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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일사일언] 당연히 맛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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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맛이 무섭다. 파리에서 시작돼 세계로 순식간에 퍼져 나간 크루키(crookie) 열풍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크루키는 크루아상과 쿠키의 합성어로 크루아상을 가로로 반 자른 다음 안쪽과 위에 초콜릿 칩 쿠키 반죽을 채우고 구운 것이다. 처음 등장한 곳은 2022년 파리의 베이커리 메종 루바드. 지난겨울까지는 이곳에서 적당히 잘 팔리는 인기 메뉴였지만 2월에 한 인플루언서가 크루키 먹는 영상을 올리면서 초대박 메뉴가 되었다. 이제는 세계의 디저트 가게에서 크루키를 선보이고 있다.

이미 아는 음식을 조합해서 새롭게 만드는 하이브리드 디저트가 인기를 끈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2013년에는 크루아상 반죽으로 만든 도넛인 크로넛과 와플 모양으로 구운 크러플이 찬사를 받았다. 납작하게 눌러버린 크룽지는 해외에서 ‘K디저트’로 분류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이브리드 디저트의 가장 큰 강점은 신메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맛있다는 걸 아는 맛을 조합해 ‘당연히 맛있을 것’이라는 인식을 빠르게 심어주는 것이다. 크루키에는 낯선 요소가 없다. 크루아상도 아는 맛, 쿠키도 알고 있는 맛있는 맛, 심지어 크루아상의 가운데와 위에 달콤한 반죽을 끼워 굽는 기법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원래 프랑스에서는 만든 지 하루가 지난 크루아상에 프랑지판이라는 아몬드 반죽을 끼우고 얹어서 구워내 아몬드 크루아상으로 판매한다. 재활용 같지만 완전히 새로워진 메뉴다. 크루키는 동일한 기법을 사용하되 프랑지판 대신 초콜릿칩 쿠키 반죽을 넣을 뿐이다. 하지만 새로운 도파민 자극에 목마른 사람의 상상력을 즉각적으로 자극한다. 고소한 버터향 페이스트리에 달콤한 쿠키 반죽? 그야 맛있겠지! 쉽게 손이 가고 따라 하기도 쉽다.

변형을 거치면서 크루아상의 원형을 잃는다는 비판도 있지만, 각종 하이브리드 크루아상의 인기가 높아지면 원조 크루아상의 위상도 함께 높아진다. 하이브리드 K디저트도 예외가 아니다. 약과가 쿠키 토핑이 되고 호두과자로 앙버터를 만들고, 꽈배기에 각종 크림을 올려 오색찬란하게 진열한다. 원형을 보존하면서 그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것도 전통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연주 푸드 에디터·요리책 전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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