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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왜 ‘가만히 있으라’ 했는지 엄마는 10년 지나도 답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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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18…2019…2024…‘엄마의 10년 세월’



한겨레

‘한겨레’는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8반 안주현 학생의 어머니 김정해씨와 함께해왔다. 사진 왼쪽부터 2016년 4월23일 유가족들과 함께 해경이 나눠준 때 묻은 구명조끼를 입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 앞바다를 찾은 김씨, 2018년 4월16일 정부합동영결식을 마친 뒤 경기도 안산 합동분향소에 있던 아들의 위패와 영정을 집으로 옮긴 김씨, 2019년 2월12일 단원고에서 열린 명예졸업식에서 졸업장과 졸업앨범을 받아든 김씨. 맨 오른쪽은 지난 3월21일 10년 만에 사고 해역이 내려다보이는 동거차도를 찾은 김씨.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내년도 후년도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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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주기까지는 그냥 ‘한 주기구나’ 싶었죠. 올해는 10주기 전국시민행진을 했고, 10월엔 안산 생명안전공원 착공식도 합니다. 강산도 변할 만큼 세월이 흘렀는데, 10주기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건설을 이루는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죠.”



지난달 19일 전남 진도 세월호 팽목기억관. 안산 단원고 2학년 8반 안주현군의 어머니 김정해(54)씨가 입을 뗐다.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회원들은 매주 월~수요일 세월호 팽목기억관에서 방문객들을 맞아 차를 대접하고 대화를 나눈다.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인 김씨는 지난달 18~20일 팽목기억관을 지켰는데, 한겨레는 경기도 안산에서부터 전남 목포신항, 이곳 진도 팽목항, 동거차도까지 엿새 동안 김씨와 동행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남겨진 이의 슬픔은 여전히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었지만, 꿋꿋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 또한 아들 잃은 엄마의 몫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겨레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2학년 8반 고 안주현 학생의 어머니 김정해씨가 지난달 21일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의 큰 산봉우리인 보퉁굴산 정상에서 세월호 침몰 지점 해역을 바라보고 있다. 동거차도는 세월호 침몰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1km 남짓이다. 김봉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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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등학교 2학년 8반 안주현 학생 어머니 김정해씨가 지난달 12일 경기 안산 4·16 기억교실의 2층에 있는 2학년 8반 교실을 바라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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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좀 어떤가요?



“트라우마로 약도 먹고, 치료를 계속 받고 있습니다. 2014년 7월 안산에서 국회까지 도보행진, 올해 2월 전국시민행진 등 10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오다 보니, 몸이 많이 망가졌어요. 허리고 다리고 안 아픈 데가 없죠. 세월호 참사 10주기 전국 시민행진 4일째 광주에 도착했을 때 숙소 이층침대 아래 칸에서 자게 됐어요. 폐쇄된 공간도 아닌데, 갑자기 너무 힘들더라고요. 우리 주현이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힘들고… 2017년 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치료 중이에요.”



―10년이 지났어도, 그날의 기억은 생생할 것 같아요.



“생일(3월28일)이 지나고부터인가 주현이가 계속 수학여행 얘기를 했어요. 선생님이 장기자랑 때 기타 연주를 해달라고 하셨다면서요. 이모가 사준 기타 둘러메고 수학여행 가서 친구들 앞에서 연주할 생각에 부풀어 있었죠. 당일 아침엔 저는 김밥을 싸고, 아빠가 10만원을 챙겨줬어요. 맛있는 거 사 먹고 기념품도 사라고 좀 두둑하게 챙겨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신발주머니를 못 챙겼는지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어요. 다시 나가는데, 제가 유독 큰 목소리로 불렀던 기억이 나요. 집에서 나와 아파트가 떠나갈 정도로, ‘주현아 잘 갔다 와, 주현아 잘 갔다 와~’ 그게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한겨레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등학교 2학년 8반 안주현 학생이 생전에 썼던 물건이 10년이 지나 찾은 지금도 경기 안산의 자택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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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휴대전화 배경화면은 주현이의 기타 치는 사진이다. 독학으로 기타를 배운 주현이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좋아했다. 아빠를 닮아 손재주가 좋은 주현이는 기타는 물론 손으로 하는 일은 뭣이든 잘했다. 프라모델 조립도 그중 하나였다. 주현이 책상 위엔 그렇게 조립한 장난감이 아직 올려져 있다고 한다. 수학여행 가는 아들에게 용돈 10만원을 쥐여준 아빠는 주말이면 아무리 피곤해도 아들들과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공원에 가서 스케이트 타는 법을 알려주고 공놀이를 함께 했다. 함께 낚시 가서 김치찌개를 끓여주기도 했다. 그런 아빠는 주현이가 있는 평택 서호추모공원만 가면 눈물을 흘린다. 부인에게는 평생 우는 모습 한번 보이지 않던 사람이.



―아들과 마지막 통화는 했나요?



