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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웃음과 슬픔이 뒤섞인 삶을 산 '위대한 광대'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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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세기의 천재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 출생

뉴스1

찰리 채플린(출처: Film Fun(https://archive.org/details/filmfunjuly1915316lesl) with UploadWizard, 작자 미상. 삽화(1915),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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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89년 4월 16일,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영화 예술가 찰리 채플린이 출생했다. 배우, 코미디언, 영화감독, 음악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천재성을 드러냈던 인물이다.

채플린은 영국 런던에서 뮤직홀 배우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두 차례나 보육원에 보내지는 등 가난과 역경 속에서 자란 채플린은 5살 때 처음 무대에 섰고, 10살 때에는 극단에 들어가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1912년, 23살이었던 채플린은 미국 할리우드로 건너간다. 무성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던 그는 1914년 '트램프'(The Tramp, 방랑자)라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짧은 콧수염에 중절모를 쓰고 꽉 끼는 상의와 헐렁한 바지에 긴 구두를 신고 뒤뚱거리는 이 캐릭터는 '베니스의 어린이 자동차 경주'(1914)에 처음 등장했다.

좌충우돌 슬랩스틱을 선보이는 이 우스운 캐릭터에 사람들은 묘한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그는 이 캐릭터로 '비에 흠뻑 젖어'(1914)를 시작으로 자신이 직접 감독하고 제작하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황금광 시대'(1925)에서는 배가 고파 구두를 요리해 먹는 기상천외한 장면으로 많은 관객의 웃음과 비애를 동시에 샀다. 그는 유성영화로의 시대 변화 속에서도 '시티 라이트'(1931), 모던 타임스(1936), 위대한 독재자(1940) 등 전설적인 작품들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사회 풍자를 선보였다.

사회 비판적인 그의 영화에 일부는 불편을 느끼기도 했다. 1952년 '라임라이트'(1952) 시사회를 위해 영국 런던에 가 있던 사이 미국 법무부는 그를 공산주의 옹호자라며 미국 재입국을 불허했다. 20년 후 1972년 그는 미국 땅을 다시 밟았다.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는 1977년 12월 25일 스위스에서 88세로 사망했지만, 그의 영화들은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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