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의 이중구조와 맞닿아 지역·대중적인 조직 기반, 두 축이 모두 흔들려
내부 분열과 차기 리더 부재 등도 한몫…“시대 맞는 진보정치로 새출발해야”
김준우 녹색정의당 상임선대위원장이 4월 10일 국회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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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8일 저녁 무렵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서 울먹울먹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렀다.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녹색정의당 유세대에서 눈물로 권영국 비례대표 후보 4번(변호사) 지지를 호소했다. 피켓을 든 당원 20여명, 취재기자 몇 명 외에 이 자리에 앉아 유세 연설을 듣는 이는 1명도 없었다. 지나가는 지역 주민은 총총걸음을 옮기기 바빴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온 장 전 의원의 호소는 공허한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사전투표 전날인 4월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김준우 녹색정의당 상임선대위원장과 심상정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절을 했다. 뒤에 걸린 현수막에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주간경향] 4월 10일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이 받아든 성적표는 1석도 확보하지 못한 ‘원외 정당’으로의 추락이다. 비례대표 투표에서 지지율 2.14%(약 60만 표)로 최소 기준(3%)에 미치지 못했다. 지역구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4선의 심상정 의원은 경기 고양갑에서 3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유권자, 녹색정의당 보다 조국혁신당 선택
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의 독점을 싫어하는 제3지대의 중도층은 녹색정의당이 아닌 조국혁신당에 눈을 돌렸다. 윤석열 정권심판으로 드러난 이번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은 ‘정권심판을 가장 정의롭게 할 수 있는 정당’임을 외쳤지만, 유권자들은 ‘윤석열 정권 조기 종식’을 외친 조국혁신당을 ‘심판 정당’으로 선택했다. 역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노동·진보 어젠다 실천 정당으로 정의당을 밀어준 것과 다른 양상이 돼버렸다.
선거 전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했고, 지난해 말에는 비상대책위 체제가 들어섰다. 갤럽 등 여론조사에서 원내 정당 최소 득표율인 3%(봉쇄조항)에 못 미치는 결과가 총선까지 이어졌다. 총선 전략을 놓고 갈등하더니 일부 당원들이 탈당해 새로운미래, 개혁신당, 사회민주당 등으로 흩어졌다. 정의당은 녹색당과 연합, 녹색정의당으로 선거에 나섰다. 김준우 위원장은 지난 3월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탈당한 분들은 실리적인 선택을 했다”며 진보정당의 원칙을 저버린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한 탈당 인사는 “정의당에는 지금 원칙만 선명하게 남았다”며 “하지만 시민들이 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만큼 효능감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의당이 맞닥뜨린 현실은 노동계의 이중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비정규직·플랫폼 노동이 만연했다. 정의당이 이들 노동자 사이에 대중적 정치 기반을 굳건히 마련하지 못하면서 2010년 이후 고전하는 한 원인이 됐다. 한 탈당 인사는 “진보가 진보하지 못했다”면서 “때문에 지역 기반과 대중적인 조직 기반, 두 축이 모두 흔들려 버렸다”고 말했다. 이번에 녹색정의당이 지역구에 출마시킨 후보는 17명이다. 지난 총선에는 정의당으로만 75명이 지역구에 출마했다. 4년 사이 당세의 약화를 뚜렷이 볼 수 있는 수치다. 그나마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 서구을에서만 2등을 했을 뿐 다른 후보는 모두 3위 밖으로 밀려났다. 이런 부진은 비례득표율 추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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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우 위원장은 4월 10일 출구조사 결과 발표 후 “21대 의정 활동이 국민 눈높이를 채우지 못한 것 같다. 저부터 반성하겠다”고 했다. 21대 국회 내내 정의당 의원들의 활동이 내부에서 논란이 됐다. 수년간 지역구에서 출마한 후보들을 제쳐두고 영입해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시킨 류호정 전 의원(비례)이 결국 탈당하면서 노동과 페미니즘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장은 “21대 국회 의정활동에 대한 실망감이 선거 고전의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어느 탈당 인사는 “노란봉투법 통과 노력처럼 노동이 내내 중심에 있었는데도 페미니즘만 했다는 오해를 샀다”고 말했다.
노회찬·심상정 이후 차기 리더가 두드러지지 못한 측면에서 정의당은 또 다른 위기를 겪었다. 장 소장은 “한국의 정당 선거는 유의미한 대선급 주자가 있어서 정치적 유효성을 인정받는데, 심상정 이후 세대교체에 실패한 것이 근본적 원인”이라고 언급했다. 심 의원은 낙선 후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의 은퇴를 언급했다. 장 소장은 “녹색정의당이 총선에서 ‘정권심판’이라는 동일한 주장을 했지만, 조국 대표 같은 대선주자급 인물을 통해 그 주장이 제대로 발화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선거개혁 실패가 총선 패배에 큰 몫
정의당이 끈질기게 국회에서 도입하려 노력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오히려 녹색정의당의 발목을 잡았다. 4년 전 21대 총선에서도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으로 준연동형제의 취지를 무력화시키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하승수 변호사(전 녹색당 대표)는 “2004년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처음으로 원내에 진입한 것은 1인 2표제 도입 덕분이었는데, 그 이후 준연동형제에서 선거제도 개혁이 멈춰버렸다”며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짚었다. 2019∼2020년 준연동형제로의 개혁이 불완전했고, 이후 21대 총선에서 불거진 위성정당 편법을 바로잡는 개혁을 진보정당과 시민단체가 힘있게 추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장 소장은 “선거개혁의 실패로 인해 정의당은 살고 싶어도 위성정당의 반칙을 선택할 수 없었다”며 “지금 같은 비현실적 제도로는 진보정당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각자 살길에 나선 진보·시민단체의 분열도 정의당의 참패와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다. 통합진보당 시절 함께하다 따로 살림을 차린 진보당은 정의당과의 연대를 거절하고 민주당과 연대했다. 그 결과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1석(윤종오 울산 북구 후보),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2석(정혜경·전종덕 후보) 등 모두 3석을 확보했다. 녹색정의당은 진보정치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며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역구 차원 단일화도 없었다. 이런 여러 갈래 길로 흩어진 선거 입장을 놓고 가장 큰 ‘우군’이었던 민주노총은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한 탈당 인사는 “한쪽은 원칙에 경도됐고, 다른 한쪽은 실리에 경도됐다”고 말했다. 하승수 변호사는 “진보정당 위기의 근본 원인은 각자 다른 판단과 선택을 한 것”이라며 “양당 구도로 수렴이 안 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진보적 소수정당이 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이런 점에서 비례대표제 개혁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것도 진보 세력의 분열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이제 녹색정의당은 원외로 밀려나면서 기로에 섰다. 장 소장은 “진보정당의 한 주기가 끝났다”면서 “정의당과 녹색당·노동당 그리고 민주노총 일부가 연합해 시대에 맞는 진보정치로 새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진짜 제3지대 진보적 소수정당으로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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