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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거노믹스와 신자유주의
케인스주의의 빛나는 시절은 1970년대부터 흔들렸다. 정부지출은 불황 타개에 잘 먹히지 않았고 승수는 오락가락했다. 한동안 얼뜨기 취급을 받았던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통화주의(monetarism)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대표적인 통화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한 시카고학파 통화주의자들은 두 측면에서 케인스주의를 공격했다. 첫째, 국가경제라는 자동차의 액셀과 브레이크는 정부지출이나 세금 같은 재정정책(fiscal policy)이 아니다. 둘째, 정부는 대개 형편없는 운전사다. 누가 운전석에 앉아야 하는지도 생각이 달랐다. 케인스주의자들은 의회가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통화주의자들은 중앙은행이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1984년 미국을 방문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갬프 데이비드에서 회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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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주의자들은 대공황을 예로 들어 통화주의의 무력함을 질타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1929년에서 33년 사이 통화량이 3분의 1 줄어든 것을 근거로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를 대공항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이 은행 문을 두드리는 순간, Fed는 시중은행에 돈 공급을 거부한 것이다. 이후 통화주의자들의 연구를 통해 정부지출의 승수는 거의 없거나 첫해에만 1.6 정도를 보인 뒤 꾸준히 감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프리드먼의 승리였다. 여기서부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시장에 맡기는 신자유주의가 시작됐다. 신자유주의자들이 한국에서는 상종하지 못할 종자들 취급을 받지만 이론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쉽게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통화주의의 부활을 이끈 프리드먼은 "통화량을 적절히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경기를 조절하자"고 주장하는 대신 "그냥 멍청하게 거기 서 있도록 해요"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경제학자들은 통화량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을만큼 금융정책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신 Fed를 로봇으로 갈아치우고 연 3%든 4%든 일정하게 액셀을 밟으라고 조언한다. 이런 규칙이 금융정책의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제가 주춤할 때는 유동성 공급으로 수요를 확대하고, 인플레이션을 맞아도 그 불길을 확산할 정도로 연료(통화량)가 공급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자신만만한 케인스식 적극 정책에 비하면 소박해 보인다. 레이건 이후 통화주의를 받아들인 대부분의 정부에서는 프리드먼식 '아무것도 안하기'보다는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통화량에 개입한다. 물론 이런 개입이 늘 효과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케인스주의 정부 개입이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지적한 통화주의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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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케인스주의와 통화주의 외에도 경제학에는 수많은 이론이 나왔다. 공공선택학파는 정치인과 관료가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제를 '정치적 비즈니스'로 삼기 때문에 케인스주의가 실패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가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제임스 뷰캐넌은 재정적자를 놓고 국회의원들이 오늘날의 시민을 기쁘게 하기 위해 미래 세대의 부를 강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래 어느 시점에선가 세금을 올려 국채와 그 이자를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스티글러는 규제가 기업간의 치열한 경쟁을 줄여주기 때문에 많은 기업이 더 많은 규제를 위해 로비한다는 '포획이론'을 내놨다.
반면 합리적기대이론을 들고나온 경제학자도 있다. 정보 전달이 예전보다 빨라지고 경제적 효과에 대한 지식이 비교할 수 없이 많아진 현대 세상에서는 정부의 정책이 현실에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철갑상어가 알을 너무 많이 낳을 경우 캐비어 가격은 즉각 떨어진다. 노동 수요가 감소하면 임금 역시 바로 떨어진다. 이들이 완성한 모형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케인스주의자들은 임금과 가격이 실시간으로 변할 수 없다는 점에서, 통화주의자들은 금융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맹랑한 젊은것들의 주장을 헛소리라고 일축한다. 여기에 시장 참가자들의 행동을 사회적, 심리적, 정치적 변수까지 고려해 분석하는 게임이론까지 등장하면서 경제학도뿐 아니라 도대체 내년 아파트값이 어찌 될지 정도만 고민하는 일반인들까지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이렇게 많은 천재가 이렇게 많은 학설을 남겼는데 왜 우리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하지도,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를 피하지도 못하는 것일까. 왜 누군가는 아파트값이 오른다고 예상하고, 누군가는 폭락한다고 경고할까. 왜 미국 정부는 금리를 내리지 않고,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망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그런데도 증시는 연일 강세를 이어나가는 것일까. 내일의 경제 상황을 예측하지도 못하고, 오늘의 경제 문제에 딱부러지는 처방조차 내놓지 못하는 경제학이 과연 필요한 구석이 있기는 할까. 확실한 것은 우리가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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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갈림길에서
케인스 덕분에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가 됐다. 프리드먼 덕분에 우리는 모두 통화주의자가 됐다. 혼란한 세상 덕분에 우리는 모두 절충주의자가 됐다. 일찍이 "외팔이 경제학자를 데려오라"고 절규했던 해리 트루먼은 행복한 편이다. 트루먼은 정책에 대한 조언을 구하면 "한편으로는(on the one hand)~, 다른 편으로는 (on the other hand)~"이라고 장단점을 설명하는 경제학자들에 신물이 났을 뿐이지만 액셀과 브레이크가 4개 달린 차를 운전해야 하는 현대의 대통령보다는 상황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현대 경제라는 자동차에는 케인스주의에 기반한 정부지출이라는 엑셀과 세금이라는 브레이크, 그리고 통화주의에 기반한 통화량 증가라는 엑셀과 통화량 감소라는 브레이크가 달려있다. 페달을 밟으면 6~24개월 후 결과가 나타나고, 그나마 제대로 동작할지 확신할 수도 없다. 대선과 총선에서 어떤 정책 하나만 도입하면 다 좋아질 것이라 목놓아 외치는 후보는 이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이거나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사기꾼일 것이다.
부크홀츠는 이 책에서 "경제학자들은 어느 것이 나쁘고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한꺼번에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해줄 뿐이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단지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설명해줄 뿐"이라고 밝혔다. 경제학은 정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합리적으로 사고할 이론적인 틀을 제공할 뿐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경제학 비 전공자, 경제가 돌아가는 논리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서평에서 "단 한권의 경제학 책을 읽으려 한다면, 이 책을 강력하게 권한다"고 극찬했다. 다시 한번 전적으로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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