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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총리·비서실장 인선 검토설에 허점 노출…공보라인 3시간뒤 없던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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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5시 26분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총리 후보자에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대통령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유력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대통령실은 발칵 뒤집어졌다. 공식 인사 업무를 맡고 있지 않은 제3의 라인인 윤 대통령 측근 그룹 소속의 대통령실 일부 참모는 긍정한 반면, 고위 관계자와 공식 공보라인에선 “황당하다” “누가 이런 말을 하나. 실현 가능성이 없다. 전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념이 다른 두 개 이상의 정당이 연립 정권을 구성하는 프랑스 동거 정부를 떠올릴 법한 이 같은 구상이 대통령의 의중에 오르내린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여당이 발칵 뒤집히며 반발하자 대통령실은 “해당 인선은 검토된 바 없다”고 공식 부인했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이 여러 후보군 중 하나로 박 전 장관과 양 전 원장 인선을 검토하는 과정에 공식 인사업무를 맡고 있지 않은 윤 대통령 측근 그룹이 해당 인사를 추천하는 등 관여했고 대통령실 내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관섭 비서실장이 검토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통령실 인사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대통령실 내부 회의에서는 특정 참모가 조직 체계를 무시하고 의견을 내고 있다며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비판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 공식 인사 라인 아닌 尹 측근 그룹 관여

총리와 비서실장 인선을 둘러싼 이 같은 이견 노출은 윤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측근 그룹과 비서실 공보, 정무 라인 등 참모들 사이의 인선 방향과 현실 인식 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인사 업무와 직접적 관련성이 없는 윤 대통령 측근 그룹의 한 참모는 이날 “박 전 장관과 이 전 원장에 더해 김종민 새로운미래 의원도 정무장관 후보자로 유력 검토하고 있다. 다만 여론 추이를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해당 인선에 대한 여론 반응을 보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측근 그룹 내 다른 참모는 “상황이 굉장히 심각하고 엄중하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도 안 된다고 하니 (진보 진영 인사를 검토할 정도로) 후보군을 넓혀 보는 차원”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황당하다. 전혀 검토한 적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3명을) 검토해 보라고 하는 얘기를 윤 대통령이 우리에게 한 적 없다”며 “보수 진영에서 가만히 있겠느냐.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고 그냥 아이디어 차원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여당에서 거센 반발이 이어지자 대통령실은 이 같은 혼란을 해소하려는 듯 보도 3시간여 만에 “검토된 바 없다”고 공식 알림까지 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공지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 “대통령실 인사·보좌 시스템 허점 노출”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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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쇄신 방향을 둘러싼 이 같은 대통령실 내부의 이견 노출을 두고 비서실의 대통령 보좌 기능에 공백이 생긴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총선 참패 이튿날인 11일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과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 및 수석 전원이 사의를 표명한 뒤 일부 윤 대통령 측근 그룹 라인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야권 인사를 기용하는 방편으로 여론 추이를 살피기 위한 ‘애드벌룬’을 띄웠다는 것이다. 핵심 정보 취급에 대한 시차가 대통령실 참모 간에 커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야권 인사의 내각과 대통령실 기용 구상 배경에는 대선 전만 해도 국민의힘 소속이 아니었던 윤 대통령의 이력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본인이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을 지냈고 야권 인사들과도 소통해 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야당과의 ‘협치’를 요구하는 국민 목소리가 크지만 이를 실제로 이행하려면 보수층의 강한 반대를 맞닥뜨리게 된다”며 “대통령은 ‘국민과 민생’만 바라보기로 한 만큼 이 같은 구상도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보수 지지층의 반발을 부를 인선안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인재풀이 부족한 현 정권의 처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 같은 구상은 대통령 권력이 막강하거나 명분이 살아 있을 때 가능하지만 그마저도 실현되기 극히 어렵다”며 “집권 여당과 보수 진영이 이 같은 구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대통령 권력의 크기’를 둘러싼 인식 차가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 권력이 막강할 때도 어려운 일인데, 집권 3년 차 총선에서 대패한 정부가 던지기엔 무리라는 것이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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