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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기고]기아(Famine)는 당신이 아는 굶주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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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한영 한국월드비전 인도적지원팀 과장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수십만명이 굶주린다는 소식이 가끔 전해지기도 하지만 다른 뉴스들로 묻힌 지 오래다. 최근 유엔(UN·국제연합) 조사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약 110만명의 가자 지구 주민들이 기아(Famine) 상황에 놓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서 말하는 기아는 배가 고픈 채로 잠들고 성장에 악영향을 주는 정도의 배고픔이 아니다. 영양실조와 여러 합병증으로 5세 미만의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목숨을 잃는 재앙적인 상황을 뜻한다.

끼니를 챙긴다는 것보다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을지를 고민하는 우리는 식량이 부족해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기아 상황은 처음이 아니고 십여년 전 사건의 반복이다.

2010년부터 3년간 이어진 아프리카 뿔 지역 가뭄으로 여러 나라가 식량 위기를 겪었다. 그 중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소말리아였다. 2011년 한 해 동안 소말리아에서 25만명이 영양실조와 합병증으로 사망했고 그중 절반 이상은 다섯살 미만 아동이었다.

당시 구호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식량 위기를 경고하며 지원을 촉구했지만 제때 충분한 도움이 닿지 못했다. 이 비극의 상흔이 아직 남아 있는 소말리아와 인근 국가들이 다시 심각한 식량 위기를 겪고 있다.

대부분 주민이 자연 강우에 의존해 농업과 목축 등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최근 5년 동안 가뭄이 이어진 탓이다. 이들이 겪는 고통은 누구의 탓인가. 기후 변화를 초래한 사람들의 탓인가.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그들의 탓인가.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기후 변화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재앙이 된다.

세계 곳곳에서는 굶주림으로 인한 인류의 고통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장 지글러(Jean Ziegler)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지적한 것처럼 충분히 생산된 식량들이 가축 사료로 사용되거나 투자 상품으로 다뤄진다. 시장 논리에 따라 폐기되거나 오용되기도 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농업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전 세계 인구를 먹이고도 남을 충분한 식량을 매년 생산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 케냐 북부 투르카나에서 나이로비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목축으로 생활하던 이곳 주민들은 계속된 가뭄에 유일한 수입원인 가축을 대부분 잃고 식량을 구할 길이 없어졌다. 이들을 위해 지난해 4월 긴급하게 시작된 식량 배급은 며칠 뒤에 끝이 난다.

지난 몇 달간 식량 수급이 어려워 계획에 턱없이 모자라게 배급이 이뤄졌다. 이번에 지급되는 두 달 치의 식량이 마지막이라는 말에 주민들은 텅 빈 눈으로 몇 번이나 물었다. "두 달 동안 먹을 것이 생겨서 기쁘고 감사해요. 하지만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이들의 질문은 우리 모두와 국제사회를 향해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가 행동으로 답할 차례다. 식량원조협약(FAC) 가입국인 우리 정부는 지난 G7 정상회담에서 기존 연간 5만톤에서 10만톤으로 식량 지원 확대를 공헌했다.

약속을 이행하고 나아가 식량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고 취약한 사람들이 재난에 대한 회복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인도적 지원 예산을 지속해서 확대하기를 촉구한다.

우리에게는 모두를 먹일 수 있는 충분한 식량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잃어버린 귀중한 생명으로도 배움을 얻기에는 충분하다.

박한영 한국월드비전 인도적지원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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