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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이슈 검찰과 법무부

[법없이도 사는법] 없었던 일을 증명하라?... 이화영의 말 바뀌는 ‘검찰청 술자리 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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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검이 18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이른바 '술자리 회유' 주장에 반박하며 출정일지와 호송계획서 사본 등을 공개했다. 검찰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전 부지사는 술을 마셨다고 지목한 시점에 검사실을 떠난 것으로 나온다. /수원지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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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을 증명하는 게 가장 힘들다”

‘검찰청 술자리 회유’의혹을 두고 18일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 검찰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측의 공방을 본 한 법조인의 소감입니다. 형사사법절차에서 유죄의 입증책임은 검찰에 있습니다. 피고인은 그에 맞서 검찰 증거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식으로 변론을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꾸로 피고인인 이 전 부지사의 ‘검찰청 술자리 회유’ 주장을 검찰이 깨뜨려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검찰청에서 술자리를 갖고 피고인을 회유하는 상황은 있을 수도 없는 사실무근이라는 검찰 입장에서는 ‘없는 일’을 증명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게다가 이 전 부지사 측은 술자리 일시와 장소에 대해 계속 말을 바꾸었습니다. 검찰이 이를 자료로 반박하는 과정에서 일반인은 볼 일이 없는 교도관의 ‘호송계획서’ ‘출정일지’사본까지 등장하게 됐습니다.

◇6월->6월 말·7월초->7월 3일, 계속 바뀌는 술자리 시점

이 전 부지사가 처음 ‘검찰청 술자리 회유’ 주장을 편 것은 지난 4일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결심공판에서였습니다. 그는 “(수원지검)1313호 검사실 앞 창고라고 쓰여 있는 방에 김성태 전 회장 등과 모였는데, 쌍방울 직원들이 외부에서 연어·회덮밥 등 음식도 가져다 주고 심지어 술도 한 번 먹은 기억이 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처음에는 술자리 시점을 특정하지 않았던 이 전 부지사 측은 이 주장이 나온 후 그 시점을 6월 무렵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러다 언론인터뷰를 통해 6월말~7월 초순 오후 5~6시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수원지검은 17일 장문의 입장문을 내고 반박했습니다. 검찰 조사에 입회한 변호사, 계호 교도관 38명 전원 및 출정기록 등을 조사한 결과 이 시기에 검찰청사에 술이 반입된 사실 자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6월 말이라고 한다면 이미 ‘진술조작’의 필요가 없어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검찰 입장문에 따르면 이화영씨는 작년 6월 9일부터 6월 30일까지 5회에 걸쳐 대북송금과 관련한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관여사실에 대해 진술을 모두 마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6월 30일 이후 7월 초순경 술을 마시고 진술을 조작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도관 출정일지+호송계획서 VS 이화영의 ‘그림’

그러자 이화영씨 변호인 김광민 변호사가 18일 장문의 입장문을 내고 재반박에 나섰습니다. 김 변호사는 ‘6월 30일은 밤늦게까지 조사가 이뤄졌기 때문에 음주가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며 ‘6월 28일과 7월 3일, 7월 5일 중 하루에 음주가 이뤄졌는데 그 중 7월 3일이 유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성태 쌍방울 회장이 당시 직원 박모씨에게 수원지검 앞 삼거리에 있는 연어 전문점에서 연어를 사오라고 해서 연어 안주와 함께 술을 마셨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같은 날 검찰이 공개한 출정 기록에 의해 곧바로 반박당합니다. 그에 따르면 2023년 6월 28일은 16:45에 조사를 마치고 구치감으로 이동해 17:00 수원구치소로 출발했고 문제의 7월 3일의 경우에도 17:05 조사를 마치고 검사실을 떠나 구치감으로 이동해 17:15 수원구치소로 출발했습니다. 즉 김성태씨가 직원을 시켜 연어를 사와 술을 마셨다는 그 시간에 이미 이화영씨는 수원지검 검사실이 아니라 수원지검 구치감이 수원구치소에 있었기 때문에 이화영씨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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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검이 18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이른바 '술자리 회유' 주장에 반박하며 출정일지와 호송계획서 사본 등을 공개했다. 검찰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전 부지사는 술을 마셨다고 지목한 시점에 검사실을 떠난 것으로 나온다. /수원지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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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검이 출정일지와 함께 공개한 ‘교도관 호송계획서’에 따르면 이화영씨는 ‘3*8가’로 표시돼 있고 그를 호송한 교도관의 이름이 병기됐습니다. 7월 3일의 경우 구치감에서 호송차량으로 수원구치소로 출발한 시각은 17:15, 구치소에 도착한 시간은 17:35입니다. 호송계획서에는 차량번호와 함께 호송 책임자, 무기 휴대자(가스총·권총·실탄) 이름, 운전석 위치, 탑승한 피의자 및 교도관 이름도 모두 적혀 있습니다.

