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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한국 1등이 세계 1등?! 국내 직진출 나선 글로벌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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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실적이 공개됐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역대 최대 실적. 불경기로 인한 패션업계 불황에도 나 홀로 성장하며 매출 2조510억원, 영업이익 194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2.5%, 7.8% 오른 수치다. 하지만 업계에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을 것”이란 말이 나왔다. “패션업계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말도 돌았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최근 수년간 글로벌 수입 브랜드의 성장 효과를 톡톡히 봤다. ‘아미’ ‘메종키츠네’ ‘르메르’ ‘10꼬르소꼬모’ ‘비이커’ 등이 편집숍을 중심으로 신명품 트렌드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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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커’의 2024년 SS 컬렉션


이들 글로벌 브랜드의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약 30%. 약 7000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성장세에도 우려를 표한 이들은 “톰브라운의 직진출 선언을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물산이 국내 처음 들여와 12년간 전개해 온 ‘톰브라운’은 지난해 톰브라운코리아를 설립하고 국내 직진출을 선언했다. 패션업계의 한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치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국내에서 톰브라운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하며 수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대형 패션기업의 경우 전개하던 수입 브랜드들의 직진출 가능성이 높아 현재의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30여개 글로벌브랜드 국내 직진출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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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명품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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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명품시장의 규모(면세, 중고거래 제외)는 21조9909억원으로 전년(19조6767억원) 대비 11.7% 증가했다. 세계 7위 규모다. 국내 시장의 가능성이 실적으로 증명되며 실제로 최근 글로벌 브랜드들의 국내 직진출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일례로 한섬은 지난해 6월 ‘CK캘빈클라인’의 모회사 PVH와 10년 만에 계약을 종료했고, LF는 연간 매출이 200억원에 달하던 ‘버켄스탁’과 독점 계약을 종료했다. PVH와 버켄스탁은 이후 모두 국내 직진출 소식을 알렸다. 제동물산이 35년간 전개해온 이탈리아 명품 ‘미쏘니’, 신원이 수입하던 ‘브리오니’, 듀오가 독점 유통해온 ‘에트로’ 등 최근 2~3년간 국내 직진출을 선언한 글로벌 브랜드만 30여 개에 이른다. 직진출의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 개선. 글로벌 브랜드가 국내 패션·유통기업과 독점 계약해 거둔 실적은 국내 기업의 매출과 이익에 편입되지만 현지 법인을 세우고 매장 운영 등 단순 리테일(소매) 매니지먼트만 맡기면 글로벌 본사 매출로 합산된다. 톰브라운도 삼성물산과 독점계약을 종료한 뒤 리테일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다. 사실 글로벌 브랜드의 직진출로 패션기업의 성장세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해 ‘셀린느’가 직진출을 선언한 뒤 이 브랜드를 독점 전개하던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실적은 눈에 띄게 줄었다. 매출은 1조3543억원으로 전년 대비 12.8% 줄었고, 영업이익은 487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57.7%나 하락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수입 브랜드 매출 비중은 6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명품 플랫폼의 한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의 국내 직진출은 유한회사 설립과 임차료,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있지만 유통사를 거치지 않아 마진율을 높일 수 있다”며 “경기 둔화 등 글로벌 명품시장이 주춤한 상황에 상대적으로 실적이 괜찮은 국내 시장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패션 관련 홍보사의 한 임원은 “글로벌 브랜드를 수입해 온 패션기업 입장에선 직진출을 우려하기보다 근본적인 사업구조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자체 브랜드를 키워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른바 직진출 리스크가 현실화된 만큼 수익성 제고를 위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K트렌드 영향력 높다는 방증
반면 “글로벌 브랜드 입장에서 국내 시장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진 증거”란 반응도 나온다. K팝, K무비 등 K콘텐츠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며 K트렌드에 대한 영향력도 높아졌다는 의미다. 유통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8월 서울 도산대로에 슈프림의 플래그십스토어가 개장했을 때 아시아의 패션 크리에이터들이 한국을 부러워했던 경험이 생생하다”며 “그들의 질투 섞인 부러움이 SNS를 통해 전파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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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에 국내 첫 매장을 개점한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Supreme) 도산 앞에서 시민들이 매장에 입장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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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패션계의 샤넬이라 불리는 슈프림은 신규 매장 확대에 신중을 기하기로 유명한 브랜드. 