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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여야 돈풀기 정책 난무…볼커같은 악역이 필요하다 [송성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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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패배 후 정책혼란 극심
국민들 물가고통 막으려면
쓴소리할 소신있는 관료 절실


매일경제

1982년 3월 폴 볼커의 얼굴과 함께 ‘금리 인상의 고통’ 이라는 기사를 실은 타임지의 표지 사진. 당시 연준 의장이던 폴 볼커는 과감한 통화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를 회복시켰다. [사진출처 = 타임지]


“카터, 한 가지는 알았으면 해요. 저를 임명하면 기존 정책은 중단시킬 거예요. 그리고 저 사람(전임자)보다 훨씬 강력한 정책을 할 겁니다.”

1979년 여름,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백악관을 찾아간 폴 볼커는 연신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이렇게 말했다. 볼커는 훗날 5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고 기억했지만, 지미 카터 대통령에겐 꽤 길게 느껴졌을 듯싶다. 카터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줄곧 날을 세웠던 그에게 차기 연준 의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카터는 인플레이션 전쟁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대선 기간이던 1976년 9월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일찌감치 그는 “인플레이션을 잡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돈을 부족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당선되면 인플레이션과 싸우려고 실업 증가나 경기 후퇴를 용인하진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4% 이하로 동시에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3년 뒤 실업률 6%, 인플레이션은 10%까지 치솟았다. 돈을 뿌리면서 물가를 잡기란 애당초 불가능했다. 궁지에 몰린 카터 행정부는 급기야 기업과 노조를 향해 가격과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호소까지 해봤다. 물론 소용없었다. 경제는 도덕이 아니라 인센티브로 움직인다는 걸 간과했다.

결국 카터는 1979년 7월 국민들 앞에 섰다. 선순위에 뒀던 일자리 창출 목표는 뒤로 미루고, 물가 억제를 최우선 과제로 바꾸겠다고 선언한다. 한 달 뒤 볼커가 취임한다.

카터와 볼커 얘기를 정리하다 보면 요즘 상황과 묘하게 겹치는 부분을 느낀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 미국은 경기 부양을 최우선에 뒀다. 적극 재정을 통한 경기 활성화에 자신감을 얻은 케인스주의 학파가 득세할 때였다. 카터의 대선 공약도 그런 차원이었다.

하지만 오일쇼크는 달랐다. 원유 조달이라는 ‘공급’ 측면에 근본적인 문제가 생겨서 가격이 급등했는데, 처방은 엉뚱하게 ‘수요’ 측면에 모아졌다. 공급을 늘릴 수 없다면 수요를 줄여야 수급이 맞아서 가격이 튀지 않는다. 공급 부족은 그대로 두고 돈을 뿌려 수요를 진작시키다 보니 가격만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급등)이라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실제로 1970년대 같은 기간 오일쇼크를 똑같이 경험한 독일이나 스위스에선 경기침체가 있었지만 물가는 크게 오르지 않았다. 미국과 달리 인위적인 경기 부양에 소극적이었던 국가다.

2024년, 다시 인플레이션이 최대 화두다. 이미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 중동 화약고에 불이 붙으면서 유가도 언제든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태세다. 환율마저 불안하다. 원화값이 급락하면 수입 물가가 올라 물가를 더욱 자극한다. 환율 1400원에 당국이 1차 방어선을 긋는 배경이다. 물가를 못 잡으면 금리 인하는커녕 되레 올려야할 수도 있다. 물가 고통에 금리 고통이 뒤따른다.

정부와 정치권이 카터식 정책 실패를 되풀이하려는 것 같아 걱정이다.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겠다고 각종 지원금과 가격 보조를 대규모로 예고하고 있는데, 십중팔구 물가 고통만 키울 공산이 크다.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이기 때문이다. 값이 올랐다는 건 소비를 줄이라는 시장의 신호다. 사과 안 먹어도 될 사람을 괜히 계속 먹게 할 뿐이다. 생계에 직접 타격을 입는 계층만 집중 지원해주면 될 일이다.

총선 참패로 관료사회가 술렁인다.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정책 혼선이 극심하다. 쇄신은 볼커처럼 악역 맡을 사람을 얼마나 찾아내는지에 달렸다. 소신 있는 관료의 시간이 왔다.

카터와 볼커는 현직 때는 인기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정받은 인물이다. 초고금리 정책을 펼쳤던 볼커는 당시 살해위협을 받을 정도였다. 카터는 재선에서 낙마했다. 하지만 물가를 결국 잡았고, 미국의 유례없는 호황을 이끌어냈다.

카터는 백악관에서 만난 볼커 태도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을 그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내게는 경제를 돌볼 누군가가, 그래서 내가 마음 놓고 정치를 돌볼 수 있게 할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볼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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