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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책의 향기]“인류 최고의 번영, 탁월한 군사력으로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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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로마나’ 군사력 관점서 조명

제국에 평화와 번영 가져다줬지만

반란-쿠데타 등 위협 요소 되기도

◇팍스/톰 홀랜드 지음·이종인 옮김/680쪽·4만3000원·책과함께

동아일보

이탈리아 로마 시내의 콜로세움. 혼란스러웠던 ‘네 황제의 해’를 끝내고, 황제에 오른 베스파시아누스는 동방의 여러 식민지를 점령한 뒤 착취한 세금으로 콜로세움을 지었다. 책과함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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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상 인류의 생활 조건이 가장 행복하고 번창했던 시기.”

로마제국의 전성기였던 2세기를 황금시대라고 규정했던 18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저서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당시 로마제국은 지중해 일대를 단일한 통치권으로 지배했을 뿐 아니라 도로망 등 사회 기반시설 확충, 해적 소탕, 문화 전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평화와 번영을 이뤘다. 서기 1∼2세기의 로마제국을 ‘팍스 로마나’라고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이 시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위기가 끊이지 않았다. 예컨대 네로 황제 사후 1년 뒤인 서기 69년은 1년간 황제 4명이 잇달아 교체된 ‘네 황제의 해’였다. 야전군의 반란과 황제 옹립이 뒤따르며 극심한 권력 다툼이 벌어진 것. 영국 역사학자인 저자는 “팍스 로마나는 무력으로 유지됐다”고 분석하면서 로마제국의 위기와 극복 과정을 써 내려간다.

이 책은 팍스 로마나(기원전 27년∼기원후 180년) 중에서도 네로 황제가 사망한 68년부터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사망한 138년까지 70년간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기간이 책 부제처럼 로마 황금시대의 전쟁과 평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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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한 백부장(부대장)의 비석. 백부장이 들고 있는 포도넝쿨 막대기는 지휘권을 상징한다. 책과함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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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로마제국을 이끈 원동력은 강력한 군사력이라고 말한다. 네로 사후 즉위한 갈바부터 하드리아누스까지 책에 등장하는 황제들은 대부분 군단장을 경험했다. 당시 로마 군단은 6개 중대가 1개 대대를, 10개 대대가 1개 군단을 이루는 등 관료화된 조직이었다. 각 중대에서는 백부장(부대장)이 병사들의 개인 기록을 관리하며 조직을 실무적으로 이끌었다. 선임 백부장과 대대장 격인 천부장에게는 더 많은 명예와 보상이 주어졌다. 관료화된 군단을 통한 전쟁 승리와 조직적인 행정력은 로마에 강력한 힘을 가져다줬다.

군사를 중심으로 한 로마의 상무(尙武) 문화는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콜로세움은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곳이었지만 시민들에게는 최고의 오락 공간이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세계 통치권을 기념하기 위해 콜로세움을 세웠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강력한 군사력은 로마제국에 위험 요소이기도 했다. 라인강 서쪽과 그리스, 북아프리카, 브리타니아(영국 섬) 등으로 제국 범위가 확장하면서 변방 지역에서 반란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로마제국은 라인강 토벌, 유대 반란 진압 등 점령지에 대한 강력한 지배권을 구축하는 한편 세금 수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1세기 로마의 저술가 타키투스는 이런 모습을 보며 “그들은 (점령지를) 황무지로 만들어 놓고, 이를 평화라고 불렀다”고 기록했다.

팍스(PAX)는 라틴어로 평화를 뜻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로마 군단의 탁월한 살상 능력은 팍스 로마나의 필수적인 선결 조건”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세계 도처에서 전쟁이 터지고 있는 이때, 패권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며 온갖 시행착오를 겪은 로마제국의 역사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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