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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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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성형이 도수치료 둔갑 …'진단서 위조' 보험사기만 한해 2천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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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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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발목 통증으로 동네의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발목 염좌로 도수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하자 병원에선 실손보험 가입 유무를 물었다. 치료 중 성형시술을 시행하면 도수치료 비용으로 영수증 발급이 가능하다는 꼼수를 안내했다. 도수치료는 200만원, 코수술에 300만원의 비용이 발생했고, 이 병원은 모든 금액을 도수치료로 처리해 보험금을 타냈다.

B의원을 개원한 박 모 의사는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눈밑 지방 제거 성형시술을 시행했다. 이 의사는 환자들에게 '옆구리 및 요추부 통증'을 진단하고, 도수치료를 시행한 것처럼 진료차트를 꾸며 진료비계산서를 발급했다. 환자 69명이 보험사 12곳에서 받은 보험금은 1억7248만원에 달했다.

실손보험을 겨냥한 일부 병·의원의 과잉 진료와 보험 계약자들의 '의료 쇼핑' 행태, 보험사기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1조1164억원, 적발 인원은 10만9522명으로 또다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건강보험 수가가 지급되지 않는 '비급여진료' 가격을 의사들이 제멋대로 다루면서 실손보험이 개원가 의사들의 소득 보전 창구로 전락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대환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비급여 항목이 너무 광범위하게 많다"며 "대학병원급 교수들이 성형외과나 정형외과 같은 개원가로 유행처럼 이동하는 일도 비급여 항목의 관리 부실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대로 처치하고 마음대로 진료 가격을 산정하는 것은 한국의 실손보험 체계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며 "일본처럼 비급여를 없애고 정부가 다 심사를 하든지, 아니면 다른 주요국처럼 보험사와 의료기관이 같이 심사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유형 중 '진단서 위·변조와 입원·수술비 과다 청구'가 18.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전체 보험사기 적발 금액 1조1164억원 중 2031억원에 해당한다. 병원의 치료비 과장 청구 71억원과 허위 수술 23억원 등을 더하면 보험사기에 병·의원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20% 전후로 추정된다. 실제 2021년 1157명, 2022년 1673명, 2023년 1169명 등 매년 1000명 이상의 병원 종사자가 보험사기로 적발되고 있다.

최근 들어 병원까지 한통속이 돼 조직적으로 보험사기를 유도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병원이 실손보험 환자를 연결해주는 보험 브로커와 공모해 진료 기록을 위조하는 식이다. 최근 금감원은 브로커와 병원이 공모해 공짜 성형시술을 해주겠다며 실손보험 가입 환자를 모집한 후 갑상선 고주파 절제술 등을 시행한 것으로 조작해 보험금 3억8000만원을 타낸 브로커 4명과 해당 병원 의사를 적발했다.

일각에서는 병원과 브로커가 공모해 벌이는 조직형 보험사기가 이미 산업화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브로커형 보험사기 조직이 전국적으로 20개 이상, 인원으로는 1700~2000명가량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근 한 병원도 병원 홍보 회사(브로커 조직)와 '홍보광고 대행 계약'을 체결하고 환자를 끌어온 알선 업체에 매출액의 30%를 알선비로 지급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이 병원은 보험 대상이 되지 않는 보신제를 다른 치료제인 것처럼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으로 작성하고, 통원 횟수를 부풀려 실손보험금을 수령하도록 했다.

보험업계 안팎에서는 상급 병원보다 상대적으로 관리가 허술한 동네의원에서 실손보험금 허위·과다 청구가 집중돼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보험금 지급은 동네의원인 1차 병원에서 크게 늘고 있다.

매일경제가 4대 손해보험사(삼성화재·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를 통해 집계한 결과, 비급여주사제에 대한 보험금 지급은 5년 새 1차 병원에서만 271.5%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대학병원인 3차 병원의 보험금 지급액 증가율 60.1%의 4.5배에 달한다. 물리치료에 대한 비급여 보험금 지급도 1차 병원에서만 최근 5년 새 220.6% 늘어났는데, 이는 3차 병원의 보험금 증가율 38.3%의 5.7배에 이른다.

금융·수사당국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금감원은 보험업계와 함께 지난 2월부터 3개월간 조직형 보험사기 특별신고 기간을 운영하고 있다.

실손보험의 대표 청구 항목인 발달 지연 아동 보험금의 경우 전문 치료사에게 진료를 받을 경우에만 지급하도록 규정을 바꿨지만 여전히 브로커 등을 끼고 비전문과 의사의 진료가 횡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험사 관계자는 "브로커들이 단톡방이나 블로그 등을 운영하면서 진료 기록 등을 꾸미는데, 이런 게시글은 바로 삭제돼 추적이 어렵다"고 전했다. 부모가 아이의 발달장애를 숨기거나, 의료기관이 발달 지연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진단을 둔갑시키는 경우도 여전히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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