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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개사과’라도 다행이야…2090년대엔 그마저 사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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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과와 개.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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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올봄 사과값이 너무 오른 이유를 밝혀달라는 거였어요. 심지어 사과를 입도선매하여 시장 가격에 개입하는 불순한 세력도 있다며 조사해달라고 했죠. 성이 난 제보자가 말했어요. “심지어 사과를 개한테 간식으로 준다고 합니다. 이렇게 과일값이 비싼데!”





“사과값 폭등은 일부 도매상의 사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항상 있지 않았습니까?”



왓슨 요원의 물음에 홈스 반장이 고개를 갸웃했지요.



“그것만이라고 하기엔 이번에는 좀 심각하지 않나? 작년보다 3~4배가 뛰었다고 하니까 말일세.”





‘개사과’로 사과값 안정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으로 향했어요.



후드티를 입은 사람이 5톤짜리 화물트럭에 사과를 싣고 있었어요. 트럭 20대가 사과를 실으려고 차례로 기다리고 있었고요. 화물트럭 앞에는 ‘기후스타트업 개사과’라고 쓰여 있었죠. 왓슨 요원이 달려가 물었어요.



“아니, 이렇게 많은 사과를 갖고 어디로 가지고 가시죠?”



“아이고, 사재기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우리는 기후스타트업입니다. 전국의 못난이 사과를 모으고 있어요. 재배 과정이나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못난이 사과를 모아서,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소품으로 판매합니다. 개사과 아시죠? 이 사과를 개한테 주고 함께 사진 찍어서 보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표현할 수 있답니다.”



“오히려 기분 나쁠 거 같은데…”



“세상 돌아가는 거 모르시네. 개사과가 얼마나 힙한데. 그거 잘해서 대통령도 된 사람 있잖…”



후드티는 실언했다고 생각했는지, 오른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못난이사과는 ‘비정형과’, ‘흠집사과’라고도 불러요. 재배·운반 중에 갈라지고 찍힌 사과나 못생긴 사과 그리고 비바람에 떨어진 낙과도 수집해요. 문제는 예전에는 이런 것도 다 먹었는데, 요즈음은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면서 버려지는 경우도 꽤 있죠.”



세계 환경단체인 ‘세계자연기금’(WWF)은 영국 식품유통기업 테스코와 함께 펴낸 보고서에서 매년 25억톤의 식품이 먹지 않은 채 버려지고 있다고 밝혔어요. 재배된 농작물 중 약 40%가 먹지 않고 버려진다는 충격적인 수치도 있었죠. 후드티가 신나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개사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거예요. 외국에서는 이 사업이 얼마나 힙한 줄 아세요? 미국의 임퍼펙트푸드는 201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못생긴 농산물 배달 서비스를 시작해서 지금은 이 분야 세계 최대 업체의 하나로 성장했죠. 미스핏츠마켓도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최근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어요. 우리는 거기에다가 추가로 사과의 마음까지 담아 사과를…”



제보자가 들은 풍문은 오해처럼 보였습니다. 기후스타트업 개사과는 어쨌든 사과값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보는 게 맞았죠.



물론 복잡한 사과 유통 단계가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곤 해요. 사과 생산량의 40%가량은 사과가 재배되는 산지의 공판장을 거쳐 서울 가락시장 같은 곳으로 가요. 그곳에서 다시 중도매상의 경매를 거쳐 대형마트나 도소매시장으로 가는 식으로 모두 3~4단계의 절차를 거치죠. 하지만 유통 단계별로 마진이 붙는 데다 가격이 공급량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구조여서 사과값 폭등이 일어난다고 보는 이들도 있어요.



물론 기후변화도 함께 거론되는 원인이죠. 한반도가 갈수록 따뜻해지고 있어 사과나무 주산지도 변하고 있습니다. 마침 한반도에 사는 동식물들이 모여 ‘기후변화에 대비한 동식물 이주 대책회의’를 경북 안동에서 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죠. 홈스 반장이 말했습니다.



“빨리 가봅시다!”





