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부정 평가가 20%p 차이 넘으면 인물 소용없어"
한동훈 내세웠지만 '범죄자 심판'에 치중
지지층 응집력 약했는데 더 깎아 먹는 행보만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윤석열 정권 심판.
4·10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이다. 유권자들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에 표를 몰아주며 불과 2년 전 뽑은 윤석열 대통령을 호되게 심판했다. 윤 대통령은 0.73%포인트 차로 아슬아슬하게 당선돼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태생적 한계를 무시하고 소통과 쇄신 대신 '마이웨이' 국정운영으로 지지층마저 등 돌리며 최악의 상황을 자초했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구원투수로 조기 등판시켜 '거야 심판론'으로 맞불을 놨지만 '정부 심판'의 거센 민심 앞에 백약이 무효였다.
21개월간 尹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 압도
10일 오후 11시 30분 기준 개표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은 300석 중 170석(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포함) 가량 얻어 안정적인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조국혁신당 예상 의석수(12~14석)를 합하면 180석을 넘어서는 숫자다. 반면 국민의힘과 비례정당인 국민의미래 예상 의석수는 110석 안팎에 그쳤다.
정권 심판 민심은 오랫동안 강렬했다. 한국갤럽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월별 통합 기준)에서 윤 대통령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를 앞선 건 취임 직후인 2022년 5, 6월 두 달이 전부다. 이후 2022년 7월부터 지난달까지 21개월간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6~36%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반면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최저 55%, 최고 65%에 달했다. 이 기간 부정 평가와 긍정 평가 간 격차는 2023년 1월(19%포인트)을 제외하고 매달 20%포인트를 넘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최근 본보 인터뷰에서 "대통령 긍·부정이 20%포인트 차이를 넘어서면 구도가 선거를 완전히 지배해 인물과 이슈가 힘을 쓸 수 없다"고 단언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및 정당 지지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은 정권 심판론으로 직결됐다. 지난달 26~28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49%로 '정부 지원론'(40%)을 오차범위(±3%포인트) 밖에서 크게 앞섰다. 이 같은 정부 견제 우위 구도는 지난해 4월부터 일관되게 유지됐다.
정권 심판 작동 이례적... '자성' 대신 '마이웨이' 고집
대통령 임기 중반 이후 치르는 선거에서 야권은 늘 정권 심판 프레임을 내세웠다. 하지만 통한 경우는 드물었다. 2000년 이후 총선에서 정권 심판론이 작동한 건 2016년 선거가 유일하다. 심지어 2012년에는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25%에 불과했지만, 여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차별화를 꾀하면서 과반 의석(152석)을 차지했다. 이번 총선처럼 정권 심판론이 여당 참패로 직결된 건 이례적이다.
심판 여론이 조성되면 정부·여당은 겸허한 태도를 보이며 용서를 구하기 마련이다. 윤석열 정부도 민심을 다시 얻을 기회가 없지 않았다. 한국갤럽 3월 4주 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 부정 평가 이유는 △경제·민생·물가 23% △독단적·일방적 9% △의대 정원 확대 8% △소통 미흡 7% △전반적으로 잘못한다 4% 등이다. 정부의 주요 정책, 민생·경제뿐 아니라 윤 대통령의 태도에 유권자들이 실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소통에 인색했고, 정책 노선을 바꾸지도 않았다. 또한 여당은 '쓴소리'를 하지도, 미흡한 점을 보완하지도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경기 부천시 소사구 부천세종병원을 방문해 의료진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사이 지지층은 떨어져 나갔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정 갈등의 의사들, 채 상병 사망사건의 해병대 전우회 등은 모두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인데 이탈했다"며 "윤 대통령은 사회통합은 물론, 선거공학 측면에서 표 결집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선 승리는 탄핵 이후 이탈했던 보수 표심을 윤 대통령이 결집하는 동시에 2030 남성 등이 연대해서 가능했다"면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의 갈등으로 2030세대를 흡수할 수 있는 요인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한동훈 카드, 소용없었다
국민의힘은 총선을 4개월 앞두고 한 위원장을 내세워 반전을 꾀했다. 한 위원장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 등에 있어 윤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내며 일정 부분 차별화를 시도하는 듯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월 23일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특화시장에서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한 위원장은 '90도 인사'로 갈등을 봉합했지만 힘의 우열을 절감했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윤석열 당'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친윤석열(친윤)계 의원들 상당수가 한 위원장이 도장을 찍은 공천장을 받았다.
이후 행보도 실망스러웠다. 정부 실정에 대한 자성과 사과 대신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겨냥한 '범죄자 심판' 전략에 치중했다. 같은 검찰 출신인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겹쳐 보이는 자충수였다. 여기에 선거 직전 윤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도피 논란,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발언 등이 알려지며 정권 심판론에 다시 불을 붙였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한국갤럽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