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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내가 죽으면 숲속장으로 부탁해요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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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충남 보령 기억의숲. 국립기억의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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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희 | 국립기억의숲 센터장



산벚이 피니 ‘국립기억의숲’이 환하다. 혹시 생물의 뜻을 아는가? 살아있는 것, 세포로 구성된 것 등의 대답을 듣는다. 맞는 말이지만 한 면의 모습이다. 생물은 살아있는 것이자 모두 죽는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찰싹 붙어있으며, 모든 생물에게 공평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죽음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내게 올지 알 길이 없다. 세월호·이태원 사고, 매일 일어나는 교통사고, 불시에 덮치는 죽음까지…. 그래서 두렵고 무섭다.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밀어낸다. 그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산다. 죽음을 생각할 겨를도, 준비할 여력도 없이.



기억의숲에서 매일 죽음과, 그 가족들을 만난다. 갑자기, 불쑥 찾아온 준비 없는 죽음 앞에 가족들은 화장장을, 마지막 안식처를 찾느라 분주하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을 먹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나, 갈 곳이 마뜩잖다. 연일 추모공원 만장, 화장시설 부족, 무연고 묘지, 봉안당 만기도래 미계약 속출 같은 소식을 접한다. 어렵게 화장을 한 후 집에 모시기도 하고, 몇 달을 임시 보관소에 두기도 한다. 유리장에 넣어두자니 답답할 것 같고, 바다에 뿌리자니 것도 쉽지 않다. 삶만 생각하면서 살다 보니, 닥치는 죽음이 늘 버겁다.



“지혜로운 사람에겐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말한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생각나는 봄이다. 기억의숲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두 번째 수목장림이다. 30~40년이 넘은 수령으로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가족목, 다른 분들과 공유하는 아름다운 공동목이 있다. 수목장은 화장한 골분을 나무 아래 묻는 방법으로 자연으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성경에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했다. 수목장은 땅 속 4천여 종류의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다시 숲 속 생물로 온다. 바람, 물, 햇살의 도움을 받아 소풍을 떠나기도 한다. 기억의숲은 죽은 자가 평화롭게 묻히는 공간이자, 마을 분들에게는 뒷산이고, 앞산이다. 매일 운동하러 오는 곳, 인근 지역민과 장애인, 어르신에게는 치유의 공간이자, 숲 교육 장소이기도 하다. 개장 후 여러 기관과 단체, 마을주민 대상으로 웰다잉, 숲 교육,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숲을 나누고 배웠다. 당도한 죽음의 사례를 통해 현재의 삶에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모두의 숲을 위해 기억의숲은 봉분이나, 비석, 꽃나무 식재 등을 제한하고 있다. “봉분과 비석이 없어 감사합니다. 무덤에서까지 위화감을 조성하는 건 자식들에게 또 다른 짐이에요. 어떤 생물도 죽어서 흔적을 남기지 않잖아요.” 요즘은 유가족들이 앞서간다. 봉분과 비석, 주변 정리는 때로는 숲의 물길을 바꾸고, 야생 생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숲은 오랜 시간 다양한 생물과 소통을 하며 안정화돼 있으며, 이미 온전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을수록 다시 숲으로, 생명으로 오실 분의 시간이 더뎌진다. 기억의숲 직원들은 인위적인 것을 최대한 배제하고 돕는다.



기억의숲을 방문하는 죽음을 보며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 ‘살아 있음’이 또렷해진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따뜻한 저녁밥을 나누며 “내가 죽으면 생물들과 뛰어놀게 숲속장으로 부탁해~” 말한다. 그리고 소유보다 어떻게 풍요롭게 존재할 수 있을지 방법을 이야기한다. 죽음을 생각하기만 해도 일상이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좋은 때는 없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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