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망 구멍… 핵 확산 억제도 위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선물받은 차량 ‘아우루스’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일 조선중앙TV 보도 화면 캡처. 뉴시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북한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막기 위해 미국과 협조해 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전을 계기로 완전히 변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와 엘런 김 선임연구원은 지난 29일(현지시간) CSIS 홈페이지에 러시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 해산 유도가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등을 분석하는 문답 형식의 글을 올렸다.
차 석좌 등에 따르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는 유엔 대북 제재 체제를 약화하기 위한 체계적 노력의 세 번째 단계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러시아가 △제1단계인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이행 중단, △2단계인 북한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응한 신규 안보리 제재 결의 적극 차단에 이어 △3단계로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 체제를 영구적으로 해체하기 위한 새 조치에 착수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러시아가 이렇게 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일 공산이 크다. 이들은 “미국의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가 의회에 막혀 있는 만큼 북한과 협력하면 전쟁에서 러시아가 결정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며 “이런 타이밍에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북한을 돕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가운데) 주유엔 미국대사가 28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황준국(왼쪽 두 번째) 유엔대사등 총 10개국 대표들과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앞서 러시아는 지난 28일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 결의 표결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의결을 무산시켰다. 거부권은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만 갖고 있다. 이로써 2009년 설치된 이후 15년간 대북 제재 결의가 잘 이행되고 있는지 국제사회가 감시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해 온 기구가 4월 말 사라진다.
문제는 막대한 여파다. 일단 자칫 대북 제재가 무력화할 수 있다. 차 석좌 등은 “전문가 패널이 없으면 제재 이행을 감시하고 현행 체제에 생긴 구멍을 메우는 제3자 기구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미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덕에 노다지를 캔 상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가 어떻게 북한에 연료를 비롯한 물자를 공급했는지 전문가 패널이 생생한 증거를 제시했다”고 소개했다. 감시망 공백마저 생기면 북한으로서는 숨통이 확 트이는 셈이다.
국제 핵 비확산 체제도 위기다. 원래 러시아는 북한의 핵 개발이 자국에도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해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에 동참해 왔다. 그러나 전쟁에 쓸 무기가 부족해지자 대북 거래를 방해하는 제재가 거추장스러워졌다. 차 석좌 등은 “탄약을 대가로 러시아가 민감한 군사 기술을 북한에 제공하고 비확산 규범을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미국 국무부에서 비확산·군축 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NYT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거부에 따른 패널 임기 종료를 “놀라운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