이날 ‘출정일지’에는 동행한 교도관의 이름과 함께 조사 시간이 16:00~17:05로 적혀 있습니다. 즉 이날 검사실에 16:00에 도착해 17:05에 조사를 마쳤고 검찰청 내 구치감에 내려왔으며 17:15 구치감에서 출발해 17:35 수원구치소로 돌아온 사실이 확인됩니다.

출정일지에는 이화영씨 뿐 아니라 같은 날 출정한 다른 피의자들의 이름과 죄명, 시간대별로 동행한 교도관의 직위·이름까지 적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폭처법(공갈)혐의로 구속된 오모씨의 경우 14:00~15:20(교감 권모), 15:20~16:30(교감 서모), 16:30~17:50(교사 김모) 17:50~18:20(교사 서모)와 같은 식입니다. 구속된 피의자들의 조사 시간이 길어질 경우 공백 없이 밀착 계호하기 위해 시간대를 나누어 교도관을 배치한 것입니다.

김광민 변호사는 회유·압박이 ①1313호실 앞 창고 ②1313호실과 연결되는 진술녹화실 ③1313호실과 연결되는 검사 개인 휴게실 세 곳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화영씨가 직접 그렸다는 1313호실 구조를 제시하며 교도관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진술녹화실과 검사휴게실에서 회유·압박이 이뤄졌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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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영이 직접 그린 1313호실 구조. 김광민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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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사를 위해 자주 드나들던 검사실의 구조를 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회유·압박’의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증거의 뒷받침이 없는 일방적 주장은 오히려 검찰이 공개한 객관적 자료들의 신빙성을 더욱 높여 주는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마셨다->술 안마셨다 진술 변경 어디까지

이화영씨는 지난 4일 피고인신문에서 음주상황에 대해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술을 마셨고 그것 때문에 술이 깰 때까지 장시간 검사실에 대기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공개한 7월 3일 출정일지와 호송계획서에 따르면 17:05 조사를 마치고 10분 뒤 구치감에서 출발해 20분뒤 수원구치소에 도착했기 때문에 이화영씨 주장대로 ‘오후 5~6시쯤 술을 마시고+장시간 검사실에 대기까지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김광민 변호사는 18일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종이컵에 뭘 따라주길래 (이화영 전 부지사가)마시려 입을 대보았는데 술이여서 마시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화영씨의 ‘검찰청 술자리’주장에서 촉발된 논란인데, 말을 바꾸다 보니 결국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483회 접견했다는데…술자리 얘기는 왜 없었나

이화영씨 주장대로 검찰청에서 술자리가 있었고, 김성태씨로부터 회유가 있었으며 그 과정에 검사가 관여했다면 이는 진술 자체를 무효로 만들수 있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형사소송법 309조는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게 아니라고 의심할 경우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고 돼 있습니다. 술자리를 통한 회유가 사실이라면 진술의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사유가 되고 이는 이화영씨가 자백했다는 이재명 지사에 대한 대북송금 보고를 통째로 ‘날릴’ 수 있는 내용입니다.

수원지검에 따르면 이화영씨는 구속 이후 작년 12월까지 구치소에서 가족 및 지인 접견 188회, 변호인 접견 288회, 장소변경 접견 7회 등 합계 483회의 접견을 가졌습니다. 평균 하루 한 번 이상의 접견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접견 중에 ‘술자리 회유’와 같은 중요한 사실은 왜 말하지 않은 것일까요. 이씨가 이 주장을 처음 꺼내든 지난 4일은 재판을 마무리하고 피고인 신문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이미 재판이 끝나가는 시점이어서 적어도 1심에서는 더 이상의 추가 공방은 불가능합니다.

혹시 너무나도 중요한 주장이어서 검찰에게 불의타(불의의 타격)를 가하기 위해 마지막에 꺼내 든 것일까요? 그런 것 치고는 주장이 무척이나 허술합니다. 신문 기사와 마찬가지로 법률적 주장에서도 ‘6하원칙’이 기본인데 일시와 장소, 심지어는 음주 여부까지 내용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화영 전 부지사의 뇌물 및 대북송금 사건은 오는 6월 7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는 2018년부터 4년간 쌍방울 그룹으로부터 자동차와 법인카드 등 총 5억원이 넘는 정치자금과 뇌물을 받고,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공모해 이재명 대표의 방북비용 등 800만 달러를 북한 측에 건넨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검찰은 징역 15년을 구형했습니다. 그의 개인비리보다는 이재명 대표가 거론된 대북송금 부분의 판단이 특히 관심 대상입니다.

피고인 아내의 돌출행동, 법관 기피에 이어 재판 막바지의 ‘검찰청 술자리’ 주장까지 온갖 논란에 휘말렸던 이 사건의 1심 결론이 낳을 법적, 정치적 파장이 벌써부터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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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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