영국과 프랑스, 일본에 이어 한국을 일곱 번째 직진출 국가로 선택하자 업계에선 “한국 시장의 강화된 입지를 증명하는 사례”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음악, 영화, 드라마, 스트리밍 등 K콘텐츠의 파급력이 확대되며 한국 시장 진출의 당위성이 높아졌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동남아시아 등 신규 시장과 북미, 유럽 등 기존 시장의 매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아이돌과 배우 등 스타를 브랜드의 글로벌 앰버서더(홍보대사)로 기용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현재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는 ‘샤넬’, 지수는 ‘크리스챤 디올’, 로제는 ‘생로랑’, 리사는 ‘셀린느’의 앰버서더다. 가수 겸 배우 아이유와 배우 이정재는 ‘구찌’, 뉴진스의 혜인은 ‘루이 비통’, 엔하이픈은 ‘프라다’, 에스파는 ‘쇼파드’의 앰버서더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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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글로벌 앰버서더 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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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글로벌 앰버서더 이정재


국내 브랜드도 해외 직진출, 글로벌 시장에 역수출도
글로벌 브랜드와 국내 유통사의 파트너십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상표권을 보유한 본사와 국내 독점 유통권을 보유한 패션기업이 서로 소통하며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방식이다. 우선 코오롱 FnC부문 CN사업부가 전개하는 ‘헤드’와 ‘이로’가 글로벌 본사와 진행 중인 협업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재론칭하며 오스트리아 본사와 협업에 나선 헤드는 현재 테니스와 스키 라인에 대한 수입 유통과 함께 국내에서 개발한 의류를 역수출하고 있다. 이미 중국 시장에 진출했고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시장에도 수출이 예정돼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론칭한 ‘이로 맨즈’는 스포츠 컬렉션 중 스키 라인을 CN사업부가 단독으로 기획해 프랑스, 독일, 스위스, 미국, 캐나다, 중국 등 전 세계 25개국에 수출했다. 프랑스의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는 올해부터 글로벌 브랜드로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 일본 등 주요 진출국과 전략적 협력에 나서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프랑스와 일본 각국의 시그니처 상품을 선보이고, 프랑스에서는 한국이 개발한 트레킹 슈즈를 수입해 판매하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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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시스템·시스템옴므 파리 패션위크 2024년 봄·여름(SS)시즌 단독 프레젠테이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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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국내 브랜드의 해외 직진출도 예고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패션전문기업 한섬은 오는 6월 프랑스 파리 마레지구에 ‘시스템·시스템옴므’의 글로벌 플래그십 스토어를 개장할 계획이다. 한섬이 해외 시장에 내셔널 브랜드의 단독 플래그십 스토어를 여는 건 창사이래 처음이다. 총 400㎡ 면적에 2층 규모로 147개 시스템·시스템옴므 매장 중 가장 크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이란 콘셉트로 의류와 잡화, 액세서리 등 글로벌 컬렉션 신제품들을 판매할 예정이다. 한섬은 먼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 배송 시스템을 구축한 후 북미와 남미, 중동 지역까지 글로벌 배송망을 구축해 전세계 패션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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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스포츠 차이나 상하이 플래그십 스토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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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브랜드 론칭 50주년을 맞은 국내 최초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는 중국에 이어 북미시장 진출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2006년 일찌감치 중국 시장에 직진출한 코오롱스포츠는 2017년 중국 안타그룹과 전략적 합작사를 설립했다. 현재 코오롱스포츠는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거점 도시의 백화점, 대형몰 등에 160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5월엔 상하이에 중국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개장하기도 했다.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김정훈 코오롱FnC 디지털마케팅실 상무는 “북미 시장은 카테고리가 세분화돼 톱티어 브랜드들이 다수 포진됐지만, 우리의 기술을 증명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시장이기도 하다”며 “경량텐트, 경량등산스틱, 경량백팩 등의 소재에 대한 R&D 투자를 통해 북미 환경에 맞는 의류부터 신발까지 확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코오롱스포츠는 북미 환경에 맞는 상품 관련 R&D를 확대하고 북미 시장에서 진행할 카테고리 선정과 아웃도어 헤리티지를 보여줄 수 있는 백패킹 분야 등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 코오롱FnC 측은 50년간 브랜드를 유지해온 만큼 연구개발 분야는 자신 있다는 반응이다. 코오롱스포츠의 대표 제품인 ‘안타티카’는 1988년엔 세종과학기지 연구진에게 납품한 피복을 상품화한 제품이다. 2021년엔 남극의 장보고과학기지 탐사 프로젝트 K-루트 사업에 참여했다. 영하 50℃의 추위에서도 연구원들이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제품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IT융합형 상품인 ‘라이프텍(LIFETECH)’, 세상에서 가장 질긴 신발끈으로 기네스 공식 인증을 받은 ‘헤라클레이스’, 모듈 방식을 접목한 스마트텐트 ‘프리돔’ 등도 인기 품목이다. 한경애 코오롱FnC 부사장은 “코오롱스포츠는 고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의 다양한 시간들을 지내온 저력으로 미래의 50년을 위한 출발점에 섰다”며 “끊임없는 혁신과 꾸준함으로 항상 고객을 감동시키는, 감탄하게 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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