명태 없는 동식물 이주 대책회의





회의장에는 각양각색의 동식물이 모여 있었어요. 동해에서 삶터를 북쪽으로 옮긴 오징어, 남해에서 동·서해로 삶터를 확장한 고등어 그리고 한라산에서 산꼭대기로 올라가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주목 등이 참석했어요. 사과를 대표로는 부사사과가 참석하기로 했는데, 탄저병이 걸려서 안동 농민이 대신 왔다고 하는군요.



“명태는 20년 가까이 안 보이는구려. 각자 자기 상황을 보고해 보십시다.”



대책회의 의장인 밍크고래가 회의 시작을 선포하자, 오징어가 10개 다리로 총총 뛰어서 단상에 올랐어요.



“우리 오징어는 가을과 겨울 각각 대한해협과 동중국해에서 알을 낳은 뒤, 봄이 되면 따뜻한 해류를 타고 한반도로 올라옵니다. 그런데, 2023년 봄의 동해 수온이 관측을 시작한 이래 42년 만에 가장 높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난류를 타고 더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했죠. 오징어를 잡으러 온 어부들이 한숨을 쉰다고 하던군요. 많이 잡힐 리 있나요. 북쪽으로 이사한 오징어가 다수인데.”



이번에는 사과를 대리해 온 안동 농민이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에덴동산의 하와부터 백설공주, 빌헬름텔, 스피노자와 스티브 잡스까지 인간들의 노력으로 사과는 지금까지 번성을 누려왔죠. 그런데 최근에 큰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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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공덕시장 인근 한 과일가게에서 손님들이 사과를 고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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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농민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사과는 서늘한 곳에서 잘 자랍니다. 너무 덥고 습하면 탄저병에 걸려요. 우리 사과의 경우 다양한 품종이 있습니다만, 가장 맛 좋은 부사로 말할 거 같으면, 분지 지형에서 나는 대구사과가 제일이었지요. 그런데 지금 사과 주산지는 경북 북부로 올라갔습니다. 전국 5대 사과 주산지가 어딘지 아십니까? 4곳은 경북 안동·청송·영주·의성으로 경북 중·북부이고요, 남쪽에선 유일하게 덕유산과 가야산이 있어서 서늘한 경남 거창입니다.”



참석자들의 보고가 끝나자, 밍크고래 의장이 말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모이시라 한 이유는 앞으로 여러분이 살 곳을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과일 여러분에게 앞으로 이사 가야 할 곳을 알려드릴 겁니다.”



두툼한 보고서를 쥐고 단상에 오른 과학자가 말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과일나무에는 생육에 필요한 적정한 온도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과와 배는 섭씨 7도 이하에서 1200~1500시간 경과해야 정상적인 재배가 가능합니다. 저희는 SSP5-8.5 시나리오에서 6대 과일 재배지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 온실가스 농도와 기후가 바뀝니다. 그래서 유엔 산하 과학기구인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은 다양한 상황에 따라 시나리오를 만들었어요.



SSP1-2.6 시나리오는 가장 바람직한 상황, 그러니까 재생에너지 기술 발달로 화석연료 사용이 최소화되고 친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미래입니다. 반면에 SSP5-8.5 시나리오는 산업 기술의 빠른 발전에 중심을 두어 화석연료 사용이 많고 도시 위주의 무분별한 개발이 확대되는 미래입니다. 즉, 우리가 현재의 태도를 전혀 바꾸지 않는 경우죠.





2090년대, 사과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2090년대에는 국내에서 고품질 사과 재배 가능지가 없어집니다. 사과 여러분은 이 땅을 떠나야죠. 배 여러분도 이삿짐을 꾸리십시오. 2030년대까지는 재배 가능지가 좀 늘다가 2050년대부터 줄어들어 2090년대는 여러분이 살 곳이 거의 없어집니다. 반면, 단감에게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현재 단감의 재배 가능지는 제주도와 남해안 지역으로 전 국토의 9%밖에 안 되는데, 2090년대에는 소백산맥과 강원 영서 지역을 빼고는 전국에서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과학자들의 말을 듣는 과일들의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배는 고개를 떨구었고, 단감은 활짝 웃었지요.



*4월22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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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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