와주립대에서 저널리즘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졸업한 그는 지역 방송국을 거쳐 AP에 입사했다. 미 켄터키주에서 근무하다 일본 도쿄 특파원으로 부임한 그는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현장을 직접 찾아 당시 상황을 보도하기도 했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은 앤더슨이 1980년 5월 22~27일 광주에서 현장 취재해 보도한 기사 원고를 공개하기도 했다.

앤더슨의 노년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이란 정부가 그의 납치에 역할을 했다는 미 법원 판결에 따라 이란 동결 자금 수백만 달러를 보상금으로 받았다. 이 돈으로 친구와 함께 ‘베트남 어린이 기금’이라는 재단을 설립한 뒤 베트남에 50개 이상의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보상금 대부분을 투자로 잃어 2009년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이후 플로리다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다 2015년 은퇴했고, 이후 버지니아주의 말 농장 등에서 지냈다. 술로메는 워싱턴포스트에 “아버지를 일주일 전에 봤을 때는 ‘난 아주 오래 살았고 아주 많은 일을 했다. 만족한다’고 했다”고 전하며 “아버지는 영웅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모두가 계속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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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테리 앤더슨 AP기자가 지난 1992년 6월 22일 오하이오주 로레인에서 열린 퍼레이드에 참가해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그는 1985년 레바논에서 이슬람 무장 세력에 의해 납치돼 6년8개월 넘게 납치됐다가 풀려나 미국으로 안전하게 돌아왔고, 미국 국민은 그를 환영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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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1년 12월 12일, AP 중동 특파원이었던 테리 앤더슨(왼쪽에서 둘째) 기자가 미국 AP 워싱턴 지국을 방문한 동료 짐 에이브럼스와 포옹하고 있는 모습. 앤더슨은 당시 이슬람 무장 세력으로부터 납치됐다가 풀려난 직후였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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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민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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