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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키 작으면 더 유리”...이 말에 꽂혀 대학 접고 승부수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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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 경마 300승 김혜선 기수

경마는 남녀 성별 구분 없어
체력·근력 남성 유리하지만
밤낮 말과 함께 달리며 호흡
중하위권 말 우승마로 바꿔

고3때 경마 다큐보고 꽂혀
대학진학도 포기하고 도전


매일경제

김혜선 기수가 부산 렛츠런파크에서 경주마 ‘광속마’와 사진 촬영하고 있다. [사진 = 한국마사회]


경마는 여성이 진출하기 어려운 스포츠다. 기수는 성별 구분 없이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는데, 체력과 근력이 강한 남성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경마 기수 73명 중 여성은 5명뿐이다.

올해 데뷔 16년 차를 맞은 김혜선 기수(36)는 여성 기수는 물론 전체 기수 중에서도 정상급 활약을 펼치며 성별의 벽을 깨고 있다. 김 기수는 우수한 성적을 거둔 말과 기수만이 참가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대상경주에서 지난 2017년 여성 최초로 우승했다. 출산 후 7개월 만에 트랙에 복귀한 2021년에는 여성 최초 통산 300승을 달성했다. 신체적 한계를 넘어 ‘경마의 황제’에 도전 중인 김 기수를 매일경제가 인터뷰했다.

어릴 적부터 운동신경이 남달랐다는 김 기수의 꿈은 댄서였다. 학교 축제 등 기회만 있으면 무대에 올랐고, 연예 기획사 오디션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여성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는 150㎝의 신장은 번번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김 기수는 “댄서는 물론 운동선수를 꿈꾼적도 있었지만 여러 차례 키 때문에 좌절했다”며 “평소 동물에 관심이 많았기에 결국 생물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학업에 전념했다”고 말했다.

운명의 전환점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찾아왔다. 희망 대학 수시모집 합격이 확정된 후 우연히 접한 경마 다큐멘터리는 그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동물과 함께하는 스포츠라는 점, 게다가 키가 작으면 유리하다는 설명을 듣고는 ‘이거다’ 싶었어요. 합격이 확정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장 경마 기수에 도전했죠.”

같은 해 김 기수는 남녀 구분 없이 선발하는 경마교육원에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여성에게 불리한 구조였다. 경마계에선 보통 말의 능력 70%, 인간의 능력 30%로 승부가 결정된다고 본다. 김 기수는 “기수가 아무리 뛰어나도 좋은 말을 타지 못하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며 “좋은 말을 탈 기회는 여성보단 신체 조건이 좋은 남성 기수에게 늘 먼저 돌아갔다”고 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건 김 기수의 근성이었다. 남성을 능가하지 않고선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는 절박함으로 훈련에 매달렸다. 결국 수석으로 교육원을 졸업했지만 편견의 벽은 여전했다. 승률이 떨어지는 말들을 전전하며 저력을 키워나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엔 말과 함께 밤낮으로 달렸어요. 일찍 일어나 남들보다 먼저 훈련장에 나가고, 허락된 시간 끝까지 말과 호흡을 맞췄죠. 덕분에 어떤 말을 만나도 금세 능력치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됐어요.”

김 기수는 “트랙 위에서 줄(고삐) 하나로 말과 교감하며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게 기수의 역할”이라며 “스타트가 좋은 말, 막판 뒷심이 좋은 말 등 저마다 다른 말의 능력을 파악해 전략을 짜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김 기수와 함께 대회에 참가하며 주목받는 경주마 ‘글로벌히트’는 처음부터 주목받던 말은 아니었다. 김 기수는 “글로벌히트는 거칠게 다그치기보다는 섬세하게 달래줬을 때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다”며 “말의 잠재된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내 우승했을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중위권 이하라는 평가를 받던 글로벌히트와 함께 김기수는 지난해 2회, 올해 들어서만 2회의 대상경주 우승을 달성했다.

김 기수는 “이제야 여성 기수는 기량이 떨어진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제 실력대로 평가받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 같다”며 “글로벌히트와 함께 사고 없이 기수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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