“사고 소식을 듣고 제가 전화를 많이 했는데, 연결이 안 됐어요. 마지막 목소리라도 들었더라면…. 지금은 주현이 목소리조차 잊어버린 것 같아요.”



―당시 사고 소식은 어떻게 접했나요?



“오전 9시30분쯤 직장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티브이에서 배가 침몰하는 장면이 나오고 자막에 ‘단원고’가 나오는 거예요. 주현 아빠한테 전화하고 학교로 달려갔죠. 10시 정도 도착했는데, 모두가 우왕좌왕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어요. 오후에 버스가 마련돼 진도로 갔죠. ‘대한민국을 믿는다. 이렇게 과학기술이 발전했는데 우리 애들 못 구해주랴’ 그렇게 되새기며 내려간 거예요. 처음엔 진도체육관으로 갔다가 저녁 8시께 팽목항으로 갔죠. 둘째 아이가 전화로 ‘형아 괜찮냐’고 많이 물으면서도 ‘형아 수영 잘하니까 분명히 살아 나올 거야’라고 위로했죠. (아무리 기다려도 구출 소식은 없고) 이튿날 오전 침몰 현장으로 갔죠. 그때만 해도 선수 부분이 물 위에 조금 남아 있었어요. 그 안에 아이들이 있으리라…. 그때만 해도 ‘에어포켓에 의지해서 살 수 있다’ ‘골든타임이 72시간이다’ 이런 얘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주현군은 며칠 만에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4월29일 오후 주현 아빠한테 연락이 왔대요. 지금 이곳에 신원확인소가 있었어요. 주현 아빠가 저는 못 보게 하더라고요. 그런데 안 되겠더라고요. 꼭 보고 싶었죠. (아이를 보자마자) 바로 쓰러졌어요. 지금 기억나는 건, 그냥 살아 있는 아이 같았어요. 누워서 잠자는 느낌. 그냥 잠든 모습…. 동생은 장례식장에서 형 영정을 보고 쓰러졌어요.”



―그 뒤 주현이 동생은 어떻게 지내나요?



“4·16이 잊히지 않게 아이들을 교육하는 역사 선생님이 되겠다고 해서, 역사교육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당시 아이가 슬픔에 잠겨서 학교도 안 가고 종일 소파에 누워 꼼짝 안 했었죠. 엄마 아빠랑 이야기도 안 했어요. 대학 들어가서 점점 나아졌죠. 이젠 ‘이거 옛날에 형이랑 같이 했어’ 이런 말도 담담하게 하고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돼 형을 보러 추모공원에 가본 적은 없지만, 내면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 부모로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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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전남 진도군 백동 무궁화 동산에 있는 세월호 기억의 숲에 고 김관홍 잠수사 동상. 김 잠수사는 참사 희생자 수습 작업을 한 뒤 지난 2016년 숨졌다. 이 숲은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300여 그루 은행나무를 심어 조성됐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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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2학년 8반 안주현군의 어머니 김정해씨가 지난달 20일 전남 진도군 세월호 기억의 숲에 있는 기억의 벽에서 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읽고 있다. 이 숲은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300여 그루 은행나무를 심어 조성됐다.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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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팽목기억관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백동 무궁화동산 ‘세월호 기억의 숲’ 기억의 벽에는 김씨가 주현이에게 남긴 편지가 새겨져 있다. ‘영원히 사랑받을 주현이와 친구들아, 멋진 꿈도 이루고, 바람에 너희들 목소리를 들려주렴.’ 주현이 얘기에 연신 눈물을 닦으며 마른세수를 하던 김씨는 생각에 잠긴 듯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가만히 기댔다. 잠시 뒤 김씨가 울음이 목 끝에 걸린 목소리로 말을 천천히 이어갔다.



―그동안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어떤 것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지?



“구할 수 있었는데 왜 구조를 안 했는지죠. 사고는 날 수 있지만, 구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 한마디로 아이들을 수장시킨 이유가 제일 알고 싶어요. 이 나라에서 이런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요.”



―일부는 유족들에게 ‘그만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잖아요.



“생명보다 돈이 중요한가요? 어떻게 (유가족들이) 10억을 받는다느니 어쩌니, 그런 기사가 날 수 있는지…. 그런 기사 때문에 일부 국민이 우리를 돈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어요. 시체팔이 같은 얘기도 그래서 나왔던 거고요. 이런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경험해 보니 당해보지 않는 이상 그 심정을 모르더라고요. 그런 참사가 있어선 안 되겠지만, 재난 참사가 발생했을 때 모든 것을 돈으로 생각하는 것만은 안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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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2학년 8반 고 안주현 학생의 어머니 김정해씨가 참사 10주기를 한 달 정도 앞둔 지난달 18일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앞에 서있다. 사진은 김씨와 세월호 선체를 다중노출 촬영했다.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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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2학년 8반 고 안주현 학생의 어머니 김정해씨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한 달 정도 앞둔 지난달 18일 전남 목포신항에서 녹슬어 선체 아래로 떨어진 세월호의 철조각들을 바라보고 있다.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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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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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이 그렇게 간 뒤 직장을 관뒀던 김씨는 먹고살기 위해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보상금에 관해 묻는 동료들한테 도저히 적응이 안 돼 다시 관둬야 했다. 이후 가족협의회 일만 하고 있다. 주현 아빠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김씨는 저녁이면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 나누는 소소한 일상이 행복하다 말한다.



