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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국보 찢어 딱지 만들던 꼬마…‘역사의 파수꾼’ 된 사연 [방방콕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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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흐름 중심에 놓인 제주 대정현
토박이 김웅철 역사문예포럼 이사장
약 2만점 자료 모아 전시관 홀로 운영


매일경제

김웅철 향토사학자가 대정읍 주민 이기선씨의 사진을 들고 있다. 이기선씨는 일제강점기에는 강제징용, 한국전쟁 때는국군 노무 부대에서 땀을 흘렸다. [송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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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대정현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역입니다. 조선시대 유배·민란부터 일제강점기, 4·3, 한국전쟁에 이르는 굵직한 역사의 흐름 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주 향토사학자 김웅철(75) 대정현 역사문예포럼 이사장은 최근 진행된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여태껏 주민등록을 한 번도 옮겨본 적이 없는 대정읍 토박이로, 평생 대정현 관련 사료와 사진 등 1만8500여점에 이르는 역사 자료를 수집한 ‘대정 향토사 파수꾼’이다. 대정현은 조선시대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에서 서귀포시 대정읍, 안덕면, 법환동 법환포구를 아우르는 행정구역명이다.

추사 김정희가 그린 병풍으로 ‘딱지’ 만들던 꼬마
그가 대정현 향토사에 빠져든 계기는 집안 내력에 있다.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한 추사 김정희와 저희 현조(玄祖) 할아버지의 교분이 매우 두터웠습니다. 당시 현조 할아버지가 ‘좌수’로 있으면서 추사 선생의 유배 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왔기 때문이죠. 이러한 인연으로 집안에는 추사의 작품이 여럿 있었고, 어르신들로부터는 추사를 비롯한 대정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상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국보급으로 추앙받는 추사의 병풍을 찢어 딱지를 만들다 혼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무렵부터는 대정의 역사 자료를 수집하고, 향토 사학자들과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심지였던 제주 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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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철 향토사학자가 자신의 전시관에서 한국전쟁 당시 찍힌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장 위에 있는 사진은 제주에서 진행된 중공군 사망 포로 영결식. [송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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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유배 문화에서 시작된 그의 역사 여행은 조선시대 민란, 일제강점기, 4·3, 한국전쟁으로 확대됐다.

“이재수의 난과 방성칠의 난 등 제주의 굵직한 민란은 모두 대정에서 일어났습니다. 실제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제주인의 성향을 분석하면서 ‘조천은 머리, 대정은 완력’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대정은 일제강점기 중일전쟁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했고, 4·3 때는 수백명의 민간인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의 장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는 육군 제1훈련소가 설치돼 50만명에 이르는 장병을 육성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향토사 열정은 국경도 막지 못했다.

“직업이 영어를 가르치는 중등교사였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사비를 털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세 차례나 방문했습니다.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는 한국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의 귀중한 사진 자료 수천점을 수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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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현역사자료전시관 내부 모습. 김웅철 향토사학자가 수집한 자료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송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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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력은 지난 2018년 ‘대정현역사자료전시관’ 개관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수십 년 동안 그가 수집한 자료의 가치를 인정한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제가 수집한 자료를 본 주변 사람들이 전시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전시회는 대성공이었어요. 이후 제가 소장한 자료를 많은 사람이 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결국 전시관 개관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전시관 건물도 1933년 4월 5일부터 1980년 6월 5일까지 대정읍(면) 사무소로 쓰인 곳인데, 등록문화재 제157호로도 지정된 곳입니다.”

전시관 개관했지만 팔순 앞둔 노인이 혼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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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한 켠에는 깨진 액자와 먼지 쌓인 사진들이 쌓여 있었다. [송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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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문을 연 지 6년이 지나면서 걱정도 생겼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혼자 전시관을 이끌어 가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청소부터 전시 기획, 해설, 자료 정리까지 모든 업무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뿌리를 찾으러 온 재일교포, 제주에서 피난 생활을 한 피난민이 당시 사진을 보고 눈시울을 붉힐 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내가 없으면 전시관은 어쩌나’라는 걱정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게 사실입니다. 현재 사비로 사설 창고 4개를 빌려 나머지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삭거나 곰팡이가 피는 경우가 생기고 있습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역사 탐구… “전시관 운영 주체 확립·출판 지원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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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철 향토사학자가 국문화 작업을 벌이고 있는 ‘원대정군지’. [송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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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시관 운영 외에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정재(正齋) 고병오(高炳五) 선생(1899∼1972)이 남긴 ‘원대정군지(元大靜郡誌)’를 국문화하는 것이다. 원대정군지는 대정현의 설치부터 자연환경, 역사, 각종 시설 등을 100여개의 주제로 나눠 기록한 책이다.

“몸이 허락하는 한 대정의 역사,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누구한테 인정이나 받으려고 수십 년 동안 이 일을 했겠습니까? 한 명이라도 내가 남긴 자료를 통해 역사를 배웠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시관 운영 주체 확립과 출판물 제작도 시급히 필요합니다.”

※ ‘방방콕콕’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발생하는 따끈따끈한 이슈를 ‘콕콕’ 집어서 전하기 위해 매일경제 사회부가 마련한 코너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소식부터 지역 경제 뉴스, 주요 인물들의 스토리까지 다양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현장에서 열심히 발로 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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