―반대로 격려의 마음이 담긴 이야기를 듣기도 하셨겠지요?



“광화문 촛불집회 때 전국에서 가족 단위로 많이 와주셨어요. 부모들이 형, 누나들한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몰랐던 아이들을 데려와서 왜 촛불을 켜는지 알려줬죠. 그때 국민이 함께해주고 계신다고 느꼈죠. 그런 따뜻함으로 견뎠어요.”



―세월호 이후로도 이태원 참사 등 사회적 재난은 이어졌습니다.



“(이태원 참사 소식에) 너무 놀랐어요. 이런 참사가 또 발생하다니…. 경찰들이 충분히 상황을 정리해서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 아이들 또래가 많이 희생돼 마음이 아팠지요. 저희가 이태원 참사 가족들이랑 함께하려는 이유 중 하나예요.”



―지난해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 때 ‘천개의 바람이 되어’ 합창과 유가족 발언 중에 계속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노랫말이 정말 너무 힘들게 다가와요. 왜 바람이 돼 제 옆에 있어야만 하는지,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요. 주현이와 249명의 친구가, 밝고 천진한 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어서 희생돼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주현이가 살아 있다면, 지금 어떤 청년이 돼 있을까요?



“예전에 낚시 가서 아빠한테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입학해 현대자동차 입사해서 에쿠스보다 좋은 차 만들어서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대요. 그 약속을 지켰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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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등학교 2학년 8반 안주현 학생 어머니 김정해씨가 지난달 19일 전남 진도 세월호 팽목기억관에서 꿈에 나온 주현이 모습을 떠올리다 눈물 흘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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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이 생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김씨와 남편은 평택 서호추모공원을 찾았다. 주현이가 좋아하던 갈비, 잡채, 호박전, 과일, 케이크, 그리고 이제 어른이니까 술도 한잔하라고 맥주까지 준비해 갔다.



―주현이를 꿈속에서 만난 적은 있나요?



“가끔 소파에서 잠이 들면 주현이가 와서 쳐다보는 걸 느껴요. 무슨 말을 하면 엄마가 울까 봐 그러는지, 말없이 엄마를 쳐다보기만 하더라고요. 꿈에서는 천진난만한 어린 주현이가 나와요. 검도, 태권도 하는 모습으로 많이 와줬어요.”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경제적으로 힘들어 해주지 못한 게 많던 때가 있었어요. 나중에 다시 태어날 때는 엄마 같은 사람 말고, 하고 싶은 음악, 하고 싶은 일 잘 지원해줄 수 있는 부모 만나라고 얘기해주곤 했죠. 그것밖에 제가 해줄 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많이 미안해요. 꿈 많고 하고 싶은 것 많은 아이한테, 공부하라고만 한 것도 너무 미안해요. 살아보니 그게 전부가 아닌데. 섬섬옥수 같았던 주현이 손을 한 번만 다시 만져봤으면 좋겠어요. 다시는 이런 세상에 태어나지 않기를….”



김씨는 지킴이 당직을 마친 뒤 21일 참사 현장에서 가까운 동거차도로 향했다. 여객선 안 텔레비전에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바닷길’이라는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의 안전홍보 영상이 흘러나왔고, 김씨는 조용히 갑판으로 나와 바다만을 바라봤다. 동거차도에 도착해서는 세월호 사고 지점이 가장 잘 보이는 보퉁굴산 정상에 올라 김씨가 외쳤다. “주현아 엄마 왔어. 얘들아 엄마 왔어. 얘들아 엄마 왔어. 다 나와라. 얘들아 저 지평선 끝까지 가면 너희들 만날 수 있니?” 메아리 없는 외침이 허공에 흩어졌다. 바닷바람에 김씨가 목에 걸고 올라온 주현이 학생증이 자꾸 뒤집혔다. “주현이가 아직은 이곳이 보기 싫은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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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2학년 8반 고 안주현 학생의 어머니 김정해씨가 21일 오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의 큰 산봉우리인 보퉁굴산 정상을 오르고 있다.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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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이 지난달 21일 오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의 큰 산봉우리인 보퉁굴산 등산로에 떨어져 있다.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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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2학년 8반 고 안주현 학생의 어머니 김정해씨가 21일 오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의 큰 산봉우리인 보퉁굴산 정상에서 세월호 침몰 지점을 향해 “얘들아 저 수평선 끝까지 가면 너희들 만날 수 있니?” 라고 외치고 있다.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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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의 큰 산봉우리인 보퉁굴산 정상에서 바라본 세월호 침몰 지점에 부표가 떠 있다.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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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목포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김혜윤, 김영원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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